그룹명/문화유적유물산책 243

두타산 삼화사 (頭陀山三和寺)

삼화사(三和寺)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642년(선덕여왕 11) 신라시대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 암자를 지었다. 1369년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중건하였으며, 1905년 의병(義兵)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약 하다가 1907년 왜병의 공격으로 또다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였다. 1977년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中臺寺)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약사전(藥師殿)..

무릉반석 금란정

금란정(金蘭亭) 동해시 삼화동에 위치한 ‘금란정’은 무릉계곡 매표소 출발점을 지나자마자 우측에서 보이는 정자이다. 둥근 화강석 초석 위에 목조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겹처마 팔작 기와 지붕양식의 건축물이다. 주변 산새와 함께 무릉계곡에서 흐르는 소리와 함께 정자에 여유있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보면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금란정(金蘭亭)" 편액은 계남(桂南) 심지황(沈之潢, 1888∼1964)의 필적이다. 심지황은 동해시 북평동 단곡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으나 강릉에서 주로 활동한 서예가이다. 자는 시택(時澤), 호는 계남(桂南)이다. 15세부터 20세까지 5년간 소남 이희수로부터 서화를 사사, 무릉계곡의 「금란정(金蘭亭)」 편액 글씨외에도 무릉..

죽서루 현판 (竹西樓 懸板)

삼척에서 휴가 중 이틀째 비내리던 날 멀리 나가기도 어설프고 망설여지고 비는 금방이라도 그칠 기세는 보이질 않고 그렇다고 숙소에서만 머물러 있을수는 없었다.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18일 고향친구 열 명과 함께 7번국도 따라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 중 삼척에서 1박을 하면서도 죽서루 안 마당을 걸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는데 찬찬히 죽서루 마루위를 걸으며 현판의 위치따라 차례로 사진으로 담아보기로 했다. 죽서루 현판 게첩도(揭帖圖) 게첩(揭帖) : 내어 걸어 붙임. 또는 그런 문서. 게첩도(揭帖圖) : 내어 걸어 붙인 도면(圖面) 화원(畵員)의 그림을 보고 관동의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어제 시를 지었다는 어제시(御製詩) 김충현의 글씨. 정조 어제시(正祖 御製詩) 彫石鐫崖寄一樓 ..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보물 제213호이다.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동안거사집》에 1266년(고려 원종 7)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 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원래의 규모는 정면이 5칸이었던 것을 후일 양쪽 끝에 1칸씩을 늘린 것으로 보이며, 그 부분은 공포(栱包)의 형식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천장을 보면 당초 건..

단종대왕 장릉

장릉(莊陵)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장릉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단종대왕 장릉

장릉(莊陵)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번지에 있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이다.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

김삿갓유적지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은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 호 난고이다. 그는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는데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7번국도 따라 한번 가고 두번 가고 강원도 그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숨어있는 역사의 이야기속에 자꾸만 빠져들고 싶다. 삼척에 마련된 숙소와 아들의 휴가에 맞춰 이번엔 가족여행을 떠나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봉강재(鳳岡齋)

봉강재(鳳岡齋) 파평윤씨 시조의 사당.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기남길253번길 74(봉계리 552) 1987년 12월 29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01호로 지정되었다. 1752년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인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893∼973)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에 있다. 윤신달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가 남달리 뛰어난 인물로, 고려 태조 왕건의막료(幕僚)가 되어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웠으며, 국기(國基)를 다지는 일에많은 공헌을 하였다. 봉강재는 정면 6칸, 측면 4칸의 ㄱ자형 팔작지붕 겹처마 집으로,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존한 건축물이다. 치목 수법이 우수하며, 평면 구성에서 독특한 점이있다. 28세손(世孫)인 윤광소(尹光紹)..

분옥정(噴玉亭)

분옥정(噴玉亭)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 봉계 1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67호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67호로 지정되었다. 분옥정(噴玉亭)은 조선 숙종 때 성균생원이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된 김계영의 덕업을 찬양하기 위하여 경주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것이다. 봉계리는 경주김씨 상춘공의 9세손인 언헌이 이 고장에 정착함으로써 경주김씨의 집성촌이 된 곳이다. 용계정사(龍溪精舍)라고도 불리는 이 정자는 도감 김종한에 의해서 1816년(회경21) 3월에 착공되어 1820년(회경 25) 3월에 준공을 보았다. 정자는 주변 풍경을 고려하여 출입을 건물 뒤편으로 하게 하고, 앞면은 계류(溪流)를 향하도록 배치하고 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T자형 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