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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기행(南道紀行) (3) 영랑생가

도랑도랑 2012. 7. 6. 08:14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일정에 빠져있던 보성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경로 중 괄호안에 다산초당을 적어두면서 땅끝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모른다.
곧게 잘 뻗어있는 아스팔트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을 즈음 우측 저 먼 산위엔  흰색으로 모양이 그려진 청자 그림이 나타났다.

 

강진!
왜 엉뚱한 생각부터 들었는지 모른다.

강진이란 단어 뒤에 땡벌이란 수식어(修飾語)가 따라 붙었던 것은 아마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불리어 졌던
가수 강진이 불러 인기를 끌었던 유행가 때문이었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커다란 이정표에 쓰여진 '영랑생가'가 눈에 띄었다.

이정표의 화살표 방향 안내따라 마을로 들어섰고 목적지에 다달았을 땐 구름으로 잔뜩 덮여있던 하늘에선 빗줄기가 떨어졌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52호 강진영랑생가 (康津永郞生家)

현대문학사에 있어서 큰 자취를 남긴 시인 영랑 김윤식(永郞 金允植, 1903-1950)이 태어난 곳으로 현재 본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변 밭을 포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불탑이 있었고 문화적으로는 재능과 지식을 갖춘 '영랑 김윤식의 생가'라는

역사문화적 가치와 함께 20세기 초반 건조물인 전통한옥과 근대 건조물의 이행기의 가옥으로서 문화변용의 한 형태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더불어, 영랑의 문학적 세계를 후손에게 길이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가치가 중요하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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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을 찾아서

북에 소월, 남에 영랑이라 했던가. 일제 때 소월 김정식과 함께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시로 그려냈던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강진읍내에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한 번쯤 읊어 보았을 영랑 시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영랑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금은 강진군청에서 매입하여

옛 모습으로 복원한 후 관리하고 있다.

영랑은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의숙으로 유학을 가는데 3학년 때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강진 장날에 만세운동을 벌이려다 체포되어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나와서 일본으로 유학갔다가 관동대지진 때 귀국한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순수문학의 길을 걷는데 그때가 1930년대이다.

이때 쓰여진 작품들이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모란이 피기까지⌋ 등의 시로 우리가 잘 아는 작품들이다.

해방 후에 대한청년회라는 극우단체의 회장이 되어 활동을 하기도 하고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는데,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그의 작품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 의아한 생각이 든다.

싸립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짚으로 지붕을 얹은 안채와 사랑채가 있으며 곳곳에 시비가 놓여 있다.

툇마루에 앉아 문학소년, 소녀였던 때로 돌아가 시라도 한 편 읊어보자.

사랑채에는 영랑이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네이버지식사전 발췌)

 

 

 

 

 

 

 

마당앞 맑은 새암을 / 김영랑

 

마당앞
맑은 새암을 드려다본다

 

저 깁흔 땅밑에
사로잡힌 넉 잇서
언제나 머ㄴ 하날만
내여다보고 게심 가터

 

별이 총총한
맑은새암을 드려다본다

 

저 깁흔 땅속에
편히누은  넉 잇서
이밤 그눈 반작이고
그의것몸 부르심 가터

 

마당앞
맑은 새암은 내령혼의얼골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김영랑

 

「오 ― 매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 ― 매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 ― 매 단풍들것네」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 김영랑

 

내마음의 어듼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내

도처오르는 아츰날빗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내

가슴엔듯 눈엔듯 또피 ㅅ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잇는곳

내마음의 어듼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내

 

 

 

사개틀닌 古風의 퇴마루에


사개틀닌 古風의 퇴마루에 엄는듯이 안져
아즉 떠오를 긔척도 업는 달을 기둘린다
아모론 생각업시
아모런 뜻업시


이제 저 감나무 그림자가
삿분 한치식 올마오고
이 마루우에 빛갈의 방석이
보시시 깔니우면


나는 내하나인 외론 벗
간열푼 내 그림자와
말업시 몸짓업시 서로 맛대고 잇스려니
이밤 옴기는 발짓이나 들려오리라

 

 

 

