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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기행(南道紀行) (2) 낙안읍성민속마을

도랑도랑 2012. 7. 3. 12:17

애매모호한 판단이 요구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틀째 주 목적지는 여수향일암으로 설정을 해 두었고
순천에서 여수로 향하는 순천만습지까지는 약14Km
순천에서 낙안읍성민속마을까지는 약26Km 정도로 나타난것 같았다.
거리야 어찌되었건 지나는 길목마다 들렀다가 나오는 형식으로 코스를 구상해 두었지만
지도를 펴고 들여다 보아도 한참을 돌아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는 위치로 나타났다.
하지만 낙안읍성 역시 길 나선김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들어 갔지만 결론은 판단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낙안읍성민속마을(樂安邑城民俗)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남대리 낙안읍성 일대에 있는 민속마을.

 

1983년 6월 14일 사적 302호로 지정되었다.

넓은 평야지대에 쌓은 총길이 1,420m, 높이 4m, 너비 3~4m의 네모형 석성으로 1~2m 크기의 정사각형 자연석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아 끊어진 곳이 없이 웅장하다. 1397년(태조 6) 일본군이 침입하자 김빈길이 의병을 일으켜 처음 토성을 쌓았고,

1626년(인조 4) 임경업이 낙안군수로 부임했을 때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하였다.

동내, 서내, 남내 등 3개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는 전통마을로 108세대가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남부지방 특유의 주거양식을 볼 수 있으며

부엌, 토방, 툇마루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옥 9동(중요민속자료 92~100)과 임경업군수비각(전남문화재자료 47), 객사(전남유형문화재 170),

노거수 은행나무(전남기념물 133) 등의 문화재가 있고, 당시 관아였던 관청 건물들이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장군 임경업의 비각에서 제를 올리고 널뛰기, 그네타기, 성곽돌기 등 민속행사가 열린다.

5월에는 낙안민속문화축제, 10월에 남도음식축제가 열린다.

주변에 조계산도립공원, 선암사, 송광사, 동화사, 제석산, 고인돌공원, 주암호 등의 관광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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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뱍엔 드라마 대장금 장면의 사진도 걸려 있었고

여기가 대장금 촬영 세트장이기도 했다길래 마루에 앉아 사진한 장 담아왔다.

또 다른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이 무슨 횡재란 말인가

부지런해야 활짝 핀 모습 볼 수도 있는 하늘타리인데 그것도 한 낮에 여기서 귀한 꽃을 볼수가 잇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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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눌타리(Trichosanthes kirilowii)
중부 이남의 산과 들에서 자란다.

고구마같이 생긴 굵고 긴 덩어리 모양의 뿌리가 있다.

잎은 둥글고 단풍잎처럼 5~7갈래로 갈라져 어긋나는데 끝은 날카롭거나 뭉뚝하고 밑은 심장 모양으로 거친 톱니가 있다.

잎 표면에는 짧은 털이 있고 덩굴손이 잎과 마주나와 다른 물체를 감는다.

꽃은 7~8월경 암꽃과 수꽃이 다른 그루에 피며 꽃대의 길이는 수꽃이 암꽃보다 길어 암꽃은 3㎝, 수꽃은 15㎝에 이르고

각각 끝에 1개의 꽃이 달린다. 꽃잎은 서로 붙어 통꽃을 형성하지만 5개로 갈라지며 각 꽃덮이조각[花被片]은 끝이 술처럼 갈라진다.

수술은 3개이며, 난형의 열매는 지름이 8㎝ 정도이고 붉은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익는다.

같은 종(種)의 노랑하눌타리(var. japonica)가 흑산도와 남쪽 섬에서 자라는데 잎조각에 톱니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괄루근(括樓根), 씨를 괄루인(括樓仁)이라 하여 열매의 껍질은 기침약·최유약·해열제로 사용하고,

뿌리의 녹말은 식용하거나 피부병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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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옥사

 

 

 

낙안읍성 성벽과 성안에 심어진 나무들로 은행나무 3그루, 팽나무 6그루, 푸조나무 3그루, 개서어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등

모두 15그루가 있다. 객사 뒷편의 길이 약 150m에 이르는 성벽에는 팽나무 5그루, 푸조나무 2그루, 개서어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모두 10그루의 나무가 있다. 객사 동쪽에는 팽나무 1그루가 있고, 객사 뒷편 마당에는 큰 푸조나무 1그루가 있다.

