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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지부도(靑松寺址浮屠)

도랑도랑 2014. 2. 10. 21:04

 

 

청송사지부도(靑松寺址浮屠)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107-4 /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이 부도들은 청송사터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남아 있으며, 모두 3기에 이른다. 서로 크기만 다를 뿐 거의 같은 양식을 하고 있어서, 높직한 받침 위로 2단의 기단(基壇)을 두고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에는 연꽃무늬와 신장상(神將像)을 새겼으며, 2개의 돌로 이루어진 기단은 연꽃을 위아래로 대칭되게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탑신은 아래에 고사리 무늬를 새겨놓았다. 3기 중 1기의 탑에는 탑신에 ‘서응당진흡대사(瑞應堂眞洽大師)’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모양의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돌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작품들로서, 청송사의 덕망높은 승려들의 사리를 모셔놓은 곳이라고도 한다. 3기중 1기는 그동안 넘어져 있던

것을, 1982년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에서)

 

 

 

 

지대석(地臺石) 위에 기대석(基臺石)을 얹었는데 이 기대석의 앞면에는 신장상(神將像)의 머리부분만을 양각(陽刻)하였고 뒷면에는 수신상(獸身像)을 음각하고 양측면에는 화문(花文)을 음각하였다.

 

이 기대석 위에 복엽복련화대(復葉覆蓮花臺)를 얹고 그 위에 다시 단엽앙련화좌대(單葉仰蓮花座臺)를 받쳐 탑신을 안치하였다.

탑신의 밑부분에는 고사리의 문양을 새기고 상단에는 연꽃 봉오리를 새겼으며 이 봉오리 밑의 탑신에는 복련이 새겨져 있다.

 

또, 이 부도의 오른편에는 약간 작은, 같은 형의 부도가 있는데 탑신의 아래 부위에 고사리 문양이 있을 뿐 ‘瑞應堂眞治大師(서응당진치대사)’라고 음각되어 주목되나 진치대사가 어느 시대의 승려인지 분명하지 않다. 기대석의 사면에는 각 3구식(三軀式)의 화문을 음각하고 있다. 또, 왼편에도 1기의 부도가 넘어져 있었으나 1982년에 복원하여 현재는 3기가 나란히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나라 대사찰에는 절 밖의 한쪽에 부도전이 있다. 돌아가신 고승의 부도(浮屠)와 탑비(塔碑)를 함께 모셔 둔 곳이며, "부도밭"이라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전각을 뜻하는 글자인 전(殿)자를 붙여 부도전(浮屠殿)이라고 하기도 한다. 원래 부도라는 말은 부처님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불교의 교주인 부처의 범어인 붓다(buddha)를 음사한 말이다. 불도(佛圖), 또는 휴도(休屠)라 음사하기도 했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 중국 사람들이 불교를 부도교(浮屠敎), 부처님을 부도씨(浮屠氏)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위서>,

<후한서>등에 나온다고도 하는데. 스님들 또한 부도씨 혹은 부도인(浮屠人)이라 했다. 또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최초에 생긴

절을 부도사(浮屠祠)라 불렀다. 중국 최초의 사찰이 백마사(白馬寺)로 알려져 있으나 그 이전에 초(楚)나라 영왕(英王)과 동한(東漢)의 환제(桓帝)가 부도사를 지어 부도(부처)와 노자를 함께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후대에 와서 이 말의 의미가 조금씩 변환되어 절이나 부처님 사리를 모신 탑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다가 열반에 든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는 탑까지도 모두 부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탑자를 붙여 부도탑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솔도파(率都婆)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범어 스투파(Stupa)를 음사한 말로 3층, 5층 등 지붕이 있는 높은 탑이 아닌 작은 판탑(板塔)을 가리키는 것이며, 실제로 부도탑은 영묘(靈廟)와 같은 것이다. 탑 안에 사리(舍利, Sarira)나 유골을 모시기 때문에 묘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사리에 대해서는 고도의 수행을 성취한 고승들이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三學)을 닦고 육바라밀의 공덕을 성취한 수행력으로 나오는 결정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번역하면 영골(靈骨)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원래의 어원이 가지고 있는 뜻에서 말한다면 죽은 이의 유해 유골이 모두 사리인 셈이지만 후대에 와서 화장을 한 뒤에 습골(拾骨)을 할 때 발견되는 작은 구슬 모양의 결정체를 가리켜 사리라고 했다.

 

옛날에는 이 부도탑을 참배하기 위하여 순례를 한 스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1055~1101)스님은 중국 천태산에 가서 지자대사의 탑을 친견하고 발원문을 짓고 탑 앞에서 큰 서원을 발하였다는 내용이 대각국사문집에 수록되어 있다고 전한다. 부도는 대부분 탑비와 함께 세워졌기 때문에 탑비를 통해 건립 연대나 입적한 스님의 생애와 행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기도 하며, 석조 건축의 양식을 통해 불교미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는 사료가 되기도 한다. 이런한 부도탑에 드물게 범어가 새겨진

부도탑이라 소개한 글을 보고난 이후 가까이 있는 곳에 갔다가 늦은시간에 잠시 돌아보고 오게 되었던 청송사지 보도탑이다.

 

 

 

 

 

 

옴마니반메훔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옴마니반메훔은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觀世音菩薩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이라 하여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본마음인 여섯 자의 크게 밝은 진언이라고 한다. 이 여섯 글자 진언을 외우면 그 위신력으로 육도(六道)가 공(空)해지고, 육도가 공한 곳에서 여섯 바라밀행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육자대명주 "옴마니반메훔"(Om Mani Pedma Hum) 육자대명주는 ‘옴 마니 반메 훔’의 여섯 글자로 된 주문이다. 옴마니반메훔은

본존(本尊)으로서 관세음보살의 본심미묘대육자대명왕진언(本心微妙六字大明王眞言)이며, 줄여서 관음(觀音)의 육자대명(六字大明), 또는 육자진언(六字眞言), 본심진언(本心眞言) 등으로 불리어 진다고 한다. 여기에서 은 하늘세상, 아수라, 는 인간, 은 축생, 는 아귀, 은 지옥 세계의 제도를 뜻하며, 일체의 복덕 지혜와 모든 공덕행의 근본을 갈무리한 진언임을 뜻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