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봉평신라비 전시관
울진봉평신라비 비석박물관은 국보 제242호 울진봉평신라비의 효율적인 보존을 위하여 2011년 6월 23일
개관했다. 비석박물관은 실내전시장, 야외비석공원, 비석거리, 정자, 연못, 주차장, 관리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실내에는 울진봉평신라비 실물과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주요 석비 모형전시와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의 양식 변화 한자 서체와 한글창제 등을 소개하고 야외에는 울진지역 송덕비와 삼국시대 조선시대 국보
보물급 모형비석이 전시되어 있다.
울진봉평신라비
국보 제242호 울진봉평신라비는 1988년 4월15일 매일신문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비는 원래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118번지의 논에 묻혀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비석의 재질은 유백색의 편마상 화강암으로 크기는 높이 204cm 전체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까운 부정형이다. 비문은 자연석에 앞면만 다듬어 399개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글자가 마모되어 판독이 어렵지만 524년 신라 법흥왕 1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의 내용은 6세기 신라 역사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새로운 정보가 가득 담겨있다.
이 비석의 역사적 가치로는 울진에서 일어난 중대한 일을 법흥왕과 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을
비롯한 14인이 논의하여 처리한 것으로 이시기의 의사결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법 대교법 장백 등은 520년 신라법흥왕 7년의 율령 반포에 대한 그동안의 논란을 해명하는
결정적인 자료이다. 신라 육부라는 단어는 적어도 5세기 이전에 성립되었다는 증거를 확인해
주고 있다. 법흥왕과 그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각기 탁부와 사탁부에 소속한 것은 국왕의
지위와 왕권의 모습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살반우는 신라에서 얼룩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벌모라 남미지촌 갈시조촌 등의 지명은 당시 울진 지역의 촌이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촌락사와
국어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울진봉평신라비는 신라중앙정부가 울진 지역의 반란을 진압한 후 현지 관료에게 장 60대와
100대의 형을 부과하는 율령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비석의 발견으로 고대사 연구가 활성화 되었고, 삼국사기 의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해주었다.
당시 신라의 왕권의 한계와 신라의 관료제도, 지방통치조직과 촌락 구조, 의식행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사료적 가치를 가진 국보 문화재이다.
촬영일: 2013년 8월 18일
전시관내 비치된 홍보용 팜플랫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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