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화유적유물산책

덕동문화마을

도랑도랑 2024. 5. 5. 18:00

 

덕동마을은 조선의 대유학자인 회재(晦齋)이언적의 동생 농재(聾齋) 이언괄의 4대손인 이강이 경주 양동마을에서 

50리 떨어진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360여년간 대를 이어 살면서 여강이씨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이언괄은 형인 회재 이언적이 관계에 나가면서 어머니 봉양을 위해 이곳에 눌러 앉아 자손 대대로 덕동마을을 문사의

마을로 만들었다.

 

 

 


덕동 마을은 천혜의 자연조건과 독특한 문화를 높이 평가 받아 1992년 정부로부터 문화부 지정 문화마을로

2001년에는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받았다.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용계정 옆에 

세워진 민속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에서 단 2개 보존되어 있다는 독(과학 단지)이 눈길을 끈다.

 

 

 


산림청, 생명의 숲에서 공동으로 실시한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상에 기북면 오덕리 ‘덕동 마을 숲’이 선정되어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덕동 마을 숲에는 200년생 은행나무와 160년생 향나무 등 고목들이 생립하고 

있으며, 환경친화마을 지정에 따른 지원사업으로 마을 저습지에 도시소생물 서식공간(비오톱)을 조성하여 청소년들에게게자연학습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또 이 마을은 용계정, 사우정 등 아름다운 건축물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1992년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이 가옥은 조선 선조 때 북평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농포 정문부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되던 집이다.
농포 정문부가 임진왜란 후 손서인 이강에게 별옥 일체를 양여할 때의 부속건물 중의 일부로서 이강의 둘째아들인 

이덕령에게 물려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현 소유자인 이원돌은 이강의 9대손이다.
정면 4칸, 측면 6칸의 목조와가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에 창건한 건물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오덕리 사우정 고택

 

사우정(四友亭)은 조선 선조 때 북평사(北評事)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였던 집이다.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 선생의 조부이신 정언각(鄭彦慤)이 청송부사로 재직 당시 지리에 밝은 청지기가 일러준 

길지(吉地)로 “활란가거 천하지낙양(活亂可居 天下之洛陽)”이라 불렀다고 전하며, 이로부터 땅을 점유하여 집을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지명이 송을곡(松乙谷)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송(松)자가 든 지명에서는 패전한다는 설이 있어 

이곳을 피난지로 삼았다고 전한다.

농포 정문부 선생의 손서인 이강(李壃)에게 양여하였고 이강은 3남 이덕삼(李德三)에게 다시 물려주었으며, 그 후 

이헌순(李憲淳)이 그의 호(號)를 따서 사우정(四友亭)을 당호(堂號)로 정했다고 한다.

방형(方形)의 담장으로 둘러쌓인 바깥마당으로 들어서면 일자형(一字形)의 사랑채가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ㅁ 자형의 안채가 있으며 우측 담장 모서리에 사당지(祠堂址)가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목조와가이고,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반이 목조와가로 맞배지붕이며 

조선중기(1600년대) 상류계층의 생활상을 짐작케 해주는 고택(古宅)이다. 그 후 100년 뒤에 사랑채를 건립했다.

 

 

 

 

사당지(祠堂址)

 

 

 

오덕리 근대 한옥

 

1947년 2월에 상량된 전통한옥과 근대한옥의 특징을 갖고 있어 20세기 중엽 사회변화에 따른 민가의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가옥이다.

부재의 결구와 구조수법 등 일반적인 형태는 전통한옥의 특징을 따랐으나 一’자 모양 안채와 ‘ㄱ’자 모양 사랑채, ‘一’자 

모양 아래채로 구성된 근대기 튼 口자형 한옥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집약 배치된 배치 형식과 기능적인 평면 

구성, 규격화된 재목을 사용한 합리적인 구조 수법, 머름이 없는 키 큰 창호, 서양 창호에 영향을 받은 판문, 수장 공간의 

발달 등 근대기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八峰公의 옛집터

 

 

포항 오덕리 덕계서당(浦項吾德里德溪書堂)

포항 오덕리 덕계서당은 여강이씨 문중의 16대조 덕삼(德三 1654~1712)공을 사대봉사하기 위한 별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건립 시기는 불명확하다. 채집 가능한 자료를 분석, 추정해보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이 늦어도 19세기 중반 이전이라는 것 정도만 확인이 된다. 현존하는 전통건축 중 서당이 흔치 않음을 고려해 볼 때

덕계서당의 역사적인 가치는 가볍다 할 수 없다.

특히 서당 내의 별묘를 함께 갖추고 있다는 점과 별묘의 건축과정에 한 가문의 절손(絶孫)으로 인한 

최장방(最長房)으로의 체천위 등 유교적 봉제사 관습의 일면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은 민속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덕계서당은 마을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고려될 때 더욱 가치가 있다.

마을 내 사우정고택과 애은당고택 그리고 용계정 등과 함께 덕동마을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대변할 
관련 유구로 보존된다면 향후 마을 전체 차원의 주거사 및 생활사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 역할을 할 것이다.

 

 

 

 

 

용계정 관리실 포사

 

 

용계정의 우측문

 

 

 

용계정(龍溪亭)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에 있는 조선전기 정문채가 건립한 팔작지붕 형태의 누정. 정자. 시도유형문화재.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546년(명종 1)에 정문채(鄭文采)의 별장 일부로 건축되었다 하는데, 그 후 수차례의 중수와 개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계천의 서쪽 기슭 높은 지대 위에 자연석 담장을 돌리고 서북향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좌 · 우 측면 및 후면의 

담장에는 일각문을 세워 출입하게 하였다. 전면 5칸과 후면 어칸에는 마루를 깔았고, 후면 어칸 좌우에는 각각 2통칸의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개방된 대청 전면에는 헌함(軒檻 : 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좁은 마루)을 돌려 누마루처럼 꾸몄는데, 좌 · 우 측면

에는 벽을 치고 쌍여닫이 널문을 달았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공포(栱包)는 익공계인데, 

익공의 쇠서나 양봉은 운각(雲刻)과 연봉(蓮峰)으로 조각되어 조선 후기적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가구는 5량가로 도리 방향의 중앙열 기둥이 대량의 아래에 서 있고, 대량 위에는 초각(草刻)된 대공이 노출되어 있어, 

처음에는 중앙열 기둥과 방이 없는 누마루 정자였음을 알 수 있다.  창건연대는 명종대, 즉 조선 중기라 하나 후에 중수와 개수를 거쳐 현재는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누워있는 향나무 와향(臥香)

개울에 내려와서 올려다 본 용계정(龍溪亭)

 

촬영일 : 2024년 05월 0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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