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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계구곡 모고헌(慕古軒)과 옥간정(玉澗亭) Ⅰ

도랑도랑 2014. 6. 8. 07:51

 

 

모고헌(慕古軒)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소 재 지: 경북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457-3 


조선 숙종 때 성리학자인 정규양(1667∼1732) 선생이 숙종 27년(1701)에 지은 집으로 처음에는 태고와라 하였으나,

영조 6년(1730)에 문인들이 수리해서 모고헌이라 하였다.  선생은 형인 정만양 선생과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옥간정을 왕래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뜻으로 훈과 지를 호로 삼았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2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4면에 툇간을 둔 독특한 건물이다.

 

 

 

옥간정(玉澗亭)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70호

소재지: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별빛로 122(횡계리 439-3)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70호로 지정되었으며, 정극.정철검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인 훈수 정만양(鄭萬楊:1667∼1732)과 지수 정규양(鄭葵楊:1667∼1732) 형제가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716년에 세운 정자이다. 아우 우졸재 몽양(夢陽)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이들과 함께 오직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저술 활동은 주로 두 형제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4칸 반의 ㄱ자형 누각(樓閣) 건물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정면 건물 오른쪽 중간의 숫기와에서 용마루를 뽑아 건물을 이어

단 형식이 특이하며, 정면 건물은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방을 들였다, 이에 직교한 건물은 모두 방으로 꾸몄다. ㄱ자형 건물은 모두 내부로 향하여

좁은 툇마루를 내고, 그것이 정면 건물 오른쪽 측면으로 연결된다. 창호(窓戶) 구성 방법에서도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건물이다.

 

 

 

2014년 6월 1일 일요일


정확하게는 3주일 만에 보현산을 올라가 보았다. 올해는 이른 봄 부터 야생화의 생태 자라나는 모습들을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오르내리다가

직장일이 바빠지면서 2주연속 주휴일을 출근을 하면서 관찰하며 오고 가던 꽃들 마져 피고져 버린듯 특별히 눈길가는곳이 없어진 꼴이었다. 주차장 입구 커다란

안내판의 지도에서 최근에 들어 알게된 횡계구곡이란 단어에 관심이 쏠려 산을 내려와 정각리 삼거리에서 계속 직진으로 달려 보았다. 평소엔 이길을 내려와서

좌회전하면 집으로 오는 길이었지만 직진하여 내려가 보게 되니 수년 전의 처음 들어와 보았던 길이 머릿속을 스쳐 떠오르면서 어느해 봄엔 군위로 가기 위하여

이 길을 갈 때 마을 좌측에 보이던 흰색의 안내판과 오래된 건축물의 검은기와 정도로만 보고 지나쳤던 생각이 나기도 했다.


구곡원림(九曲園林)또는 원림구곡(園林九曲)이란 말을 들으면 저절로 빼어난 경치와 선비들의 정취가 살아 숨쉬는듯한 풍경이 그려지기도 한다.

현재의 내가 살고있는 근거리에도 이러한 구곡원림(九曲園林)의 풍경들이 있다는것이 새삼스럽게 고마움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순간 순간들이다.


구곡원림(九曲園林)이란 중국 송나라 시대 유학자인 주자(朱子)가 무이산의 아홉 골짜기를 배를 타고 구경하면서 빼어난 경관과 선비의 마음다짐을 노래한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읊은 것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 선생 등 유학자들이 전국의 유명한 계곡을

구곡원림(九曲園林)으로 지정, 자연경관을 노래했으며 그만큼 산수가 빼어난 것을 입증하고 있기도 한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바람이라도 쐬고 돌아올 만한 가까운거리인 안강의 옥산서원이나 조선 중기의 정자가 있는 계정(溪亭)이 그러한곳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곳 또한 제 1곡 송단(松壇)을 시작으로 해서 제 2곡인 용추(龍湫), 제 3곡 세심대(洗心臺), 제 4곡 공간(孔澗), 제 5곡 관어대(觀魚臺), 제 6곡 폭포암(瀑布巖),

제 7곡 징심대(澄心臺), 제 8곡 탁영대(濯纓臺), 제 9곡 사암(獅巖)이 바로 경주의 옥산구곡(玉山九曲)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황의 후손인 이가순(李家淳, 1768∼1844)은 옥산서원과 계정 주위를 유람한 후, 이곳의 경관이 매우 아름다움에 감복하여 옥산구곡(玉山九曲)을 설정하기도 하였다고 하니, 구곡은 모두

이언적이 생전에 이름 붙인 것으로, 이가순은 이곳을 중국 남송(南宋)의 성리학자 주자(朱子, 1130~1200)가 설정한 무이구곡(武夷九曲)과 비견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고도 한다.

 

 

 

 

 

 

 

 

 

 

 

 

 

 

 

 

 

 

 

 

 

 

횡계서당(橫溪書堂)

 

횡계 서당은 횡계천을 따라 횡계저수지 방향으로 가면 횡계리 마을 입구 도로 좌측 아래 횡계천에 접하여 있다.

1737년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과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을 배향하는 서원을 건립하려 하였으나 서원남설(書院濫設)을 막는 나라의 제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760년 사교당에서 양 선생의 향사를 올렸다.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23년 횡계 서당으로 복원하여 복향하였으며,1944년 관리사가

소실되었다. 모고헌(慕古軒)은 1701년에 정규양[1667~1732]이 대전동에서 이곳으로 이거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1730년에 문인들이 개축하여 모고헌(慕古軒)이라 하였다고 한다.

 

 

 

 

 

 

 

 

                                                                                                                                                    촬영일: 2014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