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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정사(蓉巖精舍)

도랑도랑 2019. 12. 10. 12:50

 

 

정사(精舍)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집, 수양하는 곳, 불도(佛道)를 닦는 중이 거처하는 집 등으로

정의되는데,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절[寺]을 이르는 산스크리트어 비하라(vihāra)[승원(僧院)]를 한역하면서

종교 의례나 수양을 위한 장소로서 정사가 사용되게 되었다.

 

초기 정사의 의미는 안거를 목적으로 한 공간을 의미했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종교 의례를 위한 성소(聖所)로서의 의미로

변화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정사 건축의 개념이 형성된 시기는 14세기경 조선의 건국과 함께 성리학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성리학의 전성기인 16~17세기경 주자(朱子)의 무이정사(武夷精舍)의 개념이 우리

나라에 도입되면서 정사의 의미는 은거 생활을 위한 공간, 수학을 위한 공간, 강학의 장소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천 지역에서 조사 확인된 정사의 수는 20채인데, 영천 전 지역에 전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지역보다 정사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임고면과 화북면 지역으로, 이곳은 다른 지역들보다 산수(山水)가 좋고 은거하면서 수양하기 좋아 정사 건축에서 환경적인 부분을 크게 고려한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개별 정사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금호읍 황정리에 봉강 정사(鳳岡精舍), 청통면 애련리에 북산 정사(北山精舍), 화남면 구전리에 구남 정사(龜南精舍), 자양면 용산리에 용산 정사(龍山精舍), 대전동에 양계 정사(暘溪精舍)가 있다.


또, 고경면에는 도암리에 운암 정사(雲巖精舍), 상리리에 팔봉 정사(八峯精舍), 북안면에는 신리리에 만천 정사(晩川精舍), 유상리에 금오 정사(金烏精舍), 대창면에는 용호리에 용암 정사(蓉巖精舍), 병암리에 병애 정사(屛厓精舍), 남부동에는 도동에 모암 정사(慕庵精舍), 본촌동에 예곡 정사(禮谷精舍)가 있다.


한편, 화북면에는 자천리에 서암 정사(西巖精舍), 공덕리에 송계 정사(松溪精舍), 오산리에 운강 정사(雲岡精舍)가 있고, 임고면에는 황강리에 남강 정사(南岡精舍), 선원리에 함계 정사(涵溪精舍), 선원리에 환고 정사(環臯精舍), 덕연리에 대전 정사(大田精舍)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도잠서원 가는길 옆 좌측 도랑건너 산아래 작은 한옥한 채가 허술하게 건너다보였다. 언듯 보기에도 떨어진 대문 두 짝과 함께 관리의 손 길이 미치지는 못하고 있는듯 아파트 빌딩숲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난 낯선곳을 지나치다가도 저런곳에 자꾸만 눈길이 가고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서 보게된다. 현판에 쓰여진 한문의 글씨가 시원스럽고 보기좋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려고 여기 저기 검색을 해봐도 쉽게 찾아보긴 힘들었다. 가장 정확한 방법이 네이버 지도에서 도잠서원을 검색하고 확대해서

스카이뷰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위치 지도에는 언양방씨재실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어디에서도 언양방씨에 관한 내용은 없고 온양방씨로만 검색되고있다.

 

 

 

『온양방씨대동보(溫陽方氏大同譜)』

서문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하여 보면, “신농씨(神農氏)의 후예로서 중국 하남(河南)땅에 거주하던 시조 방지(方智)는 문장이 뛰어나고 학문이 높았으며,

당나라 때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재임 중 문화사절로 신라에 들어와 설총(薛聰)과 함께 유학 진흥에 크게 이바지하고 경상북도 상주에 정착하여 상주를

관향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그 후 방운(方雲)이 태조 왕건을 도와 공을 세운 뒤 온수군(溫水君)에 봉해짐으로 해서 후손들이 온양(溫陽)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으며, 온양 방씨 영천 입향조는 방이복과 방이영 형제이다.


입향 경위

명경과(明經科)를 통해 주서(注書)에 재임 중이던 방이복이 선조 조에 당쟁을 피해 아우인 방이영과 더불어 충청남도 온양으로부터 영천의 오지산곡(五芝山谷) 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로 이거(移居)하였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어방리에 방득립(方得立) 형제의 필척재(必惕齋), 방학기(方學祺)의 효자각이 있으며,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운천리에 방이복(方以福)과 방이영(方以榮)의 필유재(必有齋)와 방우정(方禹楨)의 용암정사(蓉巖精舍), 방일로(方逸老)의 처 월성 정씨의 방씨삼세돈윤각(方氏三世惇倫閣)이 남아 있다.

 

 

 

시습(時習寮)
시습(時習) : 때때로 다시 익힘 / 寮 벼슬아치 료

 

 

 

일취(日就堂)
일취(日就) : 날로 달로 발전하거나 성장함 / 堂 집 당

 

 

 

 

 

 

여긴 어디 ??????

 

 

 

 

 

 

 

 

 

 

 

 

 

 

촬영일 : 2019년 12월 04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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