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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암과 망해사

도랑도랑 2012. 6. 11. 00:16

 

처용암(處容岩)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와 관계가 있는 바위.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에 있다.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운무가 심해 앞을 볼 수 없었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바다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왕이 곧 명을 내려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했다는데
그곳이 울주군 청량면에 있는 망해사이다.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 해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지역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바다 위로 올라와 춤을 추었는데
그 아들 중의 하나인 처용이 왕을 따라 경주로 갔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고 급간(級干)이란 벼슬을 얻어 나랏일을 도왔다.
처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이 바위를 처용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2012년 6월 5일 야간대기 근무조였다.

다음 날 인 6월 6일은 제57주년 현충일이었는데

기왕이면 대기근무 다음날이 평일이엇으면 하는 생각은 욕심 이었을까?

밤 새 별일없이 날이 밝아 왔지만 대기근무일 아침 출근 하면서 다음날의 일정에 맞추어

준비는 대충 해 두었지만 망해사와 처용암에만 관심이 쏠렸을뿐 거기까지 가보는것도

용기가 필요한 만큼이나 쉽지 않은길 나선김에 다른 명소 몇곳을 더 돌아볼 겨를 없이 망해사로 향했다.

 

망해사(望海寺)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사찰.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이 창건하였다.

당시에는 망해사라는 이름 이외에 신방사(新房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권2 〈처용랑망해사조〉에 따르면,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 현재의 울산광역시)에 유람을 다녀오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에 덮여 길을 잃고 말았다.

신하에게 물으니 동해의 용이 심술을 부린다며 좋은 일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름이 걷히더니 동해의 용이 아들 7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용은 왕의 덕을 칭송하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용은 또한 아들 하나를 보내 왕을 돕도록 하였으니 그가 바로 처용(處容)이었다.

왕은 뒤에 영취산 동쪽에 절을 지어 망해사 또는 신방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60년대에 절을 중창하면서 출토된 기와에 적힌 명문(銘文)에 따르면, 1544년(조선 중종 39)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고 하나, 1786년(정조 10) 편찬된 《울산부여지도(蔚山府與地圖)》에는

망해사가 영취산 동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17∼18세기에 다시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정호(金正浩)가 만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나오지만, 1899년(광무 3) 편찬된 《울산읍지》에는 폐사지로 기록되어 있어 1861∼1899년 사이에 폐사된 듯하다. 1957년 영암(影庵)이 중창하고, 1988년부터 혜학(慧學)이 대웅전을 중건하는 등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에 망해대(望海臺)가 있어서 멀리 바다가 보이므로 선비들이 자주 찾아와 시를 읊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정포(鄭浦)가 지은 〈망해대〉라는 시가 전하나, 현재의 절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절이 있는 곳에서 산 정상 쪽으로 100m쯤 올라가면 넓은 터가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바다가 보여 이곳이 망해대터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종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73호로 지정된

망해사지석조부도 2기가 있다. 2기 모두 대웅전 북쪽 50m 지점에 동서 방향으로 서 있으며 형태가 똑같아

고승 1명의 사리를 나누어 모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동쪽 부도는 일제강점기 때 도굴당하여 마멸된 채 쓰러져 있던 것을

1960년에 복원하였으나 상륜부는 소실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부도로 1990년 11월에 다시 복원하였다.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운무가 심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바다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왕이 곧 명을 내려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했다는데 그곳이 울주군 청량면에 있는 망해사이다. 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바닷가 어딘가에 처용암이 있을것이고 그 설화에 관련된 절이 가까운 곳에 있을것이란 상상만으로 나섰던 길

그 상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보물제173호 망해사지 석조부도 [望海寺址石造浮屠] / 높이 동부도 3.4m

 

 

 

 

보물제173호 망해사지 석조부도 [望海寺址石造浮屠] / 서부도 높이  3.3m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73호로 지정된 망해사지석조부도

이름 난 사찰주변 어디엔가는 나란히 줄지어 세워져있는 부도탑을 쉽게 볼수가 있었다.

부도탑이란 종모양 처럼 생긴 돌로만든 스님들의 무덤이라고만 생각 했는데 이곳에 들러

안내판을 들여다 보니 울주 망해사지 승탑 이라고 적혀 있어서 부도탑으로만 알고 있던 생각이

궁금증으로 바뀌어 버렸다.

 

부도(浮屠)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
승탑, 사리탑, 부두(浮頭), 포도(蒲圖), 불도(佛圖)등의 이칭별칭으로 불리고있다.

부두(浮頭)·포도(蒲圖)·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데,
원래는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Buddha)를 번역한 것이라 하고 또는
솔도파(率屠婆, stupa),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고도 한다.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난 불상이나 불탑이 바로 부도이며,
더 나아가 승려들까지도 부도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묘탑, 즉 부도라는 용어로 승려의 사리탑을 가리키는 실례는

신라 하대부터 보이고 있다고 한다.

872년(경문왕 12)에 건립된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의 비문 중에

“기석부도지지(起石浮屠之地)”라는 구절은 승려의 묘탑이 곧 부도라고 일컬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묘탑, 즉 부도를 세우는 것은 불교식 장례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가 전래된 때부터 묘탑의 건립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지만 연대가 그때까지 올라가는 묘탑은

문헌상으로도 볼 수 없으며, 다만 627∼649년경에 원광법사(圓光法師)의 부도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이 시기를 부도 건립의 시초로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승탑(僧塔)
부도(浮屠). 승려(僧侶)의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안치(安置)한 탑(塔)

 

 

 

 

 

 

‘부도’→‘승탑’으로 부르자

 탑이란 본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것인데 9세기 하대 신라로 들어서면 고승들의 사리도 아담한 팔각당(八角堂) 탑에 모시면서

승탑이라는 새로운 양식이 생겼다.

이 승탑을 흔히는 부도(浮屠)라고 부르지만 부도란 부처(Buddha)의 한자 표기로 잘못된 용어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문화재를 지정하면서 스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승탑을 부도라고 해둔 것이

마치 미술사와 불교의 전문용어인 것처럼 됐다.

이 잘못된 관행으로 연곡사의 승탑들은 '연곡사 동부도'(국보 53호) '연곡사 북부도'(국보 54호) '연곡사 서부도'(보물 154호)라는

싱겁기 짝이 없고 의미 전달도 되지 않는 문화재 명칭을 갖고 있다.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에 문화재를 지정하면서
스님들의 사리탑을 지칭할 때 사용했던 '부도(浮屠)'라는 명칭을

스님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승탑'으로,

스님의 이름이 밝혀진 경우는 이름 뒤에 '탑'을 붙이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보 제4호 '고달사지부도'는 '여주 고달사지 승탑'으로,

보물 제154호 '구례연곡사소요대사부도'는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으로 바뀌는 등

석조문화재 415건(국보 62건, 보물 353건)의 지정 명칭이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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