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원사(遠願寺)
대한불교천태종에 속한다. 옛 절터 밑에 새로 지은 소규모의 사찰이 있다.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開祖)인 명랑법사(明朗法師)가 세운
금광사(金光寺)와 더불어 통일신라시대에 있어서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사찰이다. 명랑의 후계자인 안혜(安惠)·
낭융(朗融) 등과 김유신(金庾信)·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 국사를 논의하던 중요한 인물들이 함께 뜻을 모아 세운 호국사찰이다.
창건 이후의 역사 및 폐사시기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4대덕(四大德)인 안혜·낭융·광학(廣學)·대연(大緣)의 유골이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혔기 때문에 사령산조사암(四靈山祖師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부도(浮屠) 4기와 동·서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일반적인 신라의 탑들에 비하여 탑신이 가늘어 가냘픈 느낌이
들지만, 이러한 약점을 탑에 조각된 사천왕상과 12지신 상이 보강해주고 있다. 비교적 크고 안정된 이중기단은 상층기단의 12지신 상 조각을
위한 것이다.
이 탑은 1933년에 도괴되었던 것을 일본인이 복원하여 세워놓은 것이다. 또한, 석탑의 동북쪽 500m 거리에 부도 3기가 있고,
서북쪽 300m 지점에 최근 발견된 1기의 부도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서북쪽의 부도는 원좌(圓座)내에
범자삼자(梵字三字)를 새겨놓았고, 연화문 등의 조각이 다른 부도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조형미가 있다. 옛 절터는 사적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韓國)의 사찰(寺刹) 3·신라(新羅)의 폐사(廢寺)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 글 내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신인종(神印宗)의 역사(歷史)
신인종(神印宗)의 전통은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명랑법사(明朗法師)가 금광사(金光寺)를 지어 금강승 밀교의 가르침을 펴기 시작해, 문무왕(文武王)때는 사천왕사(四天王寺)에서‘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이라는 신인법(神印法 mudra)으로써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명을 받고 신라를 침범하는 설방(薛邦)의 적병 당(唐)의 대군을 분쇄시키며 널리 알려져왔다.
‘도솔가’를 지어 하늘의 재앙을 물리치며, ‘제망매가’로 누이의 왕생(往生)을 도왔고, 대금(만파식적)의 소리로써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의 재해를 극복하고,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며,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풍월도(화랑도) 정신으로 한국인의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월명(月明)도 불교의 밀교(신인종) 법사로 이름을 떨친 분이다. 신라말기에는 광학(廣學)과 대연(大緣)이 밀단을 만들었으며, 고려의 태조는 현성사(賢聖寺)를 세워주기도 하였다.
고려 말까지 이어져온 우리 밀교의 전통과 맥은 유교왕권인 이조 태종 7년(1407년) 전통불교가 7종(宗)으로 통폐합될 때 중도종(中道宗)과 합쳐져 중신종(中神宗) 속으로 사라졌고, 중신종이 1424년(세종 6) 교종(敎宗)으로 합쳐지고, 그 이후 이조 중종의 승과제도 폐지로써, 당시 명맥만 남아있던 광주(廣州)의 임시 도회소에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
신라의 명랑(明朗)이 중국에서 밀교를 배운 뒤 635년(선덕여왕 4)에 귀국할 때 처음으로 전하였다. 문무왕 때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침략하게 되자 왕은 명랑에게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비방을 물었다. 이에 명랑은 낭산(狼山)의 남쪽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고 도량을 열 것을 제의하였는데, 시간이 급박하였으므로 채백(彩帛)으로 가건물을 짓고 5방(方)에 신상(神像)을 세운 뒤 유가명승(瑜伽明僧) 12인과 함께 문두루비법을 썼다. 그 때 당군과 신라군이 아직 접전하기도 전에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 당나라 배가 모두 물에 침몰하였다고 한다. 문두루는 범어 무드라(mudra)의 음사(音寫)로 신인(神印)으로 번역된다.
명랑에 의해서 처음으로 신라에 전해진 이 비법은 『불설관정복마봉인대신주경(佛說灌頂伏魔封印大神呪經)』에 의한 것이다. 이 경에 의하여 불단(佛壇)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적인 재난을 물리치고 국가를 수호하여 사회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문두루비법은 자주 개설되었다. 고려의 동북쪽에서 완안여진(完顔女眞)과의 대결이 있었던 1108년(예종 3) 7월 북쪽 국경 가까운 진정사(鎭靜寺)에서 문두루도량을 열었고, 그 이듬해 4월 서경(개성)의 흥복사(興福寺)·영명사(永明寺)·금강사(金剛寺)·장경사(長慶寺) 등 4개 사찰에서 문두루도량이 개설되었다.
