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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수승대(居昌 搜勝臺)

도랑도랑 2015. 6. 14. 18:46

 

 

知者樂水(지자요수) 仁者樂山(인자요산).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라는 말처럼 언제나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즐겼던 옛 선비들.

특히 빼어난 경치로 선비들의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거창의 수승대라고 할 수가 있다. 영남 제일의 동천으로 쳤던 안의삼동(安義三洞)중

하나인 원학동 계곡 한 가운데 위치한 화강암 암반 수승대, 긴 계곡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수승대에는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던 이곳은 국력이 쇠약해진 백제가 신라로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 고 하여 원래 수송대(愁送臺)라 불리던

곳이라는데, 이름만 들어오던 이 수승대를 지난 2012년 11월 18일 나목(裸木)의 고목(古木)들이 쇠잔한 초 겨울의 짧은 햇살을 받으며 즐비하게 늘어선 강가를 따라

처음 들어서 보았던 이곳.  벌써 이년 반이나 훌쩍 지나간 시간 유월의 긴긴해를 핑계삼고 녹음이 가려진 모습들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수승대(搜勝臺)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하여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

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으며,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 수승대(搜勝臺)는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

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

(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 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搜勝臺(수승대) 암구대(岩龜臺) 거북바위 관람(觀覽)의 포인트는 이 부분인것 같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선생이 44세 때 마리면 영승에 우거하고 있는 장인 권질(權質)공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가 1월 7일날 돌아가기전에

시를 지어 보냈다는 내용. 붉은 글씨로 새겨진 부분의 수송대(愁送臺)와 수승대(搜勝臺)라는 글씨와 오른쪽  세로로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라는 글씨가

있고 옆에는 퇴계선생이 보내준 5언절구 시가 새겨져 있다.

 

수승대(搜勝臺)
搜勝名新換(수승명신환) /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바꾸니
逢春景益佳(봉춘경익가) / 봄을 만난 경치가 더욱 아름답구나
遠林花慾動(원림화욕동) / 먼 숲 꽃들이 피어나려하고
陰壑雪猶埋(음학설유매) / 응달의 눈은 녹으려 하는데
未遇搜尋眼(미우수심안) / 수승대를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惟增想像懷(유증상상회) / 속으로 상상만 늘어 가누나
他年一樽酒(타년일준주) / 뒷날 한 동이 술을 마련하여
巨筆寫丹崖(거필사단애) / 커다란 붓으로 벼랑에 시를 쓰리라

 

왼쪽에는 갈천장구지대(葛川杖廐 之臺)가 새겨져 있는데, 퇴계(退溪)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뜻을 담은 갈천(葛川)의 시는 수승대 동천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이별의 아쉬움을 자연의 변천에 비유하여 아름다운 슬픔으로 승화시킨 경지를 느끼게 한다.

 
花滿江阜酒滿樽(화만강부주만준) / 꽃은 강언덕에 가득하고 술은 술통에 가득
遊人連決漫紛紛(유인연결만분분) / 벗과 놀자고 옷깃을 이끌어도 분분히 뿌리치네
春將暮處君將去(춘장모처군장거) / 봄은 곧 끝나려하고 자네마저 떠나려 하니
不獨愁春愁送君(불독수춘수송군) / 홀로 봄을 탄식하는 것은 그대 보내는 시름만은 아닐세

 

갈천 임훈(葛川 林薰, 1500-1584). 석천공(득번)의 아들. 호는 自怡堂. 6賢 解愁送意以示諸君(해수송의이시제군)

 

 

搜勝臺(수승대)  석곡 성팽년(石谷 成彭年, 1540-1594). 원학동.

 

華仗春俱至(화장춘구지) 봄이 오면 꽃이 일시에 피어나니

龍門節正佳(용문절정가) 용문의 봄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溪肥磯半沒(계비기반몰) 시냇물 부러 바위가 반쯤 잠기고  

山黑雨全埋(산흑우전매) 산은 컴컴하게 먹구름이 덮고 있네.

石帶詩仙字(석대시선자) 바위엔 시와 신선 이름 빼곡이 새겨 있고

盃寬野客懷(배관야객회) 술잔은 나그네의 소회를 넉넉하게 하네.

莫愁雲日暝(막수운일명) 구름이 날마다 덮이는 것 걱정하지 말게

餘照在層崖(여조재층애) 남은 햇빛이 층층의 벼랑에 비추고 있으니

 

또 하나 바위에 새겨진 한자의 대부분이 사람의 이름으로 보이나 신씨와 임씨의 성이 눈에 뜨인다는 점에서 내력을 살펴 보았더니 여기엔 또 기막힌 사연들이

숨어 있는듯 하다.

 

수승대(搜勝臺) 사연

삼국시대 백제가 멸망할 무렵,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인 이 곳에서 백제의 사신을 송별하고 돌아오지 못함을 슬퍼했다고 해서 수송대(愁送臺)로 불렸고, 모양이

거북과 같다고 하여 요수 신권선생이 암구대(岩龜臺)라고 이름을 짓기도 했으며, 수많은 현인들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해서 모현대(慕賢臺)라고도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1543년 수승대 인근에 있는 처가집으로 설을 보내러 온 퇴계 이황이, 주변 풍경은 아름다운데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수승대(搜勝臺)로 이름을 바꿀것을

제안 했다는데, 요수선생은 반겼다고 하며, 윗마을에 갈천 임훈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고 한다. 이리저리 요수선생과 갈천선생은

사이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는듯 두 집안이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는 오랫동안 이 수승대 소유권을 놓고 싸움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928년 1월 4일자 동아일보에 '수승대쟁탈전'이라는 기사까지 났었다고 하는데 거북바위엔 수승대로 이름을 바꾸자는 퇴계 이황의 시가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요수선생의 시가 아닌 갈천선생의 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갈천의 시를 보고 못 마땅해한 신씨집안에서는, 이 곳이 요수선생이 수양한 곳이라는 '요수신선생장수동(樂水慎先生藏修洞)'라는 글씨를 새기게 되었고, 이에

질새라 임씨집안에서는, 이 곳이 갈천이 노닐던 장소라는 '갈천장구지소(葛川杖屨之所)라는 글씨를 새기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 신씨 집안에서는 문중사람들

이름을 바위에 새기게 되고, 임씨 집안도 따라 새기게 되었다는것.  그러다보니 신씨 집안과 임씨 집안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엔 두 집안에서 거북바위에 대한 수 십년에 걸친 소유권 소송을 진행하기에 이르게 되었는데, 많은 집안 사람들이 재산을 탕진하게 되고, 죽는 사람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바위일 뿐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 라는 판결이 나온 후에서야 비로소 잠잠해 졌다는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승대 거북바위에

새겨진 글씨엔 말이없고 적지않게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하기만 했다.

                                                                                                                                            촬영일: 2015년 6월 13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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