가는 빗줄기가 또닥 또닥 떨어지던 순간 우산두고 영랑생가로 들어 섰더니
이곳 저곳 혼자 쫓아 다니며 감상하는 마음이 애처로워 보였는지
굵은 빗줄기로 바뀌고 차안으로 뛰어 가기에는 옷을 적실것만 같았다.
영랑이 시를쓰고 있었을 사랑채 그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비내리던 영랑생가 사랑채 툇마루에 걸터앉아 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잘 꾸며진 정원의 한 쪽 풍경을 바라보며 오래된 동백나무와 안채 뒤편의 대나무 숲
장독대와 우물  어느곳 하나 시인의 정서에 들어맞지 않은것이 없다는것을
또 하나 어린시절 기억을 일깨워주는 모습들이 있었다.
문간채 칸칸마다 보관되어 있던 옛날의 생활도구들
지금은 문명사회의 뒷자락으로 잊혀져가는 물건들 이지만 한때는 우리 민족의 삶의 생활도구였고
우리들 아버지 어머니들이 한여름 뙤약볕 들에나가 힘든 농사일을 할 적엔
그나마 일손을 덜어주던 유용한 기계 기구 들이었다는것을 나는 알고있다.

 

 

 

재단법인 국제도덕협회의 일관도(一貫道) 강장법단(康庄法壇)

 

영랑생가를 돌아보고 나오던 중 금서당(琴書堂) 옛터라는 안내판을 보게 되었다.
옷이 젖을만큼 비는 내리는데 차안으로 뛰어가서 우산을 펼쳐든채 150m 지점에 있다는
그 곳으로 올랐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 해 졌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듯한 사찰 분위기 였기 때문이었다.
강장법단(康庄法壇) 생소한 현판글씨에 금서당은 아닌듯한 생각이 들어 다시 금서당을 찾아가 보았다.

 

국제도덕협회(國際道德協會)
1947년 김복당(金福堂)에 의해 서울에서 창립된 일관도계(一貫道系) 외래 신종교.
김복당은 1914년 중국 천진에서 출생. 1934년에 청진시 중배중학을 거쳐 1938년에 남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한약방을 경영하다가 1947년에 한국에 돌아와 일관도의 대표가 되었다.
일관도는 중국에서 창립된 종교로 18대 궁장조(弓長祖:張光璧) 때인 1947년에 전삼인(前三人)이라 부르는 이덕복(李德福)·장서전(張瑞荃)·김은선(金恩善)에 의해 우리 나라에 소개되어 서울에서 각기 포교활동을 전개했다.
김복당은 1965년에 초대 총재가 되고 1969년에 재단법인 국제도덕협회일관도로 문공부에 등록하여 활동하다가 1991년 세상을 떠났다.

김복당 사망 후 6인 총재 체제로 교단을 운영하고 있다. 1백만여 명의 신도를 갖고 있다.


 

 

 

 

화가의 집을 찾아서

 

영랑 생가와 이웃하고 있는 금서당은 영랑과도 관련이 깊을 뿐더러 고 김영렬 화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서 깊은 옛집이다.
금서당은 이름 그대로 옛날 서당으로, 일제 때는 보통학교로 사용되었는데 영랑 또한 이곳에서 수학한 후 서울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또한 3·1운동 때에는 이곳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니 강진 신학문의 요람이라 하겠다.
해방 이후 김영렬 화백이 무너진 집을 수리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 가득 빽빽이 걸린 선생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금은 화백의 미망인인 박영숙 여사가 관리하고 있으며, 화백의 호를 따 이름 지은 완향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직접 만든 솔잎차가 향기롭다.
강진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경치가 좋은 곳으로 영랑 생가와 함께 들러보면 좋을것이다.

 

 

 

명     칭 : 시문학파기념관

개 관 일 : 2012. 3. 5

홈페이지 : simunhak.or.kr

주     소 :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22-2(영랑생가 길 14)

전     화 : 061-430-3186~7, 팩스 : 061-430-3188

규     모 : 지하 1층, 지상 1층 (부지 1,486㎡ / 연면적 634㎡)

시 설 물 : 전시실, 20세기 시문학도서관, 세미나실, 학예연구실, 북 카페, 소공원 등

사 업 비 : 29억 원(국비 11억7천만 원, 군비 17억3천만 원)

전 시 물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연포 이하윤, 위당 정인보, 수주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아홉 시인의 육필 및 유품, 저서, 1920~50년대 문예지 창간호 30여종, 1920~60년대 희귀도서 500여종 등

장     서 : 시집 단행본 5천여 권

주요행사 :『시문학』창간 00주년 기념 심포지엄(매년 3월5일), 학술지 발행(매년 11월), 
               현장에서 듣는 달콤한 시문학 이야기(연 4회),시가 흐르는 마을(연 4회),

               화요일 밤의 문화데이트(매월 첫 주 화요일)

운 영 자 : 전라남도 강진군수

 

                                                                                                                                             촬영일: 2012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