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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獨樂堂)

도랑도랑 2019. 10. 3. 23:23

 

 

독락당 (獨樂堂)
옥산서원 옆을 흐르는 자계천은 그 풍광이 그지없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1531년(중종 26)에 이언적 선생은 옥산정사 독락당 주변 경승 10곳을 명명하여

사산오대(四山五臺)와 용추라 하고, 경승지마다 글을 남기니 그때 쓴 글들은 보물 제5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옥산서원 관람을 마친 뒤에는 바로 독락당

으로 갈 것이 아니라 사산오대를 감상하면서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길이 좋다. 그 끝에 독락당이 있다.

 

사산오대(四山五臺)

이언적은 1530년 이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좌천되자 관직을 그만 두고 귀향한 뒤, 이듬해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獨樂堂) 등의 옥산 정사를

짓고 주위의 승경(勝景)을 명명하였다.이들 글씨는 그중 자옥산(紫玉山)·용추(龍湫)·귀영대(歸詠臺)·징심대(澄心臺)·세심대(洗心臺)·탁영대(濯纓臺)·

관어대 (觀魚臺) 7곳의 명칭을 대자(大字)로 써서 축장(軸粧)한 것들로, 회재의 아들 이전인(李全仁)이 '원조오잠'의 글씨를 받을 때 이 대자 편액서도

함께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옥산정사에는 독락당이라는 현판이 함께 걸려 있는데, 독락당은 정침과 그 가옥 전체를 말하는 것이며 별당은 따로 옥산정사로 부르고 있다.
옥산정사는 나지막한 외벌대의 기단 위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대청과, 전면 한 칸 측면 두 칸의 온돌방을 두고 있다.
그리고 안채로 연결되는 뒤쪽에 반 칸짜리 서고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건축물이 안채와 연결되도록 하였다.
그래서 옥산정사 지붕의 모습을 보면 대청 방향으로는 팔작지붕 형식이고 안채 방향으로는 우진각 지붕이다.
서고라는 공간을 중간에 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지붕을 처리하고 안채와의 연결도 보다 자연스럽게 되도록 만들었다.

 

 

 

 

독락당은 전면에 원기둥과 장혀 받친 굴도리를 사용하고, 안쪽으로는 두리기둥을 사용하여 상부 가구를 꾸미고 있다.
주두를 세우고 초익공으로 장식하고 있는데, 단청의 뇌록 가칠로 부재를 단청하고, 먹선이 백선과 구분되어 안정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복화반, 동자대공, 판대공과 화반대공들에는 다양한 부재의 받침을 두어 다양한 양식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민가 건축에서 솟을합장을 구성한 경우도 보기 드문 예로, 독락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특히 대청마루를 보면, 우물마루를 꾸미는 장귀틀과 동귀틀의 방향이 측면 한 칸에서 다르고, 천장에서도 대들보까지 막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별도의 공간이 있다가 나중에 하나로 합쳐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기록으로는 회재의 동생인 농제공이 죽은(1555년 경)후 전면 벽체를

없애고 마루를 꾸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에도 한옥은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고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현대 주택은 벽을 없애고 창문을 없앤다면 원래의 모습도 변하지만 모양은 초라하게 변하고 균형감을 잃게 된다.

 

 

 

 

 

 

 

 

 

 

 

 

 

 

 

 

 

 

 

 

 

 

 

 

 

 

 

 

 

 

 

 

 

 

 

 

 

 

 

 

 

 

 

 

 

촬영일 : 2019년 10월 03일(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