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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慶州遠願寺址東.西三層石塔)

도랑도랑 2014. 1. 19. 09:27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 (慶州遠願寺址東.西三層石塔)

 

동·서 쌍탑의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사적 제46호 경주 원원사지 안에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 등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호국의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동ㆍ서 삼층석탑(높이 약 7m)은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조선건축사론 중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삼층석탑론(건축잡지 1933.11월호. 藤島亥治郞)에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복원하였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으로 조성된 2중 기단의 삼층석탑이며,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층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와 우주가 있고, 하층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상층 기단 괴임이 있으며,

상층갑석 4면의 각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는데 이들의 머리는 짐승이나,

몸체는 평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며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고 있는 형상이다.

 

1층 탑신석 이상 3층 옥개석까지는 모두 1매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각 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5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이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석과 앙화석이 남아 있다.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표현형식, 옥개석의 돌다듬기 수법,

기단부와 탑신부에 구현된 양식, 석재의 조립방법 등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하층기단에서 십이지상을 최초로 배치한 점 등 석탑의 조각기술, 구조적 특징, 표현양식 등을 고려할 때

학술적, 미술사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원사지동삼층석탑(遠願寺址東三層石塔)

 

높이 7.0m. 도굴되어 무너진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오다 1933년 서삼층석탑과 함께 복원된 이 탑은,

석등(石燈)을 중심으로 하여 오른쪽인 동편으로 8.5m 떨어져 서삼층석탑과 대칭되게 세워져 있는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상·하층 이중기단에 3층의 탑신과 상륜(相輪)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옥개석(屋蓋石) 중 1층 옥개석 일부가

파손되고 상륜부는 노반(露盤)과 앙화(仰花)만이 남아 있을 뿐,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를 비롯하여

복발(覆鉢)·보륜(寶輪)·보개(寶蓋)·수연(水煙)·용차(龍車)·보주(寶珠) 등은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8매의 돌로 상하 2층으로 높다랗게 이루어진 기단부는 하대갑석과 상대갑석 윗면에 2단의 옥신굄과

중석받침이 조식되어 있다. 모서리에 표현된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2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로

3분하여 각각 12면을 이루고 있는 상·하층기단 면석 중 하층기단 면석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지만

상층기단 면석의 각 면에는 십이지상(十二支像)이 정연하게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 중 하대갑석 윗부분에 2단으로 만들어진 중석받침 하단의 모서리가 둥글게 잘 다듬어진 점과 더불어

십이지상을 조각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탑 등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들이다.

 

특히, 이 탑에서 보이는 십이지상은 평상복장을 한 채 연화좌(蓮花座) 위에 자유스러운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서 머리는 동물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몸은 사람모습을 한 수수인신(獸首人身)의 상인데,

옷자락을 천인(天人)의 천의(天衣)와도 같이 상의 머리 위로 흩날리듯 표현함으로써 마치 불교의 범종(梵鐘)

또는 조각에서나 볼 수 있는 비천상(飛天像)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주로 경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왕릉 등에서 보이는 십이지상, 즉 무인복장에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입상의 십이지상들과 다른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상들의 방향은 모두 오른쪽을 향하고 있으나

소를 나타내는 축상(丑像)만이 좌향을 하고 있다.


추녀 끝부분이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층급받침이 5단으로 되어 있는 옥개석은 두껍고 정연하지만

각 부분들의 모서리를 둥글려 엄격한 느낌이 감소되어 있다.

 

그리고 1층 탑신에 비하여 2·3층 탑신의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 층간 탑신의 체감률이 심하게 드러나 보이는

탑신 중 초층 탑신에는 면마다 모서리에 우주를 만들고, 그 내부에 다시 장방형의 구획을 설정하여 1구씩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다.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진 고부조(高浮彫)의 사천왕상들 가운데 남쪽 면의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만이

깨어져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뿐, 나머지 동·서·북방의 상들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동방의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은 오른손에 칼을 잡고 악귀를 밟고 서 있는 정면향(正面向)의 상으로서

비록 오른쪽 얼굴과 왼쪽 가슴 부분이 일부 깨어져 있기는 하지만, 정교한 세부묘사와 더불어 긴장된 신체의

표현으로 말미암아 매우 활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경직되고 둔화된 신체굴곡의 묘사로 유연성은 결여되어 있다.

