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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

도랑도랑 2020. 5. 10. 21:40

 

 

해동용궁사 지장보살 (海東龍宮寺 地藏菩薩)

 

 

 

지옥중생을 모두 구제하고서 성불하시겠다는 원력을 세우시고 지금도 지옥에 계시는 보살로서 바닷가 방생터에 모신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해동용궁사 진신 사리탑(海東龍宮寺 眞身 舍利塔)

 

 

 

진신 사리탑(眞身舍利塔)

 

대웅전(大雄殿) 바로 정면에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름답고 화려한 3층석탑이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4사자 3층석탑이다.
원래 이 자리는 용두암이라고도 하고 일명(一名) 미륵바위가 우뚝(약3M) 솟아 도량을 장엄하고 있었으나 임전전화에 사찰이 페허가 되고
또 6.25로 남북이 대치하면서 철통같은 해안 경계망 구축에 바다의 기암요지는 무자비하게 파괴되니 미륵바위도 용두암도 옛 전설이 되고 말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1990년) 영호당 정암스님께서 직접 손수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4사자3층석탑을 봉안했다.
특히 1층기단 네귀퉁이에 4사자가 탑을 받쳐들고 있으며, 중앙에는 용왕님이 법당 부처님을 향해 받들고 있으니 이는 호법신장이며, 도량주이신

용왕님이 부처님을 받들고 도량을 수호하는 뜻이요, 4사자는 중생의 희,로,애,락을 상징하는 것 이다.

 

이 탑은 지리산 화엄사 연기 조사 사리탑을 기본으로 전통적 신라석탑 형식에 다소의 변화를 준 작품으로 근세에 보기 드문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당시 스리랑카 메스싼안다 스님이 모시고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니 이때부터 사리탑이라 부르게 됐다.
입구계단을 내려 오면서 바로 보게 되는 이 석탑은 넓은 바다 때문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며, 용궁사의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
부산광역시 기장군(機張郡) 기장읍 시랑리에 있는 절.


고려시대 1376년(우왕 2)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창건하였다.
혜근이 경주 분황사(芬皇寺)에서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하였는데, 하루는 꿈에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가뭄이나 바람으로 근심하는 일이 없고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곳에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하였다.


그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의 운강(雲崗)이 중창하였다.1974년 정암(晸菴)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꿈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굴법당·용왕당(용궁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주지 정암이 1970년대에 중창하였다.

대웅전 옆에 있는 굴법당은 미륵전이라고 하여 창건 때부터 미륵좌상 석불을 모시고 있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이 기도하면 자손을 얻게 된다 하여

득남불이라고 부른다.


대웅전 앞에는 사사자 3층석탑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3m 높이의 바위(미륵바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절이 폐허가 되고 6·25전쟁 때 해안경비망

구축으로 파괴됨에 따라, 1990년에 정암이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이 석탑을 세우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였다.


이밖에 단일 석재로는 한국 최대의 석상인 약 10m 높이의 해수관음대불, 동해 갓바위 부처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불이 있다.
절 입구에는 교통안전기원탑과 108계단이 있고, 계단 초입에 달마상이 있는데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비룡상(飛龍像)

 

 

 

 

16나한상(羅漢石像)

 

 

 

 

 

포대화상(布袋和尙)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포대화상은 중국 후량(後梁)의 선승(禪僧), 이름 계차(契此), 호 정응대사(定應大師),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도 하며,
당시의 사람들은 장정자(長汀子)또는 포대사(布袋師)라 불렀다. 명주 봉화현출생.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

메고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구하거나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일기를 점쳤다 한다. 복덕원만한 상을 갖추고 있어 게(偈)를

잘하였으며, 봉화현 악림사(岳林寺)에서 입적하였다. 그는 미륵보살의 화신이라는 존경을 받고 있다.

 

 

 

 

 

 

학업성취불(學業成就佛)

 

 

 

 

 

 

 

 

 

 

 

 

광명전와불(光明殿臥佛)

 

 

 

 

 

 

 

 

 

 

해동용궁사 창건 歷史
 
옛날부터 숱한 신비한 변화를 간직하고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온 바다!
잔잔함의 평화로움이 있는가 하면 폭풍우를 동반한 성냄도 있다.

대개의 사찰이 산중 깊숙이 있는 것과는 달리 해동용궁사는 이름 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아래서 철썩대는 수상법당이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무한한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바닷가 외로운 곳(海岸孤節處)에 상주하시며 용을 타고 화현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으니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해동용궁사로 한국의 삼대 관음성지의 한곳이며,

민족의 영산인 백두대간이 남랑을 타고 태백을 줄달음 해 태평양을 건너기 전 동해의 최남단에 우뚝 솟아 멈춰서니 이곳이 곧

해동제일 대명지(海東第一 大明地)라, 해동용궁사는 본래 고려우왕 2년(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에 의해 창건 되었다.

 

나옹스님이 법을 구하기 위해 전국토를 헤매일 때 현 해동용궁사 자리에 당도하여 지세를 살펴보니 배산임수(背山臨水) 조성모복지(朝誠暮福地) 즉

뒤는 산이요 앞은 푸른바다로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에 복을 받는 신령스런 곳이다.’ 하시고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행 정진을 했다고 전한다.

 

기장 현지를 살펴보면 고려 때는 봉래산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전화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초 통도사 운강스님이 보문사로 중창했고,

그 후 여러 스님이 거쳐 오셨으며 1970년 초 정암화상晸庵和尙이 주석하면서 관음도량으로 복원할것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한 즉 회향일 몽중에

백의관세음보살님이 용을 타고 승천하신 것을 친견하시고 산 이름을 보타산(普陀山),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개칭하게 되었다.

 

頌 曰
시를지어 말씀하시기를

萬古蒼蒼無邊海
옛적부터 푸르고 푸른 끝이 없는 바다 위에

一朝光明遍照天
아침마다 붉은 태양이 온 우주를 비추도다

三佛入定滅海波
세분의 부처님이 선정에 들어 모든 파도 없어지니

衆生朝誠暮福地
모든 중생 누구나 아침에 기도를 하면 저녁에 복을 받는 자리로다

 

참으로 묘하고도 묘한 도량이로다, 해동용궁사여!
오늘도 수많은 참배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전국에 계시는 불자님들께서는 부디 오셔서 무량공덕을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춘원 李光洙 :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靑山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 곳에 뫼 단 말가 하물며 청풍명월 있으니 여기 곧 선경(仙境) 인가 하노라

용궁사 창건주 나옹화상 혜근(懶翁和尙 惠勤) (1320∼1376)
 
고려 말의 고승. 혜근(彗勤)이라고도 쓴다. 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懶翁) 또는 강월헌(江月軒). 선관서영(善官署令)

서구(瑞具)의 아들이다. 21세 때 친구의 죽음으로 인하여 무상을 느끼고,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에 있는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촬영일 : 2020년 05월 1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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