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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법광사지(浦項 法光寺址)

도랑도랑 2013. 3. 25. 00:06

 

浦項 法光寺址

2008년 1월 30일 사적 제493호로 지정 경상북도 포항시 신광면 상읍리에 있는 법광사(法廣寺)의 유적으로,
법광사는 신라 진평왕(579∼631) 때 왕명에 의하여 경주 북방 80리 위치에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규모가 525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몇 점의 석조유물(石造遺物)만 남아 창건 당시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지금 법광사지에 있는 사찰 건물들은 193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파손을 면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석조 유물 중에는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4층으로 된 사리탑과
새로 지은 법광사 대웅전 내에 있는 연화석불대좌(蓮華石佛臺座), 사적비(事蹟碑)와 쌍두귀부(雙頭龜跌),
불교의식 때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리는 석조당간지주(石造幢竿支柱) 등이 있다.

연화석불대좌는 높이 1.1m, 지름 2.2m이고, 쌍두귀부는 너비 1.4m, 높이 1.8m이며, 사리탑의 높이는 4.2m이다.
또한 조선 영조 때에 세운 사리탑 중수비(重修碑)가 있어 법광사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법광사지 → 포항 법광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문화재청)

 

 

 

 

연화석불대좌(蓮華石佛臺座)

 

 

 

 

연화석불대좌(蓮華石佛臺座) 주변의 주춧돌

 

법광사는 삼층석탑에 봉안되었던 <법광사석탑기>에 의하면 9세기 전반인 신라 제42대 흥덕왕 3년(828)에

김균정이 창건한 왕실 사원으로 제46대 문성왕대에 번창하였으며,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 등의 문헌에 사찰의 이름과 위치 등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어 오랜 기간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4층으로 된 석가불사리탑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는 사리석탑은 1968년에 도굴되었으며, 도굴 뒤 탑 속에서는 탑지석 두 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는 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길이 10.8㎝, 두께 1.5㎝, 너비 4㎝의 석회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대좌와 옥개까지 갖춘 돌비석이다.
`법광사석탑기`라고 제목을 붙인 이 유물은 법광사의 자세한 내력을 밝히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석가불사리탑비

 

 

석가불사리탑비의 뒤쪽으로 보이던 석탑 부재는 현재의 법광사를 창건한 분의 오해로

법광사터 삼층석탑이 한때 사층석탑으로 잘못 복원되었을 때 사용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쌍두귀부(雙頭龜跌)

 

 

 

 

 

 

 

 

 

 

 

길 옆의 주춧돌과 석재들

 

 

벽허당대선사법광사창건공덕비

 

보봉당대선사사리탑과 탑비

 

 

 

 

 

 

이런 모습 깜짝 놀랐다.

언젠가 여기 기장이 익어갈 무렵 기장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는데 발굴 현장이 되어 있었다.

궁금해서 바로 옆 산불감시초소 아저씨께 물어 보았더니 이 곳이 법광사로 들어가는 입구 쪽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발굴작업이 시작 되었는지 그러고 보니 법광사지 당간지주가 있는줄은 모른채 지나 다녔던 것이다.

 

현재의 법광사는 오래된 절이 아니다.

원래의 법광사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에 원효대사가 왕명에 의해서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 당시에는 대웅전과 2층 금당. 향화전. 5층 석탑 등 525칸이 있었다고 한다.

 

828년(흥덕왕 3년) 7월에 향조와 원적이 재산을 희사하여 석가모니불 사리탑을 세우고 사리 22과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1746년(영조 22년)에 명옥 등의 비구니들이 5층탑을 중수하려고 헐었을 때, 맨 아래층에 옥으로 만든 함 속에 22과의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다시 동함을 만들어 사리를 탑 2층에 봉안하고, 그 해 가을에 탑 앞에다 법당을 지어

금강계단이라 하였다. 그러나 얼마 못가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1876년부터 1886년까지 규민이 페허된 원통전을 비롯하여 득수당. 상운각. 독성각 등을 차례로 중건하였다.

 

1887년에는 5층 가운데 3층만 남아 있던 사리탑을 중수하였는데, 일을 마치고 난 뒤 꿈속에 탑의 후면에 서 있는 부처를 보고

다음날 그곳파보았더니 1750년에 건립한 '사리탑중수기'가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그 뒤 다시 화재로 소실되어 중건을 이루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석탑과 불상연화대좌.쌍두귀부 등이 있다.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는 사리석탑은1968년에 도굴되었으며, 도굴당한 탑 속에서 탑지석 두개가 발견되었다.

이는 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석회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대좌와 옥개까지 갖춘 돌비석이다.

현재 법광사 뒤쪽 밭 가운데 있는 연화석불대좌는 소실된 대웅전 석가불의 좌대로 추측되는데, 높이 1.1m, 직경 1.1m, 직경 2.2m,둘레 7.3m로, 대좌의 규모로 보아 이 대좌 위에 거대한 불상이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귀부는 창건 당시 사적비의 좌대라고 하며 높이 1.4m, 직경 1.8m, 원경 0.5m이다.

석가불사리탑은 인도 석가모니 진산사리(眞身舍利) 22립(粒)을 보관하고 왕족의 혈통을 계승하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탑의 높이는 4.2m이다.

법광사 북쪽방향 150m 지점에는 신라 26대 진평왕의 위패를 모신 '숭안전'이 있다.

                

                                                                                                      촬영일: 2013년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