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법흥왕릉(慶州 法興王陵)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효현동 63 / 신라 제23대 법흥왕(514~540 재위)의 능이라고 전해오는 고분.
사적 제176호로 지정면적 7만 2,817㎡이며, 경주의 서악(西岳)이라 불리는 선도산 서쪽 기슭에서 뻗은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법흥왕릉은 수많은 대소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경주시내의 평지고분군을 벗어나서 교외의 야산이나 구릉지대에 축조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법흥왕은 재위 27년에 승하하니 애공사(哀公寺) 북봉(北峯)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 『삼국유사』에서도 법흥왕의 능은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고분의 남쪽에는 신라 하대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를 애공사지탑이라 부르고 있다.
법흥왕릉의 내부구조는 알 수 없고 외형상으로는 원형이며, 삼국시대 신라왕릉으로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봉분의 표면이나 주위에는
아무 장식물이 없는데, 다만 봉분 아래에 자연석의 일부가 드물게 드러나 있다. 이것은 냇돌로 쌓은 둘레돌[護石]을 받쳤던 돌인데,
비슷한 유형으로 선도산 동쪽 기슭의 무열왕릉이 있다. 이러한 둘레돌 구조는 경주시내에서 냇돌만 쌓은 평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의 둘레돌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신라 역대왕의 능묘 소재지나 장례지에 대해서 지증왕까지는 오릉(五陵)·미추왕릉·내물왕릉의 소재지만이 기록되었을 뿐, 그 밖의 다른 왕릉의 소재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된 것이 없다고 한다. 이에 비해 법흥왕 이후 역대왕에 대해서는 차례로 그 왕릉의 소재지나 장례지가 주변에 있던 사찰을 중심으로 방위·산이름·지역명 등으로 기록하였다는데, 지증왕과 법흥왕을 경계로 이러한 기록상의 차이는 왕릉의 입지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증왕까지의 역대왕릉은 경주시내의 수많은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평지고분군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서 구별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편찬 당시에는 밀집된 고분들 가운데 역대왕릉을 일일이 구별할 수 없었다. 반면에 법흥왕 이후의 왕릉은 평지고분군을 벗어나 교외 구릉지대에 1기 또는 2·3기씩 따로따로 자리잡고 있어, 후세까지도 각 왕릉 소재지가 주변지형이나 구조물과 관련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뒷이야기 하나!
주차장에 주차를하고 왜 이길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한바탕 비가 내린후 주차장에 들어가는 순간 정면으로 보이는 바리케이트 두개 자동차가 들어가지 말라는 표식이었지
사람도 들어가지 말라는 표식은 아니었을텐데 무의식적으로 주차장 입구 우측의 솔밭길로 들어가서 한참을 헤메다가
포기하고 돌아 오려고 주차장에 돌아왔을때 논둑과 함께 훤히 보이는 길을 두고 그제서야 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비는 또 다시
오다가 말다가 하필이면 차 안엔 우산도 하나 없었네!
잘못 들어갔던 솔밭길 입구
저멀리 솔밭아래 훤히 보이는 곳 저쪽 어디에 왕릉이 있는가 보다 하면서 들어가서는 500여 미터를 오르다가 도로내려왔다.
여기 저기 비석이 세워진 분묘들이 많이 있었던곳 엉뚱한 곳을 한참이나 헤메고 다녔으니 ......
촬영일: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봄날같은 날씨에 봄비같은 겨울비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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