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서당(聖山書堂)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하곡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정극후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당.
1985년 12월 30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쌍봉공파하곡정씨문중 소유이며 문중에서 관리한다.
통정대부를 지냈던 정래영(鄭來永)은 유림의 도움으로 1814년(순조 14)에 성산서사(聖山書社)를 건립하였다.
이 서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인 경덕사(景德祠)와 기타 부속사는 훼철되고 강당인 흥교당(興敎堂)만 남았다가 성산서당으로 개칭되었다.
훼철(毁撤) 헐어서 치워 버림.
毁撤(훼철) 헐어 내어 걷어 버림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의 상계(上階)이다. 1865년(고종 2)부터는 문관뿐만 아니라 종친(宗親)·의빈(儀賓)의 품계로도 함께
사용하였다. 통정대부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였으며 근무일수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가자(加資) 또는 가계(加階)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봉조하(奉朝賀)가 되어 녹봉(祿俸)을 받는 등의
특권을 누렸다.
봉조하(奉朝賀)
조선시대 전직 관원을 예우하여 종2품의 관원이 퇴직한 뒤에 특별히 내린 벼슬.
종신토록 신분에 맞는 녹봉(祿俸)을 받으나 실무는 보지 않고 다만 국가의 의식이 있을 때에만 조복(朝服)을 입고 참여하였다. 이 제도는 1469년(예종 1)에 처음으로 시행한 것으로, 처음으로 봉조하가 된 사람은 홍달손(洪達孫) 최유(崔濡) , 안경손(安慶孫), 이몽가(李蒙哥), 유숙(柳淑), 유사(柳泗), 배맹달(裵孟達), 정수충(鄭守忠), 한서구(韓瑞龜), 송익손(宋益孫), 유한(柳漢), 함우치(咸禹治), 한보(韓堡), 윤찬(尹贊), 한치형(韓致亨) 등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5명으로 규정하였으나 후에는 정원을 두지 않았다.
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며 평면 구조를 보면 어간(御間)에 3칸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둔
중당협실(中堂夾室)의 형태이다. 방에는 우물천장, 마루에는 연등천장으로 꾸며서 종보 위에 화반대공이 보인다. 지붕은 양쪽으로 날개지붕을 단 겹처마의 맞배지붕이다.
5량가의 3익공집이며 조선 후기의 익공 양식 기법을 보인다. 정면과 대청 중앙 뒷벽에 흥교당, 성산서당의 현판이 있으며 외삼문은 솟을대문이고 대문 좌우에는 광이 있다.
이곳역시 서당 앞의 정문은 귿게 안으로 잠겨져 있었다. 멀찌감치 담장 너머로 보이는 모습 렌즈속으로 들여다
볼 뿐 전체적인 건축물의 모습 만으로도 자연 환경과 어우러진 모습에서 한시절 살다간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듯 하다.
촬영일: 2013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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