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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양정(向陽亭)과 산천정(山泉亭)

도랑도랑 2020. 3. 27. 11:30

 

 

향양정(向陽亭)의 편액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귀휴(鄭龜休)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정귀휴(1786~1852)의 본관은 영일, 자는 경서(景書), 호는 향양정(向陽亭)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로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양정(向陽亭)을 건립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정귀휴의 저서로는『향양정유고(向陽亭遺稿)』가 전한다. 묘소는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마을에 있다.
매곡마을은 영천의 3대 양택지로 손꼽히는 길지로 마을에는 매산 정중기의 살림집인 영천 매산고택 및 산수정, 산천정 등이 있다.

 

향양정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2리 매곡마을에 있다.
매곡마을은 임고면 소재지에서 영천댐 방면으로 가다가 보면 댐 제당 직전 좌측에 있는 삼매리의 가장 안쪽 마을이다.

향양정은 조선 정조 때 학자인 정귀휴가 자연을 벗 삼아 여생을 즐기고자 삼매리 매곡마을에 건립했다.
당초 1830년 매곡마을의 고택을 매입해 수리해 쓰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약 15년 뒤인 1844년에 재원이 마련되어

향양정을 건립한 후 오늘 날에 이르고 있다.

 

 

 

향양정은 경사진 산 사면을 이용해 대체로 방형인 토석 담을 두르고 남향으로 독립 배치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 건물이다.

 

방 배면에는 벽장을 두고 건물 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퇴 앞으로는 계자각 난간을 설치한 헌함을 두고 하부로는 누하 공간을 마련했다.
누하공간의 양 방 쪽에는 함실아궁이가 있다.
창호는 청방 간에 삼분합문을 달아 공간 확장을 꾀했고 대청 뒤로는 쌍여닫이 판창을 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방의 전면과 측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특히 퇴의 양쪽에는 측면의 쪽마루로 연결되는 판문을 달고 전면 퇴 칸 우주(모서리기둥)에서
처마 끝으로 차단벽을 설치했는데 이는 외부에서 직접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는 높은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 퇴 칸 하부의 누하 공간을 만들었다.

 

누 상부에도 두리기둥을 세워 소로 수장으로 결구해 오량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퇴 칸을 제외한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모서리 서까래는 마족연으로 처리했다. 건물의 각 모서리 추녀에는 활주를 세워 구조적 보강을 했다.

 

 

 

향양정 정면 어칸 상부에는 ‘향양정(向陽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우 측방 전면 상부에 ‘양한당(養閒堂)’, 좌 측방 상부에 ‘유정실(幽靜室)’이란 현판을 달았다.
각 방의 명칭을 보아 양한당은 후학을 위한 강학당으로 이용하고, 유정실은 휴식 공간으로 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지붕의 낡은 기와를 새것으로 교체

했다.향양정 건물은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퇴 칸 측면의 기둥 밖으로 판벽을 설치한 예는 매산 정중기가 건립한 산수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향양정(向陽亭)을 마주보고 서면 우측 방문 위에는 양한당(養閒堂)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

 

 

 

좌측 방 문위에는  유정실(幽靜室)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각 방의 명칭으로 보아 양한당(養閒堂)은 후학을 위한 강학당(講學堂)으로 이용하고, 유정실(幽靜室)은

휴식 공간으로 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고도 하나 저 현판(懸板)의 한자를 알아보기에는 역부족인듯 하다.

 

 

 

向陽亭記와  原韻의 편액

 

 

 

향양정의 그늘진 뜰에는 햇볕을 쬐지못해 연한 색깔로 피어난 왜제비꽃이 활짝 피어나 있다.

 

 

 

향양정에서 내려와 마을앞 개천을 건너 마주 보이던 또 하나의 정자 산천정(山泉亭)이 있고 그 길 옆에는 과수원의 살구나무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산천정(山泉亭)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 시대 학자 정봉휴(鄭鳳休)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정봉휴의 본관은 영일. 호는 곡구(谷口)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로 매산 정중기의 증손자이며, 숙제(叔弟)인 향양정 정귀휴(鄭龜休)와

가깝게 지냈다. 매곡마을에 정자를 건립하고 장수(藏修)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매곡마을은 영천의 3대 양택지로 손꼽히는 길지로 마을에는 영천 매산고택

및 산수정, 향양정이 있다.

 

산천정은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2리 매곡마을에 있다.
매곡마을은 임고면소재지에서 영천댐 방면으로 가다보면 댐 제당 직전 좌측에 있는 삼매리의 가장 안쪽 마을이다.

 

 

 

산천정은 정봉휴가 삼매리 매곡마을에 자신의 살림집 뒤에 강학을 위해 작은 정자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이 정자가 무너져 터만 남게 된 것을 후손 정동헌·정돈식·정극식 등이 힘을 모아 개천 남쪽에 새 터를 닦아 1967년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정귀휴가 아우인 점을 볼 때 1884년(고종 21)에 건립된 향양정 보다 앞선 시기에 건립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기문은 건립 후 6년 뒤인 1973년에 완산인(完山人) 이호대(李好大)가 기록했다.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산천정은 전체적으로 인근의 향양정과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경사진 산 사면을 이용해 방형의 토석 담을 두르고 누각 형식의 정자를 남서향으로

독립 배치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건물이다. 우측 방 배면에는 벽장을 두고 나머지는 쪽마루를 설치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퇴 가장자리에는 계자각 난간을 둘러 헌함을 설치하고 그 하부는 누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청방 간에 사분합문을 달아 공간 확장을 꾀했고 대청 뒤로는 쌍여닫이 판창을 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방의 전면과 측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구조는 누마루 부분에 석주를 세워 강우의 피해를 없앴다.
누 상부는 전체를 두리기둥으로 세우고 허접한 이익공 양식으로 결구해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모서리 서까래는

마족연으로 처리했다.

 

 

 

 

산천정 정면 어칸 상부에는 ‘산천정(山泉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대청 후면 상부에 ‘산천정사(山泉精舍)’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산천정은 건립 당시의 모습은 알 수 없으나 기문에 의하면 집 뒤에 작은 정자를 건립했다는 것으로 볼 때 현재의 정자 보다 그 규모가 작았던 것이 짐작된다.
현재의 산천정은 전체적으로 인근의 향양정과 유사한 모습을 취했으나 시대적 변화에 따른 구조적 특징이 보인다.

 

 

 

 

 

 

 

 

 

촬영일 : 2020년 03월 25일(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