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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속의 오어사(吾魚寺)

도랑도랑 2012. 12. 29. 11:48

 

 

새파란 하늘이 보기좋았던 성탄절 기온은 뚝 떨어져 겨울다운 날씨였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세계리 오천오일장(5.10)날 이었다

구경삼아 한바퀴 휙 돌아 보고는 구수한 칼국수 한그릇 먹는 즐거움도 있고 오랫만에 오어사로 들어가 보았다

가까운곳이라 시간이 어중간하고 바람이라도 쐬이고 싶을땐 즐겨찾는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다른곳의 이름있는 사찰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일주문이 오어사엔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사람들은 이곳 오어사를 찾는이들 중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하지만 오어사에도 일주문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나역시 마찬가지인것도 같지만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좌측으로 나있는 호숫가를 지나다가 우측에 가파른 계단위의

건물이 일주문인 것이다. 일주문으로 들어서는이 보다는 주차장 바로 앞으로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서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날도 난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 서면서 첫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발걸음을 멈추어서게 했다.

오래된 고목의 보리수나무로 불리는 찰피나무 아래 수돗물이 나오는 스님상에 둘러진 목도리와

털실로 짜여 쒸워놓은 모자 스님이 만들어 씌웠을까? 어느 신도님이 씌워주신 것일까?

추위가 느껴지는 계절 바라보는 마음도 따뜻할 수 밖에없다.

 

 

 

주차장 호숫가를 돌아 지나다 보면 가파른 콘크리이트 계단위로 사찰 입구를 들어서면 일주문 양옆에 금강역사상이 그려진 문이 있고

정면에 오어사라는 편액은 근대 서화가 명필 해강 김규진의 글씨라고 한다.

 

 

 

 

 

 

 

원효와 혜공이 운제산 계곡 맥반석에 앉아 용맹정진하던 어느 날  갑자기 혜공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원효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대가 부처님의 법을 이을 만한 법력이 있는지 한 번 알아 봐야 겠네."

"법력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으니 한 번 겨루어보세."

그래서 두 사람은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 내려가 물고기를 각각 한 마리씩 잡았다.

그 고기를 산채로 삼켜서 대변을 본 후 물고기가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이 이기는 걸로 했던 것이다.

원효와 혜공은 대변에서 나온 물고기를 계곡에 풀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활기차게 상류로 올라갔다.

그 고기를 두 사람이 보고서 서로 떠밀며 말하기를, "저 고기가 내 고기야"라고 다투게 된 것이다.

법력 겨루던 원효와 혜공, "저 고기가 내 고기야!"

여기에서 '나 吾', '고기 魚'라는 뜻의 '오어사'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데, 절의 이름에 유일하게 고기 '어'자가 들어가는

오어사의 유래를 재미있게 설명한 것이라서 세인들에게 흥미를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 영조 17년(1741)에 고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ㆍ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공포는 다포 양식이며, 건물 문짝에 창살 무늬는 꽃 창살 무늬로 채색이 아름다워 눈길을 끈다.

 

 

 

 

 

 

 

경내 불교용품 판매관

 

 

 

 

오어사 경내의 유물전시관은 원효암에 있던 풀뿌리로 짜서 만든 원효대사 삿갓과 수저를 비롯해

법화경 4점, 오어사 사적지 2점, 대웅전 상량문 등 모두 20여 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유물 가운데는 1995년 오어지 준설공사 중 발굴돼 보물 제1280호로 지정된 고려 동종이 눈길을 끈다.

신라 동종의 양식을 계승한 이 동종은 조성연대가 분명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양각으로 새겨진

각종 장식문양이 우수하다.

 

 

                                                 오어사유물전시관의 원효대사진영(元曉大師眞影)

 

원효대사는 불교교학의 전반을 두루 섭렵하여 이에 대한 주석을 붙이므로 신라에서 뿐만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추앙받던 고승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원효대사는 617년(진평왕39 )

압량군: 경상북도 경산군 자인면 불지촌에서 태어나 648년(진덕여왕 2) 32세의 나이로

황룡사에서 출가하였으며 686년 (신문왕6) 3월30일 혈사에서 세수70, 법랍 38년으로 입적하였다.

 

원효대사가 오어사와 관련하여 전하고있는 기록은 삼국유사 이혜동진조이다

여기에서 원효대사는 오어사의 혜공을 만나 제경소를 전하는데 있어서의 궁금증을 해결하였으며

물고기과 얽힌 설화를 남김으로서 항사사가 오어사로 개명되는 사유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오어사유물전시관의 혜공대사 진영 (蕙空大師 眞影)

 

삼국유사 이혜동진조에 의하면 대사는 천진공의 집에 고용살이하던 노파의 아들로

이름을 우조(憂助)라 하였다고 한다 천진공의 병을 고쳐주는 등의 신이한 이야기를 전하고있으며

승려가된 이후에는 늘 미친짓처럼 대취하여 삼태기를 지고 거리를 가무하며 다니므로

이름을 삼태기 스님이라하였다고 한다.

