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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고헌(慕古軒)

도랑도랑 2015. 6. 7. 07:32

 

 

모고헌(慕古軒)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1호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 정규양(鄭葵陽)이 1701년(숙종 27) 건립한 누각이며, 본래는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1730년(영조 6) 제자들이 개축하여 모고헌이라 칭하였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사방으로 퇴간(退間)을 두른 정사각형 평면구조이다.


정규양은 형인 정만양(鄭萬陽)과의 남다른 우애로 유명하다. 둘을 함께 일컬어 양수라고 하였는데, 형제는 특히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여 정중기(鄭重器), 조현명

(趙顯命), 정간(鄭幹), 이유(李瑜), 신준(申濬)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곤지록(困知錄)》《이기집설(理氣輯說)》《의례편고(疑禮便考)》《상지록(尙志錄)》

《모현록(慕賢錄)》 등 100여 권의 저서를 함께 저술하였다.

 

 

 

 

 

 

 

평면은 가운데의 온돌방 1간을 중심으로 온돌방의 4위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둘레는 전면에만 계자난간을 설치하고 나머지 3칸에는 모두

판벽과 판문으로 막았다. 이 건물은 가구수법 등에서 건립당시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는 평면구성에서도 독특함을

엿볼 수 있는 정자이다.

 

 

 

횡계 서당(橫溪書堂)

 

횡계 서당은 1737년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과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을 배향하는 서원을 건립하려 하였으나 서원남설(書院濫設)을 막는 나라의 제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760년 사교당에서 양 선생의 향사를 올렸다.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23년 횡계 서당으로 복원하여 복향하였다.

1944년 관리사가 소실되었다.

 

모고헌은 1701년에 정규양[1667~1732]이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이거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1730년에 문인들이 개축하여

모고헌이라 하였다.

 

 

 

 

 

 

 

 

 

횡계 서당은 강당과 동재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3칸을 마루방으로 드리고 양 옆을 온돌방으로

꾸몄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모고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횡계 서당 내에 있다. 낭떠러지 위에 자리 잡은 관계로 계류에 면한 전면에서 보면 중층 누각의 형태이나 서당

마당 쪽인 배면에서는 단층 건물로 되어 있다.


평면은 가운데의 온돌방 1칸을 중심으로 온돌방의 4위에는 모두 우물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둘레는 전면에만 계자 난간을 설치하고 나머지 3칸에는 모두 판벽과

판문으로 막았다.

 

 

 

 

 

 

 

경북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경북유형문화재 제271호. 조선시대. 이 건물은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정규양이 숙종 27년(1701)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태고와라 하였으나, 영조 6년(1730) 문인들이 개축을 하면서 모고헌이라 하였다.

 

 

 

 

 

                                                                                                                                                                           촬영일: 2015년 05월 31일(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