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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견학 (靑瓦臺 見學)

도랑도랑 2024. 2. 28. 21:11

 

 

북악산을 뒤에 두고. 시청과 종로·을지로 등 사무실이 밀집한 도심지역의 북쪽에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11년 12월 20일, 청와대의 주소가 ‘광화문 1번지’로 처음 정해졌고,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1월 1일에 한국식 주소인 세종로 1번지로  2014년에 도로명 주소 체계로 바뀌면서

지금의 주소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1로 변경되었다.

 

 

 

 

2월 25일 일요일 아침에도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청와대 관람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예약없이 갔다가 관람할 수 없으면 경복궁이나 

덕수궁이라도 돌아보면 되겠지 하면서 택시를 타고 정릉쪽 성북동길을 따라 꼬불꼬불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산정상

부근이었을까? 아침에 내리던 눈이 하얗게 쌓여 나뭇가지를 덮고있는 모습이 감격스럽기도 한데 카메라를 따로 챙겨

가지 않아서  아쉬움도 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담아온 풍경들도 나쁘지는 않은것 같아서 다행이다.

청와대 정문앞에서 내린 후 안내판을 따라 입구에 가서 예약없이 왔는데 관람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65세 이상은

신분증 확인 후 바로 예약 절차를 거치고 입장 할 수가 있었다.

 

 

 

청와대 본관 입구

 

청와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려시대 이궁(離宮)이 있던 자리란다.
청와대 주변 지역이 역사서에 처음 기록된 것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인데, 고려는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을 삼경으로 두었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남경은 ‘남쪽의 서울’이란 뜻이다.

 

이궁(離宮) : 왕이 정궁에서 옮겨 지낼 목적으로 지은 궁궐.별궁(別宮).

                    궁궐에 화재가 나거나 뜻하지 않은 변고가 생겼을 때, 혹은 왕의 판단에 따라 

                    궁궐을 옮겨야 할 때 상당한 기간 머물며 활동할 수 있는 또 다른 궁궐을 이궁이라 한다.

 

 

 

 

조선시대
청와대 주변 지역에 대한 기록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도읍 이전을 논의하면서 다시 나타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1394년에 관리들에게 새 궁궐터를 찾게 했고 관리들은 고려 숙종 때의 이궁 자리는 너무 좁으니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궁궐을 짓는 것이 좋겠다고 임금께 보고했다. 태조는 그해 12월 정도전에게 궁궐을 짓게 하여

이듬해 9월에 경복궁을 완성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거처하였고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서는 왕이 신하들과 함께 

천지신명 앞에 맹서하고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는 회맹(會盟) 의식이 치러졌다. 『실록』 등에 나오는 이 시기의

경복궁 후원(금원 또는 상원으로도 불렸음)은 오늘날 청와대와 가까운 경복궁 북쪽의 담장 안쪽에 있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약 27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흥선대원군이 중건했다. 이 때 경복궁 신무문 밖 지금의 청와대 지역에 후원(북원으로도 표기)을 지었고, 이곳에는 1868년부터 과거

시험장의 기능을 하던 융문당, 융무당을 비롯하여 오운각, 옥련정, 경농재 등이 차례로 들어섰고 1869년부터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논공행상(論功行賞) : 공로을 따져 알맞은 상을 준다는 말로, 세운 공을 평가하고 의논하여 표창을 하거나 상을 줌.

회맹(會盟) : 모여서 맹세함.
공훈(功勳)이 있는 사람의 이름을 책에 써 올릴 때에 임금과 신하가 모여서 서로 맹세하던 일.

 

 

 

본관 입구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일제 강점기 시대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1929년에 조선총독부가 통치 20주년 기념으로 조선박람회를 경복궁과 후원에서 개최하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조선박람회가 끝난 후 한동안 공원으로 있었던 경복궁 후원에 일제는 1937년부터

1939년에 걸쳐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고 그 일대를 계속해서 경무대라고 불렀다.

 

 

 

2층 무궁화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1945년 광복 후에 2년여 기간은 미군정 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이화장에서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고 1층은 집무실, 2층은 관저로 사용했다. 1960년 8월에 취임한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라는 명칭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고 하여 1961년부터 이름을 청기와를 덮었다는 의미에서 청와대로 바꾸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기에는 청와대 기구가 확대됨에 따라 건물의 보수·증축과 함께 상춘재, 영빈관 신축 등 건물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노태우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위상과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밝고 진취적인 청와대를 새로

짓기로 하여 1991년 9월 현재의 본관을 신축했다. 그리고 1993년에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조선총독이 기거했던 구 본관 건물이 철거되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하였고, 2022년 5월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면서 청와대는 국민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공심여일월(公心如日月)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공평한 마음은 해와 달처럼 치우침 없이 두루 비춰야 한다는 뜻.

 

 

 

 

 

 

 

 

 

 

 

 

 

 

 

 

 

 

 

 

 

 

 

 

 

 

 

 

 

 

 

 

촬영일 : 2024년 02월 25일 (일요일) / Galaxy S21 5G / SM-G991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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