 

혜공대사는 원효대사가 제경소를 찬함에있어 자문을 해주었다고하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원효대사보다는 연배의 승려로 볼 수 있지만 생애와 관련하여 자세한 기록이 전하고 있지 않다고도 한다.

 

원효와 혜공. 찬란한 신라 불교의 역사에서 이적과 기행, 파계를 일삼았던 희대의 고승들이다.

두 사람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원효는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커다란 업적을 남긴 승려이다.

그가 지은 대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 화엄경소등은 한국 불교사의 커다란 성과이다.

또한 귀족 중심의 불교를 민중 중심의 불교로 바꾼 그의 공적은 만고에 길이 빛날 것이다.

반면에 혜공은 이렇다 할 저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원효의 저술 활동에 깊게 관여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혹여 원효의 저서 속에 혜공의 철학과 사상이 용해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천진공의 집에서 여종의 아들로 태어난 혜공은 어릴 때부터 각종 이적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의 공력이 대단함을 느낀 천진공의 권유로 불가에 출가한 혜공은 작은 절에 살면서

늘 삼태기를 지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삼태기를 지고는 거리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는 스님을

사람들은 부궤화상이라 불렀고, 그가 사는 절을 삼태기라는 뜻을 가진 부개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걸핏하면 우물 속에 들어가서 몇 달씩 기거하다가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몸이 하나도 젖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신령한 이적을 보인 그는 공중에 떠서 입적했으며 그의 사리는 수도 없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진영(眞影)

조사(祖師)나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영정(影幀)이라고도 한다.
진영이나 영정 모두 인물을 그린 일반 초상화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불교미술에서는
승려의 초상화만을 이렇게 부른다.

 

조사(祖師)

후세 사람의 귀의와 존경을 받을 만한 승려이거나 1종 1파를 세운 승려에게 붙여지는 칭호이다.
선교양종(禪敎兩宗) 중, 특히 선종에서 조사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넓은 의미에서는
절을 창건한 이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선종에서는 종파를 초월하여 인도의 27조사와 중국의 6조사를 합한 33조사를
가장 근본으로 삼으며, 33조사 중에서도 달마대사(達磨大師)와 육조혜능대사(六祖慧能大師)를 가장 신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종의 조사로는 신라 말기의 도의(道義)를 비롯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창주,
고려시대의 보조국사(普照國師)ㆍ보우(普愚)ㆍ나옹(懶翁), 조선시대의 휴정(休靜) 등을 꼽고 있다.

 

교종에서는 자장(慈藏)ㆍ원효(元曉)ㆍ의상(義湘)ㆍ의천(義天) 등이 대표적인 조사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조사당(祖師堂)을 건립하여 이들 조사의 영정 등을 봉안하며,
역대 조사를 공양하는 법회인 조사회(祖師會)를 가지기도 한다.


 

 

                                                                                                             오어사유물전시관의 원효대사삿갓

 

 

 

 

                                                                                                                                      오어사부도탑

 

 

 

 

아름다운 경치나 문화유산, 특이한 풍속 따위가 있어 사람들이 구경할 만한 대상이 되는 장소를 우리는 관광지(觀光地)라 부른다.

사람들이 모여드는곳 이름하여 관광지 요즘세상 어디를 가나 관광지 입구엔 관광안내소가 자리잡고 있는것을 볼 수가있다.

오어사 역시 그 중의 하나일수 있고 언제 부터 였는지 기억은 하지 못해도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특별히 궁금한것도 물어볼것도 없으니

그저 스쳐 지나쳐 왔는데 어느날 이 관광안내소 작은 창문에는 오어사(吾魚寺) 풍경 이란 시화 한 점이 붙여져 있었다.

한번보고 두번을 읽어봐도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한동안 발길 머무를수있는 오어사풍경속으로 자꾸만 빠져드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시인의 글일까 궁금하지 않을수가 없어 동록 정만자를 검색해 보았더니 2009년 6월 25일 기사입력된 "내 고장 문화재 제대로 알고

보세요"라는 지역신문 기사 한페이지를 찾아볼수가 있었다.  역시 그랬었구나!

2004년부터 오어사 안내소를 지키고 있는 그는 포항시 문화관광해설사 회장으로 고향의 문화재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포항시 문화관광해설사 모집에 응시,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라는 지나간 기사를 읽어 보면서 궁금증은 사라졌다.

 

 

 

 

 

 

운제산원효교

 

                                                                   촬영일: 2012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