낙안읍성 동문에서 남서쪽 50m 거리와 남내리 객사 남쪽 110m 거리, 그리고 객사 남서쪽 130m 거리에 각각 은행나무가 한그루씩

심어져 있다. 나무의 크기는 다양한 편이며 나이를 200년 이상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둘레가 3m이상 되는 것으로 팽나무 5그루,

은행나무 2그루, 느티나무 1그루, 푸조나무 2그루 등이며, 300년 이상은 푸조나무 1그루, 팽나무 1그루, 은행나무 1그루 정도로 추측된다.

낙안성이 세워진 것은 인조 4년(1626)인데, 300년 이상 된 나무들은 이때 기념으로 심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승주 낙안성의 노거수는 오늘날 낙안성과 그 주변의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고 있으며 나무의 그늘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나무가 오래되고 생물학적 연구자료로 가치가 있어 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12. 동헌 및 내아

 

동헌(東軒)
지방관아는 중앙에 담과 정문을 내어 각종 집무실과 창고를 두고 주변에는 객사·향교 등 부속건물을 둔다.

정문 안에 다시 담을 둘러 수령이 직접 공무를 수행하는 외아(外衙)와 수령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내아(內衙)를 두고

외·내아는 다시 담이나 행랑으로 구분한다. 동헌이란 명칭은 외아가 내아의 동쪽에 있는 데서 연유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동헌이 그냥 관아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외동헌, 내동헌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동헌의 구조와 크기는 군현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전체적인 구성은 유사하다.

보통 정면 6~7칸, 측면 3~4칸 건물로 전체 평수는 40~50평 정도이다.

동쪽에 대청을 두고 서쪽에 온돌방과 다락을 둔다.

방의 앞에 툇마루, 뒤에 누마루와 광을 낸다.

내아와는 담이나 행랑을 내어 구분한다.

대체로 외아는 상류가옥의 사랑채, 내아는 안채구조와 비슷하다.

 

 

 

 

 

낙안객사(樂安客舍)
객사 좌우방은 조정 대신이 사용
객사(=樂安之館):객관이라고도 하며 고을의 가장 으뜸되는 건물, 고을의 중앙상단에 위치하는게 보통이다.
왕명으로 또는 고을을 찾아오는 귀빈 영접하고 머물게 하고 왕명을 받고 접수하는곳
翼舍: 전면 2칸, 동쪽방은 文人, 서쪽방은 武人 사용

 

11. 낙민루

낙민루는 조선 헌종때 군수 민중헌이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며 1924년 일부분을 수리 하였다고 한다.

남원의 광한루, 순천의 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로서 오랜 세월동안 희로애락을 나눈 누각이었으나

6.25전쟁 당시 불타 소실되었떤 것을 1986년 기존의 초석 위에 17평 규모로 겹처마팔각집의 누각형으로 복원하였다.

 

7. 임경업 군수 비각

임경업 장군이 낙안 읍성의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여 세워진 비각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 지붕의 비각은 1748년에 세워진 것으로 1887년과 1952년 2차례에 걸쳐서 중수가 이루어졌다.

이 비각의 주위에는 1748년 군수 김우(金瑀)가 직접 쓴 '전 군수 임 장군 경업 비각 영건표적비(營建表蹟碑)'와

1576년에 세워진 '군수 이희인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각 이외에도 임경업 장군과 관련하여 충민사(忠愍祠)라는 사당이 낙안면 교촌리 낙안 향교 옆에 세워져 있다.

 

 

 

 

 

 

 

 

동문인 낙풍루에 올라 성벽을 따라 한바퀴 돌고 골목으로 내려와서

대강 훝어보고 나오려 했던 시간이 대략 30분가량 소요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동헌을 둘러보고 객사를 둘러보고

임경업 군수 비각은 꼭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골목을 돌아 다니다가 보니

1시간 40분 가량 소비 되었다 그 때까지 점심도 먹지 않은채 ......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서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여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