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화유적유물산책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畫)

도랑도랑 2013. 3. 28. 22:58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畫)

높이 3m, 너비 10m의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고 있는 상태로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전체 화면에는 고래, 물개, 거북 등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염소 등 육지동물 그리고 탈을 쓴 무당,

사냥꾼, 배를 타고 있는 어부, 목책, 그물 등 다양한 종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들 모습은 떼어내기 수법으로 형체를 표현한 음영화(陰影畵)와 쪼아파기 수법의 선으로 나타낸 선각화(線刻畵)로

나타내었으며 시베리아 암각화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수렵과 어로를 위주로 한 당시의 생활풍속을 알려주는 가장 귀중한 선사시대 문화유산으로 한 화면에

20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종류의 물상들이 새겨져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예로서 고고학,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울산에선 2개밖에 없다는 국보이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암각화 유적으로 평가받는

울주 천전리 각석(川前里 刻石·국보 제147호)과 반구대 암각화(盤龜臺 岩刻畵·국보 제285호)를 한꺼번에 찾아가는 길이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고작 40여년 이 유적들은 문화 인류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를 논하기조차 어려울만큼 소중하고

고귀한 문화유산인것이다. 신석기와 청동기, 삼국시대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적들을 한꺼번에

찾아간다고 생각을 해보면 길가의 돌 하나라도 지나쳐 볼 일은 아니란 생각이었다.

 

 

 

대곡천 건너 멋진 절벽의 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절경이 감탄스러울 뿐만이 아니라  고려말 친원배명 정책을 반대하다가

언양에서 2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포은 정몽주 선생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자주 찾았다는 반구대가 바로 그곳이라는 것이다.


경주 최씨 가문의 오래된 정자이자 현재는 청소년 예절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집청정(集淸亭) 앞에서 대곡천 건너편을

바라보면 거북이 머리에 해당하는 작은 언덕 위에 포은 선생 유허비가 보이고 그 아래 수면 위 바위에는 '반구(盤龜)'라는

음각 글자가 선명한데 이 부분의 사진들은 뒤에 따로 엮어 보도록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된 대곡천을 설명한 안내판 인근 반구서원 앞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으면

울주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가 기록된 바위가 있다.  연로개수기 유적을 지나 오른쪽으로 목재 데크를 건너면 대나무숲길을

통과하게 되고 우측 바로 옆에 울주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 유적.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과 마찬가지로 약 1억 년 전인

전기 백악기의 공룡들의 유적이 있는곳이다. 강 건너 반구대 절경이 어우러지고 해마다 이맘때면 버드나무 잎이 파릇이 돋아

나오는 풍경들이 한층 더 운치를 더해주는듯 몇 번을 가고도 자꾸만 가고싶어지는 곳 중의 한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반구대암각화 벼룻길은 반구서원에서 반구대암각화로 가는 벼랑길로 폭 2.5m 미만으로 차량 1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로

협소한 길이며, 이 길에는 비지정문화재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가 바위에 명문으로 새겨져 있는데, 연로(硯路)는

벼룻길 이라는 뜻으로 벼루처럼 미끄러운 바윗길 또는 벼랑길, 사대부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학문길 등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고 한다.  명문은 조선 효종 6년(1655년)에 길을 개수할 때 시주(施主), 화주(化主), 석수(石手)로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한 내용으로 추정되며, 마멸이 심해 알아보기는 어려우나, 최근 발견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 벼룻길을 지나 조금 더가면 우측으로 목재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이곳을 지날때 호수처럼 고인물 위로 어지럽게 자리잡은 버드나무 잎들이 보기 좋아 난 항상 한참을 바라보며 감상 하기도 한다. 이곳을 지날무렵 길옆의 대나무 숲도 좋고 그 대나무숲 끝 지점 우측엔 또 하나의 공룡발자국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황토색 흙길을 천천히 걸으며 물 마른 강바닥의 파릇이 돋아나오는 버드나무 숲을 한참을 바라보며 걷는 길 옆으로  키 큰 참꽃나무 한그루가 또 나를 잡아 세웠다.

 

 

 

몇 차례 가본곳이라지만 갈 때마다 또 다른 풍경과 새로운 모습에 놀랄수밖에 없는듯도 하다.

지금이 갈수기(渴水期)여서 그랬는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는듯 했다.

설치되어잇는 고성능 망원경으로 안내판에 그려진 부분의 모습을 쭈욱 훝어보고난 후 목책 난간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우측 끝까지 바위의 모습들을 담아봤다. 확대해서 보면 사냥꾼의 화살촉이라도 하나 더 나타날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내 카메라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아주머니 한분이 몇 안되는 관람객들을 불렀다 여기 안내판의 설명을 잠시 듣고 보시면 더 찾기 쉽고 이해가 쉬울것이란 말씀을 곁들이면서 외우고 있는듯 시원 시원한 해설 분명 해설사는 아닌듯

싶었는데 나중에 마을주민 이시고 해설사님들은 퇴근을 한 후여서 자원봉사 처럼 이곳을 지키고 계셨다는것이었다. 

 

암각화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새로운 사실  재미있는 내용을 들려주시길래 귀담아 들어 보았더니 바로 사진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분들이기도 한데 저 암각화의 그림들은 대부분이 사람이 서서 손이 미치는 부분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저기에는 분명 남여 각각의 성기가 조각(?) 되어 있는데 찾아 보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 바위에는 사람 얼굴형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는 여자이고 하나는 남자의 얼굴이라 했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보니 난 처음부터 사진을 담으면서 송이버섯을 연상 하기도 했는데 바로 그것이 남자의 성기였고 또 하나 여자의 성기는 사각형 안에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다고 했으니 자연적으로 생긴것이든 조각된 형상이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풍요와 다산을 가장 중요시 했을것이란 해석에 공감을 하기도 했다.

 

 

 

 

 

 

사진에서 위는 남자의 성기라 했고 아래는 여자의 성기라 했다.

 

 

 

정면에 보이는 우측은 여자의 웃는 얼굴 모습이고 좌측은 남자의 얼굴 모습이라 했다.

요즘 가장 흔하게 눈에 뜨이는  단어 중 하나가 스토리텔러(storyteller) 또는  컬처텔러(Culture-teller)인것도 같다.

이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자리 창출이란 면도 엿볼수있는 대목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긴 여행이든 단 몇시간의 여행이든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양성된 전문인들이 들려 주는 역사 지역문화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수 있다는것은 여러모로 유익한것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인것 같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 찾는이들에게 흐뭇한 인상을 남겨 주는듯 해서

더 기억에 남을것 같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촬영일: 2013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