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화유적유물산책 239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永川 新月里 三層石塔)

영천 신월리 삼층석탑(永川 新月里 三層石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신월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화강암 석탑. 보물 제465호이다.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4.57m이다. 탑이 위치한 자리는 신라시대의 신흥사지(新興寺址)라고 하나 부근에는 사지임을 증명할 만한 근거가 없고, 탑 자체는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고 있다. 2중 기단으로 되어 있으며 기단부는 지대석과 중석(中石)이 하나의 돌이며, 각면에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모각하였다. 위 기단 중석에는 각면에 우주가 있고 탱주 일주(一柱)로 양분하여 8부신중(八部神衆) 1구씩을 양각하였다. 갑석(甲石)은 밑에 부연이 있고 상면에는 약간 경사가 있다. 옥신(屋身)과 옥개(屋蓋)는 각 일석으로 되어 있으며 각 옥신에는 우주..

팔공산의 사찰 동화사(桐華寺)

동화사(桐華寺) 493년(신라 소지왕 15) 극달(極達)이 세운 유가사(瑜伽寺)를 832년(흥덕왕 7)에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건(重建)할 때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있어동화사라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그후 여러 차례 중창(重創)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1732년 8번째 중건한 대웅전·극락전을 비롯하여 연경전(蓮經殿)·천태각(天台閣) 등 20여 채의 큰 규모의 건물 이 있고, 당간지주(幢竿支柱)·비로암(毘盧庵) 3층석탑·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 (石造毘盧遮那佛坐像)·금당암(金堂庵) 3층석탑·석조부도군(石造浮屠群) 등 보물 6점이 있다. 이밖에도홍진국존진응탑비 (弘眞國尊眞應塔碑) 등이 있다. 이곳에 1992년에는 높이 30m나 되는석불인 약사대불(..

팔공산의 사찰 파계사(把溪寺)

대웅전이 없는 파계사의 중심법당인 원통전(圓通殿) 파계사(把溪寺) 물줄기가 9갈래로 흩어져 있어 물길을 모은다는 뜻으로 파계사(把溪寺)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에는 804년 (애장왕 5년)에 심지(心地)스님이 처음 세웠고 1605년(선조 38)에 계관(戒寬)스님이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스님이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현응스님은 세자를 낳게 해달라는 숙종의 요청으로 기도 하였는데 그때 낳은 아들이 영조였다. 영조가 11세에 섰다는 '현웅전' 이라는 편액이 지금까지 성전암 법당에 걸려있다. 또 1979년 6월 파계사 법당의 관음보살상에 금칠을 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옷(도포)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로는 원통전, 진동루등 17동..

팔공산의 사찰 부인사 (符仁寺)

부인사 (符仁寺)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로,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한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지 못한다. 예부터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로 짐작할 뿐이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39개의 부속암자를 관장하였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판각은 몽골의 칩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도 일본 교토[京都] 난젠사[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칩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지금 건물은 1930..

방호정(方壺亭)

방호정(方壺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1619년(광해군 11) 9월 조준도(趙遵道:1576∼1665)가 지은 정자로, 낙동강 상류 절벽 위에 있다. 조준도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이다.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생모 안동(安東) 권씨(權氏)의 묘가 보이는 이 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도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水堂)’이라고 하였다. 건물은 ㄱ자형의 평면 구조이며, 측면은 팔작이고 전면은 맞배지붕이다. 이준(李埈)·조형도(趙亨道)·권익(權翊)·신집(申輯)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강..

침수정(枕漱亭)

침수정계곡일원 (枕漱亭溪谷一圓)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에 있는 경승지. 소재지 :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팔각산로 813(옥계리 1) 외 팔각산과 동대산(東大山)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류하여 옥계계곡을 이루는데, 1607년 손성을(孫聖乙)이라는 선비가 광해군의 학정을 피해 은거하며 지은 침수정(枕漱亭)이 있고, 이 계곡 일원은 경상북도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손성을(孫聖乙)은 계곡 가운데 꽃봉오리 모양으로 앉은 진주암(眞珠岩) 외에 병풍바위 · 향로봉 · 촛대바위 등 주변의 아름다운 곳을 골라 '팔각산 37경'이라는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침수정의 편액 글씨 촬영일 : 2020년 09월 28일 (월요일)

두타산 삼화사 (頭陀山三和寺)

삼화사(三和寺)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642년(선덕여왕 11) 신라시대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곳에 절을 짓고 흑련대(黑蓮臺)라 하였다. 864년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절을 다시 지어 삼공암(三公庵)이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으며, 많은 부속 암자를 지었다. 1369년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중건하였으며, 1905년 의병(義兵)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약 하다가 1907년 왜병의 공격으로 또다시 소실된 것을 이듬해 중건하였다. 1977년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中臺寺)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약사전(藥師殿)..

무릉반석 금란정

금란정(金蘭亭) 동해시 삼화동에 위치한 ‘금란정’은 무릉계곡 매표소 출발점을 지나자마자 우측에서 보이는 정자이다. 둥근 화강석 초석 위에 목조 원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규모로, 겹처마 팔작 기와 지붕양식의 건축물이다. 주변 산새와 함께 무릉계곡에서 흐르는 소리와 함께 정자에 여유있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보면 도심에서 벗어난 자연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금란정(金蘭亭)" 편액은 계남(桂南) 심지황(沈之潢, 1888∼1964)의 필적이다. 심지황은 동해시 북평동 단곡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으나 강릉에서 주로 활동한 서예가이다. 자는 시택(時澤), 호는 계남(桂南)이다. 15세부터 20세까지 5년간 소남 이희수로부터 서화를 사사, 무릉계곡의 「금란정(金蘭亭)」 편액 글씨외에도 무릉..

죽서루 현판 (竹西樓 懸板)

삼척에서 휴가 중 이틀째 비내리던 날 멀리 나가기도 어설프고 망설여지고 비는 금방이라도 그칠 기세는 보이질 않고 그렇다고 숙소에서만 머물러 있을수는 없었다. 채 한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 7월 18일 고향친구 열 명과 함께 7번국도 따라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 중 삼척에서 1박을 하면서도 죽서루 안 마당을 걸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는데 찬찬히 죽서루 마루위를 걸으며 현판의 위치따라 차례로 사진으로 담아보기로 했다. 죽서루 현판 게첩도(揭帖圖) 게첩(揭帖) : 내어 걸어 붙임. 또는 그런 문서. 게첩도(揭帖圖) : 내어 걸어 붙인 도면(圖面) 화원(畵員)의 그림을 보고 관동의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어제 시를 지었다는 어제시(御製詩) 김충현의 글씨. 정조 어제시(正祖 御製詩) 彫石鐫崖寄一樓 ..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보물 제213호이다.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서루는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동안거사집》에 1266년(고려 원종 7)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 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원래의 규모는 정면이 5칸이었던 것을 후일 양쪽 끝에 1칸씩을 늘린 것으로 보이며, 그 부분은 공포(栱包)의 형식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천장을 보면 당초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