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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보문리사지(慶州普門里寺址)와 보문사지 석조 (普門寺址 石槽)

도랑도랑 2014. 3. 2. 08:28

 

 

경주보문리사지(慶州普門里寺址)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 사적 제390호


사적 제390호. 지정면적 88,485㎡. 이곳에서 ‘普門(보문)’이라고 새긴 평기와가 출토되고 있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금당지(金堂址)·동서목탑 등의 건물터와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초석·석등부재(石燈部材) 등이 남아 있지만, 절터의

대부분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금당지의 높이는 경작지의 표토에서 1m 정도이며, 흙으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의 기단석과 초석이 배치되어 있다.

 

 

 

 

목탑지는 금당지 앞의 높은 단 위에 남아 있는데, 서탑지의 중앙에 남아 있는 대형초석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서쪽에 69㎝의 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상대하고 있는 두 당간지주는 보물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북쪽의 논 가운데 62㎝의 간격을 두고 동서방향으로 있는 두 당간지주(경주보문동연화문당간지주, 보물 제910호)의 높이는 1.4m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64호로 지정된 석조를 비롯하여 석등의 옥개석(屋蓋石) 및 장대석(長大石)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

 

 

 

 

 

 

 

 

 

 

 

 

 

 

 

 

 

 

 

 

 

 

 

 

 

 

 

 

경주 보문사지 석조 (慶州 普門寺址 石槽) / 보물  제64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보문동 848-16 

 

보문사터로 알려진 곳에 남아 있는 석조이다.

‘보문(普門)’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면서 보문사터로 알려진 이 곳에는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와 쌍탑이 있었던

흔적이 있고, 당간지주, 석등받침돌 등이 함께 남아 있다.


이 석조는 절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받아 두기 위해 만든 돌물통으로, 지금도 절에서는 이와 비슷한 것이 급수용기로 사용되고 있다.

큰 돌 하나로 내부를 파내어 물을 담도록 하였는데, 윗부분의 가장자리보다 밑부분이 약간 좁아졌고, 아래면은 평평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형태가 크지만 안팎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이 구조는 주변 유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 문화재청 자료에서 )

 

 

 

 

 

 

 

 

 

 

 

 

 

 

                                                                                                                               촬영일: 2014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