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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정(方壺亭)

도랑도랑 2020. 10. 24. 22:22

 

방호정(方壺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1619년(광해군 11) 9월 조준도(趙遵道:1576∼1665)가 지은 정자로, 낙동강 상류 절벽 위에 있다.


조준도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이다.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생모 안동(安東) 권씨(權氏)의 묘가 보이는

이 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도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水堂)’이라고 하였다.


건물은 ㄱ자형의 평면 구조이며, 측면은 팔작이고 전면은 맞배지붕이다.
이준(李埈)·조형도(趙亨道)·권익(權翊)·신집(申輯)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講論)하고 산수(山水)를 즐겼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方壺文集)》의 판각(板刻)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학자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이 걸려 있다.
경치가 아름다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방호정(方壺亭)을 들러보았다.

 

 

 

 

 

 

 

 

 

 

 

 

 

방호정 감입곡류천(方壺亭嵌入曲流川)

 

방호정 감입곡류천은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 중 하나로, 청송자연휴양림 퇴적암층, 만안 자암 단애 등과 함께 퇴적명소에 속한다. 신성지구에 해당하는 방호정 감입곡류천은 퇴적암의 형성과 융기, 침식 등의 지형 형성

작용과 인근 노두에서의 단층구조들은 지질학적인 학습의 장으로 활용도가 높다. 또한, 방호정은 역사적 가치가 높아

방호정 감입곡류천 일대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이다.

 

 

 

방호정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 위에는 松霞門(송하문)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자료를 살펴보면 제작 연도 1619년 봄, 제작자는 조함세(趙咸世)라고 한다.

 

조함세(趙咸世) 조선 중기의 문신(1607 ~ 1690)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현보(顯甫), 호는 오의헌(五宜軒)이다. 동계(東溪) 형도(亨道)의 아들이다.
살고 있는 집의 편액을 오의헌(五宜軒)으로 했는데 “봄에는 바람이 마땅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여 마땅하고,

가을에는 달이 마땅하고, 겨울에는 따뜻함이 마땅하여 이 몸 거처하기 마땅하다.
(春宜風, 夏宜冷, 秋宜月, 冬宜溫, 此身宜處)”라는 뜻이다. 제현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松霞門(송하문) 편액

 

 

 

 

방대강당(方臺講堂)과 현판

 

 

 

 

 

 

 

 

 

 

 

 

 

 

 

 

 

 

 

 

 

 

 

 

창석(蒼石) 이준(李埈),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風崖) 권익(權翊), 방호(方壺) 조준도(趙遵道),

하음(河陰) 신집(申輯)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 방호정이다.

 

방호조선생향사유허비(方壺趙先生享社遺墟碑)와 오선동오선생유적비(五仙洞五先生遺蹟碑)

 

방호조선생향사유허비(方壺趙先生享社遺墟碑) 옆에는 1863년에 유림과 종중이 선생의 묘우를 세우고

제향을 올렸지만 조선 고종 때 훼철되어 없어지고 유허비만 남았다.


오선동오선생유적비(五仙洞五先生遺蹟碑)는 조준도와 함께 학문을 강론하며 논했던 창석(蒼石) 이준(李埈),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風崖) 권익(權翊), 하음(河陰) 신집(申輯)을 기리는 유적비이다.

 

방호(方壺) 조준도 (趙遵道), 창석(蒼石) 이준(李埈),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風崖) 권익(權翊),

하음(河陰) 신집(申輯) 다섯명이어서 방호정 일대 골짜기에 ‘오선동(五仙洞)’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고한다.

 

 

 

 

 

 

 

 

촬영일 :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