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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림사지 3층석탑(昌林寺址三層石塔)

도랑도랑 2013. 4. 6. 06:25

경주 창림사지(慶州昌林寺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南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창림사(昌林寺)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원나라 조자앙(趙子昻)의 '창림사비발(昌林寺碑跋)'에 따르면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이

지금은 사라진 창림사비의 글씨를 썼다고 하는데, 김생이 791년(신라 원성왕 7)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사지가 남산 기슭을 이용하여 상중하 3단으로 나뉘었고,

석재와 초석들이 넓은 범위에 걸쳐 산재한 것으로 미루어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곳에는 남산 일대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삼층석탑과 특이한 형태의 귀부가 남아 있다.

삼층석탑은 1976년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들을 모아 복원한 것이며, 귀부는 거북 2마리가

조각된 것으로 잔등 위에 비신의 흔적이 있다.

 

 

창림사지 3층석탑(昌林寺址三層石塔)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자락의 창림사지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경주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수십 기의 석탑 중 가장 웅장한 규모로, 높이 약 7m에 이른다.

1976년에 주변에 산재해 있던 탑의 부재들을 모아 복원하였다.

창림사지(昌林寺址)는 <삼국유사>에 신라 최초의 궁궐터였다고 기록된 유서 깊은 곳인데

창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여 고려시대까지 존속되다 조선 초에 폐사되었다 한다.

 

 

 

폐사 후 석탑만 남았다가 1824년 사리장엄구를 도굴하려던 자에 의해 탑이 무너졌고, 이때 조탑 사실이 기록된

창림사 무구정탑원기(無垢淨塔願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를 추사 김정희가 그대로 묘사해두었다는데

그 기록에 의하면 창림사지 3층석탑은 신라 문성왕 17년(85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1979년 복원하면서 2층과 3층 탑신(몸돌) 그리고 기단의 절반 정도를 새로 다듬어 끼워 넣었다.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만 있고 상륜부는 없는 상태로, 기단부가 2층으로 되어 있어 규모가 더욱 커 보인다. 상층 기단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 불법을 수호하는 8종의 신장)이 조각되어 있는데 현재 4개의 신장(神將) 즉 아수라·건달바·천(天)·가루라만 남아 있다.

 

 

 

 

 

 

 

1층 몸돌에는 사방에 문 모양이 새겨져 있고 문고리 모양도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영(靈)이 드나드는 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탑이 무너져 있던 북쪽 골짜기에서 발견된 탑 상륜부 꼭대기를 장식했던 높이 30cm의 앙화(仰花)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촬영일: 2013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