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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원효암(梵魚寺元曉庵)

도랑도랑 2020. 3. 24. 17:29

 

 

범어사 원효암(梵魚寺元曉庵)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梵魚寺)의 산내암자이다.
자세한 역사 및 창건연대 등은 전하지 않으나,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머물면서 왜병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이 암자 바로 뒤의 바위가 원효대(元曉臺)로서, 이곳에 올라서면 양산 천성산의 원효암이 보인다. 원효암 좌측에는 의상대(義湘臺)가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과 심검당(尋劒堂)·요사채 등이 있으며, 그 규모가 암자로서는 큰 편이다.
법당에 모셔진 보살상은 원래 도둑을 맞아 일본까지 건너갔다가 보살상의 현몽(現夢)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으로, 영험이 뛰어나다고 한다.
또한, 1950년대에 이 암자의 우물에서 원효대사의 것이라고 전하는 옥돌의 도장이 발견되어 현재 범어사에 보관되어 있다.

 

 

 

범어사 산내 암자인 원효암의 편액

 

 

 

중앙의 원효암 편액 좌측엔 제일선원의 편액이 걸려있고 ....

 

 

 

우측엔 무량수각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이 밖에도 이 암자에는 삼층석탑 2기와 고승들의 사리부도, 방광탑(放光塔)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된 서편삼층석탑은 높이 2.33m로 신라 말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인 동편삼층석탑은 높이 1.9m로서 고려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효암의 좌측 벽에 그려진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지팡이를 들고있는 노스님과 디딜방아를 찧고 있는 동자승을 보라 ~

방아를 들어올릴 힘이 모자라서 등에는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있는듯

야! 이놈아 몸이 가벼워 방아가 들리지 않거든 무거운 돌을 하나 짊어지거라 하는듯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것 같다.

 

 

 

바로 옆에는 이러한 벽화도 그려져 있었는데 큰눈을 부릅뜬 스승의 호통치는 모습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오른손엔 칼을 들고 자신의 왼팔을 잘라버린 상황인것 같다.

 

 

 

 

 

 

 

 

 

 

 

 

 

 

 

 

 

 

 

 

 

 

 

 

 

 

 

 

 

원효암 동편 삼층석탑(元曉庵東便三層石塔)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1호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24(원효암)

 

이 탐은 신라 말 고려 초의 3층 석탑이다. 지금 원효암 입구의 동쪽 공터에 있으며, 큰 지대석(址臺石)위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만 있다.
탑의 형식상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相輪部)가 있었을 것이나 기단부와 상륜부가 없어졌다.
각 층 옥개석(屋蓋石)의 전각(轉角) 파손이 윗층일수록 심한 것으로 보아 무너진 석탑의 부재를 수습하여 기단없이 다시 쌓은것으로 보인다.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고, 옥신석에는 귀기둥을 조각하였으며, 옥개석의 층급 받침은 4단씩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탑신의 옥신석과 세 번째 탑신의 옥신석은 비례나 재질로 보아 뒤에 보충한 것이다.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보아 10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는 지방으로 석탑이 전파되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섬약한 기법이 나타나고 있다. 또 원래의 위치에 재건되었기 때문에 원효암

금당(金堂)의 위치와 창건 시기를 알게하는 좋은 자료이다.

 

 

 

 

 

 

 

 

 

 

 

 

 

 

 

 

 

 

원효암 서편 삼층석탑(元曉庵西便三層石塔)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 12호
소재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25(원효암)

 

이 탑은 신라 말 고려 초의 3층석탑이다. 지금의 원효암 서북쪽으로 30m 떨어진 공터에 있었던 것을 원효암 경내인 지금의 위치로 옮긴것이다.
원래는 탑의 양식상 이중 기단 위에 세워졌던 것인데, 지대석(址臺石)과 하층 기단을 구성하는 하대중석(下臺中石)과 상륜부(相輪部)가 없어졌다.
하대갑석(下臺甲石) 위에 상층기단과 3층의 탑신부(塔身部)만 남아 있다. 하대갑석은 2판의 판석(板石)으로 되어 있으며, 윗면의 상대중석(上臺面石)은
크기가 다른 석탑의 부재를 개조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각 층 옥개석(屋蓋石)에는 3단의 층급 받침이 있고, 옥신석(屋身石)에는 귀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이 탑은 옥개석의 전각(轉角)이 파손된 것으로 보아 무너진 것을 재건한것 같다. 2층과 3층의 옥신석은 뒤에 만들어 끼운것으로 조립시 위치가 약간

어긋나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담한 석탑이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건립 연대는 동편 3층 석탑과 같이 10세기경에 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규모와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무관하게 제작된 것 같다. 지방으로 석탑이 전파되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지방적인 특징이 가미된 석탑이다.

 

 

 

 

 

 

 

 

 

 

 

 

 

촬영일 : 2020년 03월 23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