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화유적유물산책

김삿갓유적지

도랑도랑 2020. 8. 17. 11:58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은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 호 난고이다.


그는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는데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7번국도 따라 한번 가고 두번 가고 강원도 그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숨어있는 역사의 이야기속에 자꾸만 빠져들고 싶다.

삼척에 마련된 숙소와 아들의 휴가에 맞춰 이번엔 가족여행을 떠나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영월

방향으로 길을 선택했다. 이왕에 영월에 갈 것이라면 하루 일정 모두 소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명승지(名勝地)이거나

경승지(景勝地)이거나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영월군청 홈페이지에서 영월10경을 숙지하고 다른곳은 몰라도
제1경 장릉과 제2경 청룡포 제8경 한반도지형은 꼭 들러보고 싶은 생각으로 영월로 가는길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이정표가

김삿갓유적지 였는데 그리 멀지않은곳에 두고 지나쳐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들어가보았다. 

 

 

 

최고의 풍류시인 김삿갓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김삿갓은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하며 벼슬길을 포기하였다. 그후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하였다.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는데, 그곳 명소 "적벽(赤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훗날 그의 차남이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여 이곳 김삿갓묘에 안치하였다.

 

 

 

 

 

 

 

 

 

 

이응수(李應洙:1909~1964)
1909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나 경성제대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북한에서 문학사를 집필하기도 한 이응수는

일제 강점하에서 전국 각지를 답사하면서 김삿갓의 시를 수집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토대로 1939년에 『김립시집』을

발간하였다. 이후 더 많은 자료수집과 연구를 거듭하여 북한에서 『풍자시인 김갓갓』을 출간하였고,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촬영일 : 2020년 08월 1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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