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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도랑도랑 2020. 7. 25. 03:28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의 별장
이승만 대통령 화진포기념관

 

이승만 별장 뒤에 새로 지어진 기념관으로 이승만대통령의 업적 등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친필휘호, 의복과 소품, 관련도서 등이 현대적으로 전시되어있다.
이승만별장은 이와는 좀 다르게 정겹게 꾸며져있다.
침실과 거실, 집무실, 평소에 끼던 안경과 여권, 편지 등 유품이 흥미롭게 진열되어 있다.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에는 세 명의 옛 정치인의 별장인 김일성별장, 이승만별장, 이기붕별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승만 별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머물렀던 곳으로 1954년에 신축된 뒤 1961년에 폐허가 되었다가
1997년 7월 육군이 재건축하여 1999년 전시관으로 복원되었다.

 

별장의 외부는 별장답지 않게 아담하고 소박하며 허름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내부는 침실과 집무실로 쓰이던 방 두 개와 거실로 구분되어 있으며 유족들에게 기증받은 유품들로 전시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하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단출한 가구와 소박한 물건들 그리고 생전의 사진들로 그 당시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승만별장은 소박하고

단출하지만 별장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한데 어우러진 화진포 두 개의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까닭에 화진포 세 곳의 별장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용히 바깥 풍광을 즐기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평온하고 조용한 별장이다.

 

 

 

기념관 내부의 이승만 대통령 흉상(胸像)

 

 

국부병강 영세자유

 

나라를 부유하게하고

군사력을 강화해서

영구히 자유를 누리자

 

정유 원단 우남

(1957년) 

 

 

 

 

일명 김일성 별장으로 불린다. 1938년 독일인 H. 베버가 지었고,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이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와함께 여름 휴양지로 사용했으며, 공산당 간부들도 이용하였다.
1948년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이곳의입구에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하 1층·지상 2층의 석조 건물로 1964년 육군에서 건물을 철거하여 재건축하였고, 1995년 개·보수하여 장병들의

휴양시설로 사용하였다.
현재 내부에 한국전쟁과 북한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약 1km 거리에 있는 이승만별장·이기붕 별장과 함께 역사 안보 전시관을 이루고 있다.

 

 

 

 

 

 

 

 

평화의댐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에 따라 수공 및 천재지변 등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의 성금으로 1986년 공사에 착수,

1989년 1단계로 완공하였다. 국민 성금 639억 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1,666억 원을 들여 공사를 진행했으나

금강산댐의 위협이 부풀려졌다고 알려지면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후 2002년 댐 높이를 높여 2차

공사를 시작해 2005년 10월 증축공사를 마쳤다.
평화의 댐 주변에는 물문화관, 세계종공원, 비목공원과 안보관, 상설 야외 공연장 등이 있다.

* 높이 : 125m / 총 길이 : 601m / 최대 저수량 : 26억 3,000만 톤

 

 

 

2009년 5월에 개장한 '세계 평화의 종 공원'에는 60여 개국의 분쟁 지역에서 수거한 탄피 37.5t을 녹여 주조한 높이 5m, 너비 3m의 '세계 평화의 종'을 비롯하여 '노벨 평화의 종', 노벨 평화상 수상자 12명의 평화 메시지와 핸드프린팅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댐 상부에는 460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2014년 5월 5일 비수구미 광릉요강꽃 만나고 올 때 잠시 들러 본 이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친구들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난 사진 찍어 주면서 언제나 빠져있으니 미안했던지

안내소의 해설사님께 부탁드렸더니 기꺼이 응해주셨고 우리들을 모여놓고 해설까지 해주시던 김순동 해설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평화의댐에 갔을때에는 60여 개국의 분쟁 지역에서 수거한 탄피 37.5t을 녹여 주조한 종이구나!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뿐만은 아니었다.

 

 

 

세계 평화의 종 무게가 1만 관인데 그 1만관 중 1관을 분리한 9,999관으로 주조되었다가 통일의 날에 떼어진 1관을

추가하여 세계 평화의 종을 완성 시킨다고 한다. 범종(梵鐘)의 가장 위쪽에 있는 용의 모습을 한 고리를 용뉴(龍鈕) 라고 하는데 이곳에 쇠줄을 연결하여 종을 매달게 한다. 세계평화의 종에는 비둘기가 용을 대신하는것 같다.

