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귀래정(慶州歸來亭)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2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2리 1074
1991년 5월 14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94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시대인 1755년(영조 31) 여강이씨(驪江李氏) 천서(川西) 문중에서
가숙(家塾:집안에서 경영하는 글방)으로 건립하였고, 1930년 이철명(李哲明)을 기리기 위해 ‘귀래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육각 형태의 건물로 평면구성과 구조결구법, 조원(造園) 구성이 독특하여 전통건축과 조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철명은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병조좌랑(兵曹佐郞), 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홍문관 검교(檢校)를 지냈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英祖) 31년(1755) 여강 이씨(驪江李氏) 천서문중(川西門中)에서 글방으로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육화정(六花亭)이라 하였으나 1930년경
문중에서 지헌(止軒) 이철명(李哲明, 1477∼1523)을 추모하여 귀래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헌은 연산군(燕山君) 10년(1504)에 문과에 합격한 후 병조좌랑,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 검교(檢校)를 지냈다.
안채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래정은 사랑채 역할을 하고 있다. 정자로는 흔치 않게 정육각형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육각형 건물에는 온돌을 두는
예가 드문데, 이곳에는 앞뒤로 나누어 앞은 마루로 하고 뒤는 온돌로 하였다.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과 빗천장·우물천장으로 되어 있다.
평면구성이 육각형으로 특이하며, 조경 구성이 독특하여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정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옛것에 마음 머물고 싶어지고 보고 또 보아도 그 아름다움을을 느껴볼 수 가 있는 모습들이 자꾸만 좋아진다. 비바람에 씻기고 닳아 허물어져가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질 때 구경해 보지 못한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듯 연못의 석축이나 연못위를 가로질러 놓여진 하얀색의 다리가 그렇다.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다는 고령신씨 종중의 귀래정(歸來亭)은 1456년(세조 2) 신숙주(申叔舟)의 아우 신말주(申末舟:1439∼?)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제7대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 자신의 호를 딴 귀래정(歸來亭)을 짓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면서 은둔생활을 했다는 귀래정(歸來亭)과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의 귀래정(歸來亭)은 고성이씨 입향조 이증(李增)의 둘째 아들인 낙포(洛蒲) 이굉(李汯, 1440~1516)의 정자라고 한다. 이굉은 25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4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상주목사, 개성유수 등을 지내다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기도 하였고, 1513년(중종 8) 벼슬에서 물러난 이굉은 경상북도 안동으로 낙향하여 부성(府城) 건너편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의 뜻을 취해 당호를 ‘귀래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촬영일: 2014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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