 

거의 정면을 향하여 서 있는 서방의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 역시 동방상과 같은 형태의 무인상으로서 악귀를

밟고 있는데,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올려 삼지창(三支槍, 또는 三鈷杵)을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다.

 

그리고 몸을 왼쪽으로 약간 틀고 있어 동방상에 비하여 신체의 유연성이 돋보이면서 묵중하고 당당한 느낌을 풍겨주고 있다.

오른쪽 발목 부분만이 약간 깨어져 있는 북방의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은 악귀를 밟고 오른손 위에는 복발형

탑을 얹고 있으며, 허리에 왼손을 대어 운동감을 부여하고 있지만 동방의 지국천왕상과 마찬가지로 경직되고 둔화되어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초층 탑신에 비하여 급격히 줄어든 2층과 3층 탑신에는 모서리에 우주만이 새겨져 있을 뿐 아무런 조각도 없고,

옥개석 역시 탑신과 같은 비율로 감소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높다란 기단과 함께 고준(高峻)해 보이는 이 탑은, 불국사 석가탑에서 이루어진 엄격한 형식과 비례에 의한

경쾌함과 날카로움 등을 보여주는 8세기의 탑과는 달리 사천왕상과 십이지상 등 장식적인 경향이 짙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탑은 신라의 전형양식이 확립된 8세기 석탑에서 부드럽고 장식적인 9세기

석탑양식으로 바뀌어가는 중간과정에 속하는 탑임을 알 수 있다.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중 서탑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사적 제46호)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보물 제1429호. 석등(石燈)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 대칭되게 세워져 있는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높이 7.0m. 1933년 동탑과 함께 복원된 이 탑은 동탑에 대칭하여 석등 좌측인 서쪽으로 8.5m 가량 떨어져 서 있다.

 

동탑과 동일하게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는 탑으로, 상대갑석 모서리를 비롯하여 1·2·3층 옥개석의 모서리 일부가

파손되었고, 상륜부(相輪部) 역시 동탑과 마찬가지로 노반(露盤)과 앙화(仰花)만이 남아 있을 뿐, 나머지 부재들은 모두 없어졌다.

 

여덟 장의 돌로 짜여진 기단부는 상·하 2층으로 상대갑석과 하대갑석 상면에는 2단의 중석받침과 옥신굄이 설정되어 있고, 기단 면석은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로 3분되어 면마다 3구씩 12구의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조식하였다.

 

이처럼 상을 새기고 각 부의 끝 단을 둥글려 완만하게 하는 것은 대체로 9세기경의 탑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십이지상은 좌상으로 사람의 몸에

동물머리를 하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데, 경주 지방의 왕릉에서 볼 수 있는 입상의 무인복장 십이지상과는 다르게 평상복을 하고 있다.

 

옷자락 역시 동탑에서와 같이 머리 위로 휘날리듯 묘사하여 범종이나 조각에서 보이는 비천상(飛天像)의 자태를 연상하게 한다.

상의 방향 또한 동탑처럼 축상(丑像)만이 좌향을 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우향을 하고 있다.

 

1층을 비롯하여 2·3층 옥개석은 추녀 모서리가 약간 반전되었고, 옥개받침은 5단이며, 각 층간의 탑신도 체감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각 층 탑신 중 상층기단처럼 장식조각을 한 초층 탑신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기고, 그 안에 장방형의 구획을 설정하여 각 면에 1구씩 4구의

사천왕상을 조식하였다.

 

다른 탑들에 비하여 한층 두드러지게 표현된 사천왕상은 남면의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만이 깨어져 있고, 동·서·북방의 상들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거의 완전한 형태로 악귀를 밟고 서 있는 동방의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은 정면향으로서, 두 손으로는 칼을 받쳐잡고 있으며, 왼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어 신체의 굴곡을 나타내고 있다.

 

얼굴과 왼쪽 가슴 부분이 모두 깨어진 서방의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은 일고저(一鈷杵)로 생각되는 무기를 들고 있는데, 정면향으로

똑바로 서 있어 경직되어 보이며,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틀어 변화를 주고 있는 북방의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은 특이하게도

두 마리의 악귀를 밟고 있다.