우측의 비둘기 날개 하나가 반토막이다. 날개 부분의 반 토막이 1관인데 전시품에 그 부분이 보관되어 있는것을 볼 수가 있다. 비둘기가 바라보는 방향이 북쪽이라고도 했다.

 

 

 

 

세계평화의 종 1만관 중 9,999관을 제외한 1관이 바로 비둘기 날개 부분인 이것이었다.

저기 1관을 접합시켜 세계평화의 종이 완성되는 날이 하루 빨리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60여 개국의 분쟁 지역에서 수거한 탄피가 여기에 전시된 이런 모습이었단다.

 

 

 

 

댐의 하류지역인것 같다. 교량위를 지나 오다가 댐 벽에 그려진 그림이 보였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저기 보이는 저 교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든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평화의 댐 트릭아트작품

 

 

참 신기한 모습이었다. 오고 가는 차량도 없는 교량위에서 잠시 정차 후 차 안에서 사진 한 장을 담았는데 저 그림을

보려고 찾아오는 관광객도 적지가 않은듯 뻥 뚫린 구멍 같지만 일정 거리를 지나다가 다시 보면 길쭉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화천군 동촌리 평화의 댐에 조성한 높이 95m 폭 60m 크기의 ‘통일로 나가는 문’ 작품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밝혔다. 현직 화가 등 20명의 전문 인력이 평화의 댐 3단계 보강공사 기간 중

약 3개월 동안 제작한 이 벽화는,마치 댐 본체가 오래된 성벽처럼 보이게 하고 벽면 중앙에 하천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초대형 트릭아트 벽화다. 중국 난징에 있는 기존 기네스 기록보다 1.8배 이상의

큰 규모를 자랑한다. 벽화 속에는 수달,백조,비둘기 등 숨은 그림을 찾아보는 재미를 가미했고,최신 IT 기술을

활용해 벽화와 연계한 AR(증강현실) 체험도 가능하도록 했다.

 

                                                                                                            (2018.11.13일자 강원도민일보 중에서)

 

 

 

철원노동당사 (鐵原勞動黨舍)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북한의 조선로동당이 세웠던 조선로동당 철원지부 당사 건물.

문화재청 소유로 철원군수가 관리한다. 문화재청 공인지정 등록문화재 제22호.

 


1946년 철원군 전역이 소련군정 치하에 들어갔을 당시 강원도 도청 소재지 였던 철원에 세워진

조선로동당 철원당사 건물이다. 건축양식은 옛 소련의 영향을 받아 소련식이며 철원군 전역을 담당하는

조선로동당 철원지부 당사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건물 일부가 소실,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 철원군 일부 지역(철원읍, 갈말읍 등)이 수복되면서 조선로동당 당국에게

고문사를 당했던 사람들의 유골과 두골(頭骨), 고문 도구와 시설 등이 국군에 의해 발견되었다.


전쟁 당시 교전이 심했던 지역이자 북한군이 사수를 목적으로 항전을 하면서 국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라

건물 곳곳 마다 전쟁 당시 생겼던 총탄과 포탄 자국이 남아있다. 앞의 계단에는 전차 궤도자국까지 있다.


건물은 총 3층으로 만들어졌는데 3층은 조선로동당 철원당사 지주의 사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2층은 고문실이나 조사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그 형태가 완전히 사라져서 알 수 없다.

전성기에는 김일성 초상화와 이오시프 스탈린 초상화도 내걸렸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공기와 조선로동

당기(旗)가 게양되었던 깃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소실되었다.


건물 자체는 벽돌과 콘크리트로만 건축하였으며[3] 지은 지가 오래되어서 부식이 심하며 건물 뒷편에는

무너진 곳이 너무 많아 보강지지대를 설치하는 등, 붕괴 위험이 높아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외관을 통한 관람만 허용하고 있다. 2층은 바닥이 내려앉아서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3층 역시 옥상 부분과

바닥이 일부 소실되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지만 외관 형태는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어서 옛 소련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2002년 문화재청 공인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촬영일 : 2020년 07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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