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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고헌(慕古軒)과 옥간정(玉澗亭)

도랑도랑 2020. 4. 11. 05:37

 

 

모고헌(慕古軒)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 정면 3간 측면 2간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횡계서당 내에 자리잡고 있다.
단애(斷崖)위에 자리잡은 관계로 계류에 면한 전면에서 보면 중층누각의 형태이나 서당 마당 쪽인 배면에서는 단층 건물로 되어 있다.


평면은 가운데의 온돌방 1간을 중심으로 온돌방의 4위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둘레는 전면에만 계자난간을 설치하고

나머지 3칸에는 모두 판벽과 판문으로 막았다.


이 건물은 1701년에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1667∼1732) 선생이 대전동에서 이 곳으로 이거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1730년에 문인들이 개축하여 모고헌(慕古軒)이라 하였다.


이 건물은 가구수법 등에서 건립당시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는 평면구성에서도 독특함을 엿볼 수 있는 정자이다.

 

 

 

 

 

 

모고헌(慕古軒)의 편액

 

 

태고와(太古窩)의 편액

 

 

 

 

 

횡계 서당(橫溪書堂)

 

횡계 서당은 원래 훈수 정만양(鄭萬楊)과 지수 정규양(鄭葵楊)을 배향하는 횡계서원으로 건립하였으나 훼철되어 횡계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내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인 모고헌(慕古軒) 이라는 정자가 있다.


횡계 서당은 1737년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과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을 배향하는 서원을 건립하려 하였으나
서원남설(書院濫設)을 막는 나라의 제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760년 사교당에서 양 선생의 향사를 올렸다.
1871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23년 횡계 서당으로 복원하여 복향하였다. 1944년 관리사가 소실되었다.


횡계 서당은 강당과 동재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3칸을 마루방으로 드리고 양 옆을 온돌방으로 꾸몄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모고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횡계 서당 내에 있다.
낭떠러지 위에 자리 잡은 관계로 계류에 면한 전면에서 보면 중층 누각의 형태이나 서당 마당 쪽인 배면에서는 단층 건물로 되어 있다.


평면은 가운데의 온돌방 1칸을 중심으로 온돌방의 4위에는 모두 우물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둘레는 전면에만
계자 난간을 설치하고 나머지 3칸에는 모두 판벽과 판문으로 막았다.

 

 


횡계서당(橫溪書堂)의 편액

 

 

 

 

 

 

 

 

 

 

옥간정(玉澗亭)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인 훈수 정만양(鄭萬楊:1667∼1732)과 지수 정규양(鄭葵楊:1667∼1732) 형제가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716년에 세운 정자이다.
아우 우졸재 몽양(夢陽)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이들과 함께 오직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저술 활동은 주로 두 형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4칸 반의 ㄱ자형 누각(樓閣) 건물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정면 건물 오른쪽 중간의 숫기와에서 용마루를 뽑아 건물을 이어 단 형식이 특이하다.
정면 건물은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방을 들였다, 이에 직교한 건물은 모두 방으로 꾸몄다.
ㄱ자형 건물은 모두 내부로 향하여 좁은 툇마루를 내고, 그것이 정면 건물 오른쪽 측면으로 연결된다.
창호(窓戶) 구성 방법에서도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건물이다.

 

 

 

 

 

 

 

 

 

 

 

 

 

 

 

 

 

 

촬영일 : 2020년 04월 08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