또 1074년(문종 28) 7월 동경(경주)의 사천왕사에서 27일 동안 문두루도량을 열었으며, 몽고족의 침략이 있었던 1217년(고종 4)에도 이 도량이 개설되었다. 특히 고려에서는 이 문두루비법을 서경에서 많이 행하였는데, 그 까닭은 서경의 위치, 풍수지리설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불설관정복마봉인대신주경(佛說灌頂伏魔封印大神呪經)』 네이버지식백과에서 ~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인간세계의 선과 악을 살펴 죄 지은 자를 벌로써 다스리고 반성하게 하는 천왕이다.
크고 넓은 눈을 가진 천왕으로 수미산 서쪽 중턱에 자리한 백은타(白銀唾)라는 곳에 머물며 불법을 지킨다.
고대인도어로는 “Virupaksha”라고 하는데, 이상한 눈·추한 눈이라는 뜻이다.
한문으로는 추목(醜目)·악안(惡眼)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고 불리어진다.
광목천왕은 죄인에게 심한 벌을 내려 고통을 느께게 하여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광목천왕은 3개의 눈을 가졌다는 고대 인도 시바신의 화신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광목(廣目)이라 불리우는 것 같다.
그 부하로는 여러 종류의 용(龍)과 부단나(富單那) 등이 있다. 부단나는 냄새나는 귀신·아귀를 말하는데, 때로는 열병을 앓게 한다고 한다.
용은 하늘에서 구름·비·천둥 등을 부린다.
매서운 눈을 부릅 뜨고 있는 광목천왕은 오른손에는 용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모습이다.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으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암흑계를 관리한다.
수미산 중턱의 북쪽 구로주(瞿盧州)를 수호하는 천왕으로 비사문천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며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다문천(多聞天)이라 불린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서는 다문천왕이 암흑계에 머무는 악령의 우두머리로서 재물과 복덕을 주관하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다문천왕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듣는 호법신이 된 것이다.
다문천왕은 권속으로 야차·나찰을 부린다.야차는 행동이 민첩하고 가벼우며 음악과 환락·음식·오락·바람을 주관하며,
숲 속이나 묘지·골짜기에서 산다고 한다. 나찰은 두려운 존재라는 뜻으로 혈육(血肉)을 먹고 탐내는 존재이다.
다문천왕은 지물(持物)로 보탑을 들고 있어 특징적이다. 불교미술의 수많은 신장상 중에서 사천왕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중요한 표식이기도 하다. 다라니집경에는 다문천왕이왼손에 창을 잡고 오른손에는 불탑(佛塔)을 든다고 하며,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왼손에 막대를, 오른손에 탑을 든다고 하였다.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얼굴이 검은 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주는 천왕으로 수미산 세계의 남쪽을 관당한다.
수미산 중턱의 남쪽 영역 류리타(琉璃唾)를 관장하는 천왕(天王)이다. 중장천왕은 자신의 위엄과 덕으로써 만물을 소생시키고 덕을 베푼다.
고대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Virudhak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자꾸 늘어난다·확대된다는 의미이다. 한문으로 증장(增長)이라고 한다.
중생의 이익을 증대시켜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증장천왕은 그 부하로 굼반다와 프레타를 부린다. 굼반다는 배가 매우 부른 모습으로 표현되는 욕심이 매우 많은 아귀이며, 지국천왕의 부하인
비사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이라고 한다. 프레타는 탐욕스러운 자가 사후에 떨어지는 생존 상태인 아귀도(餓鬼途)를
뜻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부린다고 한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웠고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있고 갑옷을 입었다. 증장천왕의 지물(持物)은 대체로 칼을 쥐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리니집경은 왼손을 펴서 칼을 잡고 오른손에는 창을 잡는다고 하며, 일자불정륜경에는 오른손을 허리에 대고 왼손에 창을 잡는다고 하고,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칼을 잡는다고 씌여있다.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편하게 하는 천왕이다.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들 중에서 동쪽 영역의 황금타(黃金唾)를 관장하는
천왕(天王)이다. 지국천왕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며, 늘 인간들을 보살피고 인간들의
땅을 지켜준다. 부처님 또는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이 지국천왕에게 동방에서 불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명을 받아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지국(持國)천왕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신화에서는 지국천왕이 권속으로 간다르바를 부린다고 되어 있다. 후대의 불경에서는 지국천왕이 동방에서 간다르바나 비사사라는 귀신을
부리는데, 참된 도리를 파괴하고 선한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동방지국천왕이 가지고 있는 물건(持物)에 대하여는 경전마다 조금씩 달리 표현되어 있다.다라니집경에 의하면 동방지국천왕은 왼손에 팔을
내려 칼을 잡고 오른손을 구부려 보주(寶珠)를 쥔다고 하고, 일자불정륜경(一字佛頂輪經)에 의하면 왼손에는 창을, 오른손은 손바닥을
올려드는 형상이라고 한다. 약사여래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에는 비파(琵琶)를 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촬영일: 2014년 1월 18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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