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풍경사진

한반도 지형

도랑도랑 2020. 8. 19. 21:35

 

왜 한반도 모양이 되었을까?

 

감입곡류란 하천이 흐르는 지역이 융기되거나 하천이 계속 아래를 깍으면서 흐를 때 자유로운 방향으로 구불구불한

형태를 보이면서 아래를 깊게파서 만들어진 하천을 말한다. 한반도 지형을 유심히 보면 하천이 흐르는 바깥쪽은

하천이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주변의 암석을 깍아서 절벽이 생기는 곳이며, 하천의 안쪽에는 물이 천천히 흘러서

모래가 쌓인것이 보인다. 하천이 점점 옆쪽으로 암석을 깍아서 넓어지면 이와같은 한반도의 모양이 가운데에 생기게

된 것이다. 앞으로 먼 미래, 한반도의 지형이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상상해 볼만도 하다.

 

융기(隆起)
조륙운동 또는 조산운동 등 지각운동에 의해 지반이 점차적으로 상승하는 현상.

 

 

 

 

 

 

 

 

 

 

영월 청령포(寧越淸泠浦)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六六峰)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1457년(세조 3) 6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겼다.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워낙 지세가 험하고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단종이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했다고 전한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 외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조가 세웠다는 금표비(禁標碑)가 있고 관음송(천연기념물 349)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이 남아 있다.

단종은 그해 10월 관풍헌에서 17살의 어린나이에 숨졌다.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휘돌아 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보호면적은 204,241㎡로, 영월군이 관리한다.

 

수위 상승으로 나룻배는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매표소의 문은 닫혀있었다.

 

 

 

 

 

 

 

왕방연(王邦衍)

조선시대 문신 겸 시인. 세조 때 금부도사(禁府都事)로 있었는데 사육신(死六臣) 사건이 있은 뒤

1457년(세조 3) 왕명에 따라 상왕(上王)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격하되어 영월(寧越)로 귀양갈 때 호송하였다.

당시의 심경을 읊은 시조 한 수를 남겼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 있다

저 물도 내 안 같아여 울어 밤길 예놋다

 

촬영일 : 2020년 08월 1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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