 

들어올린 두 손 중 오른손에는 보주를 잡고 있으며, 왼손에는 방형의 보탑을 받쳐들고 있다. 현재 동서 양탑에 남아 있는 6구의 사천왕상

가운데 서탑에서 보이는 북방상인 다문천왕상이 가장 둔화되고 경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의 유연성 또한 다른 상들에 비하여

뒤떨어짐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천왕상이 새겨진 1층 탑신과는 달리 2·3층의 탑신에는 모서리의 우주만이 표현되어 있을 뿐 다른 조각은 되어 있지 않다.

전반적으로 높고 날씬해 보이는 이 탑 역시 동탑과 같이 안정감 있고 정연한 8세기 석탑으로부터 장식성이 높은 9세기 석탑으로

변화해 가는 중간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왕각

 

신라의 사찰에서는 극히 보기드문  전각으로 용왕을 모신 전면 2칸 측면 1칸의 작은  집이라고 한다.

원원사가 동해안 울산방향으로 침범하는 왜의 무리를 막기위해 세워진 호국사찰이므로 용의 힘으로 왜를 막기위해 용왕각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하며, 왼쪽 칸의 문을 열면 방형의 석조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일년 내내 솟아나는 수량이 일정하고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우물은 식수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해의 용이 거처하는 장소로 신상시 되는 공간이다.

벽에는 용의 등에 올라선 장군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칸 안에는 앉은 모습의 용왕상이 있으며 뒷쪽 벽면에는 용왕의 그림이 모셔져 있다.

이 용왕각 우측 대나무 숲 길을 살짝 지나서 200여 미터를 오르면  멋진 복발형의 승탑을 만나게 된다고 했는데 500미터 정도 떨어진 동북쪽

계곡에 3기의 동승탑만 보고 내려왔다.

 

 

 

 

 

 

 

 

 

 

 

승탑은 주로, 8각원당형승탑, 기단부가 방형인 승탑, 오륜형승탑, 복발형승탑(석종형), 자연 암벽에 구멍을 뚫은 마애승탑, 일반 석탑형승탑 등

여러 형태로 제작이 된다고 한다. 불탑이 사찰의 중심지인 법당 앞에 건립되는데 반하여, 승탑은 경내의 변두리나 담장 밖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

이라고 하는데, 원원사에는 사역 동북쪽 계곡에 3기, 서북쪽 산중턱에 1기 모두 4기의 승탑이 있다. 사진은 동쪽 승탑의 모습이며, 동쪽 승탑은

경내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 서쪽 승탑은 약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4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유행한 복발형 승탑으로 보이나 아무런 명문이 남아있지 않아 누구의 승탑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 편리한만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부분이 왜곡(歪曲)된 부분도 적지않다는 생각도 든다.

이 겨울에 여유로운 휴일이되면 막연히 집안에 들어앉아 있기엔 아까운 시간들이기도 한듯 내친김에 가까운 경주지역의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려고 인터넷카페나 블로그등을 검색해 보니 잘 정리되어진곳이 한 두곳 눈에 확 들어왔다.

동남산 지역 두차례 돌아본 이후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원원사지삼층석탑,숭복사지삼층석탑,감산사지삼층석탑을 차례로

가볍게 하루일정으로 잡아볼 수가 있었다. 또 한 곳 영지라는곳 언제 한 번 돌아본적은 있었지만 정확한 명칭을 입력하지못해

네비게이션에선 나타나질 않아 빼버리고 주차장에서 출발 전 차례를 정하기 위하여 검색을 해 보았더니 거리가 먼곳으로 부터는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慶州遠願寺址三層石塔)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보물 제1429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산 8-2, 12-3 / 54.1km


숭복사지 삼층석탑 (崇福寺址三層石塔)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경북문화재자료 제94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산 23-1 / 45.1km

 

감산사지 삼층석탑 (甘山寺址三層石塔)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에 있는 석탑. 경북문화재자료 제95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5 / 44.6km 였다.

 

                                                                                                              촬영일: 2014년 1월 18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