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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도랑도랑 2013. 4. 7. 22:19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보물  제63호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본존불은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사등신(四等身)의 동자형(童子形)으로 신체는 굴곡없이 구체적으로 처리하였다.

양쪽 볼이 부풀어진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에 눈매와 입가를 한껏 둥글게 표현하여 방긋 미소를 지었고, 점(點)처럼

돋을 새김을 한 백호(白毫:부처님 미간에 난 힌털), 머리는 나발(螺髮 : 소라처럼 감겨 올라간 머리카락)이고

육계(상투)는 특이하게 이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풍만한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눈은 부은 듯이 부풀어 있으며, 처진 눈매와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상체는 우람하게 표현하였으나 하체는 빈약하여 불균형을 이루며 수인은, 오른손을 펴서 위로 올린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왼손을 펴서 내린 '시여원인(施汝願印)'을 하고 있는데, 두 수인을 '통인(通印)'이라고도 한다.


법의는 통견으로 입고 전면에‘U’자형 옷주름을 굵은 요철형으로 표현하였으며 다소 두꺼운 옷자락은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으로 오른쪽 어깨에 가사 자락이 한 겹 더 걸쳐져 있다(편삼偏衫). 상체는 원만한 곡선의 어깨와 양쪽 손목으로

감겨 내려간 옷자락으로 우람하고 당당하다.

 

하체는 짧고 다리 선이 뚜렷하지 않아 빈약하게 보여 상하체 균형이 맞지 않다.

큰 발은 뒷꿈치를 들고 서 있는 것처럼 세우고 있는데 큰 몸집을 받치기에 적당한 크기와 긴장감이 느껴진다.

발등은 평평하며 발가락은 선을 그어 직선으로 나타내어 사실적인 부피감은 없다.

대좌는 자연석을 사용하고 있는데 주변 파면들로 보아 원래는 연화대좌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협시보살은 다섯의 화불(化佛)을 조각한 원형 두광에 삼면두식(三面頭飾) 보관을 쓰고,

머리 양쪽에는 나비매듭진 관끈이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다. 두광의 화불은 부처님의 진리의 빛이 비치는 곳마다

부처님이 계시다는, 온 우주가 부처님 세상이라는 뜻이다.

 

짧은 목걸이와 발목까지 화려하고 무거운 목걸이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앳된 미소, 통통한 얼굴과 손, 팔 등은

역시 아이 같은 모습으로 다른 두 상에 비하여 세부표현이 매우 입체적이다.

눈썹은 적당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눈은, 본존불이나 좌협시보살과는 달리 반개(半開)로 뜨고 있는데,

눈매는 직선에 가까우며 아래위가 곡선으로 나타나 있다. 코는 깨어져 없고 입매는 살짝 오므려 다물고 있다.

도톰한 뺨을 한 얼굴에 눈썹과 눈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가득하다.

 

각이 진 어깨는 야무지개 얼굴을 받치고 있고, 가사는 오른쪽 어깨를 걸치며 내려와 왼쪽 허리를 비스듬히 돌아

양쪽 팔을 감고 발목까지 내려와 있다. 그리고 허리를 두른 끈의 매듭이 발등까지 드리워져 있다.

목에는 구슬이 장식 된 세줄 목걸이를 하고 있다. 두 줄 팔지(완천腕釧)를 낀 왼손은 연꽃봉오리를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발등 위까지 드리워 진 굵은 영락(瓔珞:구슬 목걸이)을 자연스럽게 잡고 있다.

 

발은 사실적으로 나타내었는데, 발가락 끝에 팽팽한 힘이 들어가 있다. 발목까지 드리워진 굵은 영락을 받치기에

적당한 힘을 나타내었다.  인체 표현은 본존불과 좌협시보살과 달리 사실적인 몸매를 하고 있다.

좁아진 어깨와 허리선이 분명히 드러나고 하체는 길고 왼쪽 무릅을 굽혀 삼곡자세(三曲姿勢)를 취하고 있다.

앙련과 복련이 맞붙은 연화대좌는 불상과 함께 한 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좌협시보살은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하여 좌협시의 복잡하고 화려한 보살상과 대조적이다.
무늬가 없는 원형 두광에 삼면두식(三面頭飾) 보관을 쓰고 머리 양쪽에는 관끈이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다.

눈은 본존불처럼 지그시 감은 듯 두툼하고 입술선은 직선으로 나타나있어 본존불과 같은 환한 미소는 볼 수가 없다.

볼은 과장됨이 없는 사실적인 양감으로 나타내었다.  어깨는 당당하면서도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자세는 바로 선 듯 하나 자세히 보면 왼쪽 무릎을 살짝 굽히고 있는 삼굴자세 (三屈姿勢)를 취하고 있다.

 

양쪽 어깨를 덮고 몸으로 흘러 내리는 U자형의 옷주름과 발의 모양은 본존불과 같은 양식이며, 상체에 비해 짧은 하체는

다리선이 분명하지 않아 빈약하게 보인다.  왼손은 허리춤으로 내려 정병(淨甁)을 다섯 손가락으로 감싸 들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꼬부려 맞대고 있는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수(數)를 헤아리고 있는 모습이다. 인도에서는 수를 헤아릴 때 손가락을 접지 않고

손가락 끝을 맞대면서 헤아린다고 한다. 물건을 들어 약속하는 것을 계인(契印)이라 하고 손으로 약속하는 것은

수인(手印)이라 한다.  정병을 들어 구원을 약속하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구체적인 구원의 길과 방법을

 

일러주시는 보살은 사랑의 화신이다. 대좌는 본존불처럼 바위 위에 서 있는데 원래는 연화대좌로 생각되며

본존불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듯하다.

 

 

 

 

 

 

 

 

 

 

 

 

 

 

 

 

삼불사(三佛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절이 있는 남산은 신라의 4대 영지로 불교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근래에 들어와 중창하였다.  건물로는 법당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삼존석불입상과 석탑 등이 전한다.

이 중 삼존석불입상은 남산의 여러 불교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며 일명 삼체석불(三體石佛)로 불리는데,

절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본래 땅에 묻혀 있던 것을 1923년에 발굴하여 다시 세운 것으로, 가운데 불상은 2.6m이고, 좌우 보살상은 각각 2.3m 크기이다. 그 중에서도 연화대좌에 있는 왼쪽 보살상이 가장 뛰어난 조각품이다. 광배에 다섯 불상을 다시 새겼는데, 불상 뒤에 광배가 또 있어 매우 독특한 양식을 보여 준다. 7세기 때의 작품으로 보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촬영일: 2013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