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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서원(龜淵書院)

도랑도랑 2015. 6. 14. 21:01

 

 

구연서원(龜淵書院)

 

1694년(숙종 20)에 지방유림이 신권(愼權)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신권이 제자를 가르치던 구주서당(龜州書堂) 자리에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성팽년(成彭年)과 1808년에 신수이(愼守彛)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

되어 아직 복원되지 않고 있으며, 서원 터에 사적비와 신권을 위한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만 남아 있다.

 

 

 

 

 

구연서원 관수루(龜淵書院 觀水樓) / 경남유형문화재 제422호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구연서원의 문루(門樓)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인 성팽년(成彭年 1540~1594)과 신수이(愼守彛), 신권(愼權)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구연서원(龜淵書院)의 문루(門樓)로,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22호로 지정되었다. 구연서원은 원래 연구재라 하였다가 1694년 구연서원으로 개칭되었고, 1868년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문루인 관수루와 강당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1740년(영조 16) 건축된 관수루(觀水樓)는 정면 3칸·측면 2칸의 중층 누각건물로 겹처마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 암반을 활용하고, 틀어진 재목을 하부기둥으로

사용하는 등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축물로 형태 또한 아주 아름답다. 암반 사이에 조성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모두

원기둥이고, 기둥 바깥쪽 네 모퉁이에는 적절하게 높이를 조절한 활주를 세웠다.

 

누각 아래층에 출입문을 달고 나머지 공간은 모두 개방하였으며, 윗층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계자난간을 빙 둘렀다. 자연과의 조화라는 한국건축의 가장 큰

특징을 잘 보여주고, 누정건축의 모범이라 할 만큼 비례가 뛰어나 학술적 가치가 높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관수(觀水) 란 <맹자>에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봐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군자의 학문은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수신선생장수지지) 라는 말은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초야에 묻혀 수양하던 곳이라는 뜻이다. 요수(樂水)는 신권(愼權 1501~1570)선생의 아호이다.
요수(樂水)란 요산요수(樂山樂水)로 표현되는 공자사상의 핵심이다. 요(樂)는 '좋아할 요'로서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다' 라는 뜻이다. 이 아호는 퇴계 이황선생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신동건 정려 / 효자 증 통훈대부 사헌부감찰 신동건 지려
효성의 극치로 물고기에 효자를 새긴 신동건의 정려이다. 위천면 황산리 768번지 수승대 국민관광지 경내 청송당과 나란히 서있다. 정려는 원래 돌문 앞에 있었는데

1987년 가을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효자의 손자 되는 신병채가 1903년에 건립하였던 것이다. 전면에 (효자증 통훈대부 사헌부감찰 신동건 지려 상지 이십 구년 임진

사월일 명정)이라 음각하고 이면에는 기문이 세자로 음각되어 있다.

 

 

 

 

 

 

 

구연서원의 정문 격인 ‘관수루’는 1740년(영조 16년)에 걸립되었다. 이 누각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계자난간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커다란 거북이 형상을

한 바위 위에 틀어지고 굽은 형태의 기둥을 그대로 사용해 지은 것이 특징이다.

 

 

 

 

황산 수승대의 구연동 일대를 요수 장수동이라고도 한다. 관수루의 서쪽 주초인 욕기암면에는 “요수신선생장수동”이라 각자하였으며 수승대 암면에는

“요수장수지대”라 새겼다.

 

 

 

 

거북바위엔 수승대로 이름을 바꾸자는 퇴계 이황의 시가 새겨져 있는데 그 옆에는 요수선생의 시가 아닌 갈천선생의 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갈천의 시를

보고 못 마땅해 하던 신씨 집안에서는 관수루(觀水樓) 주초인 자연석 바위에 '樂水愼先生藏修洞' 이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요수 선생이 몸을 감추고 마음을 닦은

곳이란 뜻이라고 한다.

 

거북바위에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선생이 지어 보내 주었다는 5언절구의 시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와 퇴계(退溪)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뜻을 담은 갈천(葛川)의 시 갈천장구지대(葛川杖廐 之臺)가 새겨져 있다.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
搜勝名新換(수승명신환) /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바꾸니
逢春景益佳(봉춘경익가) / 봄을 만난 경치가 더욱 아름답구나
遠林花慾動(원림화욕동) / 먼 숲 꽃들이 피어나려하고
陰壑雪猶埋(음학설유매) / 응달의 눈은 녹으려 하는데
未遇搜尋眼(미우수심안) / 수승대를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惟增想像懷(유증상상회) / 속으로 상상만 늘어 가누나
他年一樽酒(타년일준주) / 뒷날 한 동이 술을 마련하여
巨筆寫丹崖(거필사단애) / 커다란 붓으로 벼랑에 시를 쓰리라

 

갈천장구지대(葛川杖廐 之臺)

花滿江阜酒滿樽(화만강부주만준) / 꽃은 강언덕에 가득하고 술은 술통에 가득
遊人連決漫紛紛(유인연결만분분) / 벗과 놀자고 옷깃을 이끌어도 분분히 뿌리치네
春將暮處君將去(춘장모처군장거) / 봄은 곧 끝나려하고 자네마저 떠나려 하니
不獨愁春愁送君(불독수춘수송군) / 홀로 봄을 탄식하는 것은 그대 보내는 시름만은 아닐세

 

 

 

 

 

 

 

 

 

관수루 판상시(觀水樓 板狀詩)

 

 

 

 

 

 

 

 

 

 

 

 

                                                                                                                                            촬영일: 2015년 6월 13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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