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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령봉표(枾嶺封標)

도랑도랑 2017. 11. 25. 22:23



延慶墓香(연경묘향) 炭山因(탄산인) 啓下(계하) 枾嶺封標(시령봉표)

延慶墓 香炭山因 啓下 枾嶺封標’

“연경의 묘에 쓸 향탄 즉 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일반백성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시령에 봉표를 세운다”라는 뜻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하늘은 새파랗다.

서리내리기 전에 감을따고 곶감을 깎던모습들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하지만 요즘 시골길 어디를 가도 빈집같은 농가주변

잎 떨어진 감나무에는 조롱조롱 매달린 감들이 가을이 저만치 지나가는 뒷모습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서있는것만 같다.


 


너를 만난지 벌써 4년이 되었나보다. 지난주에 널 데리고 종합검진을 받으라는 통보를 벌써 한 달전쯤 받았던것 같다.

하지만 너의 주인이 늘 바쁘게만 살다가 보니 미루어 오다가 부랴부랴 토요일에 가기로 결심을 하고 사흘전에 인터넷 예약 접수를

해 두었고 드디어 오늘 아침기온 쌀쌀한 날씨에 널 데리고 종합검진을 받고 나니 나 또한 가슴이 후련해졌다.

모든것이 건강하고 관리도 잘해왔다는구나! 지난 10월의 어느날 사진으로 보니 3년전 함께 다녀왔던 그곳 시령봉표(枾嶺封標)가

자리를 옮겨 앉아있고 그 주변이 달라진것 같아 궁금해지던데 오늘 너와함께 거기나 한번 다녀와보고 싶어졌다.





지난 시월의 어느날 신라문화동인회에서 이정표를 설치했다는데, 천년 신라왕도 경주의 문화를 지키고 널리 알리기 위해 창립된

단체라고 한다. 신라의 흔적을 찾아 보존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향토문화지킴이란다.



 





 





*** 2014년 9월 20일 오전 10시경 촬영했던 당시의 모습은 이러했는데...... ***


 






연경(延慶)은 조선조 23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묘호라고한다.

세자는 왕의 아낌을 받았으며 현군(賢君)의 자질을 갖추었으나 불행히 22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다.

그의 아들 헌종이 즉위히여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자 묘(墓)도 능(陵)으로 격상되었다고 하며,

헌종 이후는 풍양조씨, 안동김씨 등의 외척의 발호(跋扈)로 왕권은 실추되고 조선왕조의 운명도 기울게 되었다고 하는데,

비문의 내용은 연경묘 관리에 필요한 제수(祭需) 등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반인의 입산을 금지한다는 뜻이란다.

이는 곧 목재용이나 숯을 굽는 나무의 벌채를 막기 위한 의도였으며, 연경묘 봉표는 감재(枾嶺)계곡 시령봉표(枾嶺封標)가 있고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의 불령봉표(佛領封標)와 양남면 수렴리에는 수렴봉표(水念封標)가 있다. 



























                                                                                              촬영일: 2017년 11월 25일(토요일)


2014년 9월 20일 당시의 모습 몇 장과 비교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