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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玉山書院)

도랑도랑 2019. 10. 3. 22:30

 

 

옥산서원(玉山書院)
옥산서원(玉山書院)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彥迪, 1491∼1553)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1573년(선조 6)에 창건되었다.
서원은 1574년(선조 7)에 '옥산(玉山)'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이 전국 47곳의 서원을 제외한 나머지 서원을 철폐할 때에

훼철되지 않은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옥산서원은 서향을 했는데, 동·서·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트여 있다.
서원에서 정면인 서쪽 앞으로 마주보이는 산은 무학산(舞鶴山)으로, 북쪽의 자옥산(紫玉山)에서 갈라져나온 맥이다.
서원의 외삼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앞으로 작은 내가 흐르고 이곳을 건너면 2층 다락 건물인 무변루(無邊樓)에 이르게 된다.

 

 

 

역락문과 무변루 사이의 작은 내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흐르게 한 서원의 명당수이다.
역락문은 『논어(論語)』의 「학이(學而)」 편에 나오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취한 것이다.

 

 

 

 

 

 

 

 

 

 

강당 전면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글씨이고, 강당 대청 전면에 있는 '옥산서원' 편액은 창건 당시

사액받은 편액으로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8∼1609)의 글씨이며, '무변루'와 '구인당'의 편액은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의 글씨이다.

 

 

 

무변루를 마주보고 있는 강당 건물인 구인당(求仁堂)과 그 앞 좌우의 동재와 서재가 강학공간을 이루고 있다.
구인당은 가운데 3칸이 대청마루이고, 왼편과 오른편 협실은 온돌방이다.
구인당에서 앞마당을 가로질러 무변루 밖으로 멀리 무학산을 바라보면 자연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인당의 '구인(求仁)'은 성현의 학문이 다만 '인(仁)'을 '구(求)'하는 데 있다는 회재 성리학의 핵심을 나타내는 말로,

회재의 저서 『구인록(求仁錄)』에서 취한 것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건물인데,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그 양측은 각각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이며, 그 밖으로 좌우의 각 1칸에는 퇴칸처럼 덧붙인
누마루가 조성되어 서원 쪽으로는 강당 앞마당이 처마 사이로 보이고, 서원 밖으로는 계곡과 산이 한눈에 들어와 건물과 자연 사이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무변루 대청은 외부 쪽으로는 벽체를 설치하고 판문을 달아 공간의 트임과 막힘을 제한하는 한편, 강당 쪽으로는 창호를 달지 않고 트이게 하여
내부 지향적인 공간 구성을 하였다. 무변루는 외삼문에서 보면 2층이지만, 강당 쪽에서는 위층만 보인다.

 

 

 

 

 

 

 

옥산서원을 구성하는 건물들은 정문에서 차례로 문, 누, 강당, 사당 등이 일직선을 이루는 중심축 선상의 마당을 중심으로 각각 고유의 영역을 구성하며

공간의 켜를 만들고 있다. 기하학적인 구성을 이루면서도 주변 자연 경관과 어울리는 배치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무변루, 구인당, 체인묘 일대의 외부공간은 전체 배치의 구심점이 되어 개별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영역 사이로 스며드는 공간의 엇물림, 그리고 중첩되는 지붕선과 담으로 이어지는 공간 구성은 옥산서원 건축공간의 특성을 읽게 해준다.

 

 

 

 

 

구인당 뒤에는 내삼문인 체인문(體仁門)이 있고, 그 뒤에 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사당인 체인묘(體仁廟)와 전사청이 있다.
체인묘의 '체인(體仁)'은 어질고 착한 일을 실천에 옮긴다는 말로, 성리학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다.
사당 담 밖 왼쪽으로는 경각(經閣)이, 오른쪽으로는 신도비각(神道碑閣)이 있고, 서원 영역 왼쪽으로는 고직사, 포사, 문집판각 등이 있다.

 

 

 

 

 

 

촬영일 : 2019년 10월 03일(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