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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삼강묘비(李氏三綱廟碑)

도랑도랑 2019. 12. 14. 20:23

 

 

이씨삼강묘비(李氏三綱廟碑)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비.
경북유형문화재 제223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산 58-1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1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이희룡(李希龍)과 그의 아들 문진(文軫) 및 며느리 김씨에 대한

충(忠)·효(孝)·열(烈) 삼강(三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이희룡은 자가 응서(應瑞)이고 본관은 옥구(沃溝)인데,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1581년 만호(萬戶)가 되고 1591년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다음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의 적정을 살피고 오라는 명을 받고 경주와 울산 지방의 상황을 탐지하고 돌아가던 중 충주에서 적을 만나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문진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고 그 곳으로 달려가다가 영천에서 적을 만나 역시 순절하였다.
문진의 처 김씨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시신을 찾으려고 3개월 동안 전장을 찾아 헤매었으나 끝내 찾지 못하자 자결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들의 공을 높이 받들어 1710년(숙종 36) 이희룡에게 호조참의(戶曹參議), 문진에게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의 관직을 추증하고
정각(旌閣)을 하사하였으며, 1766년(영조 42) 지금의 위치에 그들의 행적을 기리어 비석을 세웠다.


이 삼강묘비는 형조판서 겸 홍문관·예문관대제학 남유용(南有容)이 비문을 짓고, 경주부윤 경주진병마절제서(慶州鎭兵馬節制使) 홍재(洪梓)가 글씨를

썼다. 비석의 전면은 15행, 후면은 16행으로 되어 있으며 각행의 글자수는 36자이다. 그리고 비액(碑額)은 전서(篆書)로 썼고 본문은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다.

 

 

 

 

 

 

 

 

 

 

삼송재(三松齋)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효막골 앞에 있다. 임진왜란 때의 공신 이희룡(李希龍)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건물 앞에 세 줄기로 뻗은 소나무 노거수가 있어 삼송재(三松齋)라고 하였다.
3량가(三梁架)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이다.
평면은 2칸, 대청 좌우에 일렬로 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뒤쪽에 이희룡과 그의 아들 문진(文軫), 며느리 열부김씨를 함께 봉안하였던 사당 삼강사(三綱祠) 터가 있다.

 

 

 

 

 

 

 

 

삼괴정(三塊亭)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68호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무신 이방린 관련 누정. 정자. 시도유형문화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8호. 임진왜란 때 경주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동호(東湖)이방린(李芳隣)과 동생인 유린(有隣)·광린(光隣) 삼형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7대손 화택(華宅)이 1815년(순조 15)에 건립한 정자이다.

 

이방린은 경주판관이었던 박의장(朴毅長), 의병장 권응수(權應銖)와 함께 경주성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는데,
이때 화포장(火砲匠)이었던 이장손(李長孫)이 만든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사용하였다고 《관감록 觀感錄》에 기록되어 있다.
삼괴정이라는 이름은 삼형제가 의병으로 출전하기에 앞서 현재의 정자터에 괴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놓고 출전하였다 하여 명명된 것이다.

 

이 정자는 경사진 대지에 터를 잡아 전면은 누각(樓閣)으로 꾸미고, 출입은 뒤쪽으로 하게 하였다. 평면은 정면 3간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다시 어간(御間) 뒤로는 세로로 2칸의 마루방을 둔 매우 특이한 평면형태를 취하고 있다. 2개의 방에는 각기 현판을 달았는데, 어간의 마루방은

‘필경재(必敬齋)’라 하여 이방린을 의미하는데 상청(上廳)이라 부르고 있으며, 좌우측방은 ‘화수당(花樹堂), 포죽헌(苞竹軒)’이라 하여 두 동생을 상징하고

있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이나 후면의 상청 부분은 3량가로 이루어져 있다. 전면 5칸의 대량(大樑) 위에는 양봉(樑奉 : 보아지)과 공아(拱牙)를 교차

시켜 종량(宗樑)을 받게 하고, 파련대공형(波蓮臺工形)으로 선각(線刻)한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주두(柱頭) 상부는 조선 후기의 살미(山彌) 형상인 초익공(初翼工)으로 장식하고 뒤 뿌리는 보아지로 선각하여 대량을 받게 하였다.

 

 

 

 

 

삼괴정은 대문이 숟게 잠겨져 있었고 담 벽이 높아 안쪽의 전경을 사진으로 담아보기엔 역부족이었다.

 

 

 

 

삼괴정(三塊亭)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다산1리 마을회관

 

 

 

 

 

 

 

촬영일 : 2019년 12월 12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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