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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년 산사의 풍경 골굴사

도랑도랑 2013. 5. 19. 19:01

 

 

골굴사(骨窟寺)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석굴 사원.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6세기 무렵 신라시대 서역에서 온 광유성인 일행이 약반전산에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해온

인공 석굴사원이다.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것으로 한국의 둔황석굴[敦煌石窟]이라 불린다.

 

함월산 석회암 절벽에는 석굴로 여겨지는 구멍이 곳곳에 뚫려 있는데, 맨 꼭대기에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보물 제581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높이 4m, 폭 2.2m 정도의 크기로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세련되지 못한 옷주름 때문에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기도 하며, 평면적인 신체와 수평적인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V자형 옷주름이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철원 도피안사와 장흥 보림사의 불상과 비슷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법당굴은 벽을 바르고 기와를 얹은 탓에 앞에서 보면 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북쪽 벽에 감실을 파고 부처를 모셨으나 마멸 정도가 심해 비닐하우스 같은 투명 보호막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다.

법당굴을 비롯한 다른 굴은 그 크기가 다양한데, 귀여운 동자승부터 근엄한 노승려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불상을 모셔 놓았다.

 

 

 

 

 

 

 

부처님오신날 골굴사를 찾아가면 봉축행사로 열리는 영화에서나 볼 수있는 무술시범과 공연이 함께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은 너무 늦은시간에 도착하는 바람에 선무도 시범공연은 관람하지를 못했다. 안내방송에서 흘러 나오는 방송을

들어보니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골굴사 주지스님의 마상탁발 재연 행사가 오륜탑 주변에서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올라가 보았다.

 

 

 

 

때마침 무술시범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장 담아보았다.

 

 

 

 

 

골굴사 주지스님의 마상탁발 재연 행사

 

 

 

 

캄캄한 굴속에서 다람쥐도 구경 나왔다.

최근 수년동안 사월초팔일엔 골굴사에 들렀다가 기림사를 돌아보고 14번 국도를 달려 오천으로 빠져 나온다.

골굴사의 이모 저모를 살펴본다.

 

 

 

 

                       주지스님의 마상탁발 재연 행사가 있었던 골굴사 오륜탑이다.

 

 

 

골굴사 대적광전 가운데 비로자나부출과 오른쪽에 석가모니불 왼쪽에는 노사나 불상을 모셔두었다.

평상시 법당앞에 들어서도 사진 한 장 선뜻 담아보지를 못했다. 근엄한 부처님앞이라 어쩐지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송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법당의 문은 모두 활짝 열려있고 밖에서도 불상의 모습을 훤히 들여다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신당 여근바위

골굴사가 창건되기 몇 천년 전부터 이곳엔 한 민족 고유의 민속 신앙이 전해오고 있었으니 남근과 여근을 숭배하는 토템이즘적인

자연 신앙 입니다. 자손의 번성과 수명장원을 기원하였으며 특히 생남기도가 중심이 되어 아들을 얻지못한 부인들이 여근(산신당)

바닥에 자연적으로 패인 여궁을 덮은 판자를 깔고 앉아 밤새워 기도하면 다음날 새벽 여궁에 물이 고임으로서 기도의 성취를 증명

하였으나, 세인들은 이를 음양의 조화로 생긴 정수라고 생각한다. 즉 득남의 증표란 뜻이라는 것이다. (골굴사홈페이지에서 발췌)

 

 

 

 

 

관음굴

앞에서 보면 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도 벽도 모두 돌로 된 석굴이다.

 

 

 

 

골굴사 지장굴(骨窟寺 地藏窟)

 

 

 

 

 

                   신중단(神衆壇)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을 모신 단.

                       사찰에서 호법신중을 모셔 두는 단을 말한다.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신앙 형태도 다양해져 나타난 것 중의 하나가 신중(神衆)이다.

                       신중은 특히 불교가 각 지역의 토속신을 수용하면서 더욱 늘어났다.

                       그에 따라 제석천·범천·사천왕을 비롯하여 팔대금강신중과 야차·아수라와 같은

                       팔부신중 등을 모시는 공간이 필요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신중단이다.

 

                       삼단불단이라고 해서 부처나 보살을 모신 것을 상단이라 하고

                       이 단을 중단이라고 부르며, 하단은 일반 망자들의 영혼을 모신 단이다.

                       신중은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부처와 불교신자들을 보살피나

                       신앙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단, 상단에서 불공이 끝난 뒤 이 단에서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예는 많다.

                       이것은 신중이 부처를 돕고 불교도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관음굴을 지나 마애불상 앞으로 오르는 길 굴속을 빠져 드나드는 자세들이 조심스러워 보인다.

 

 

 

 

 

                       경주골굴암마애여래좌상(慶州骨窟庵磨崖如來坐像)

                       1974년 12월 30일 보물 제581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4m, 머리 높이 1m, 어깨너비 1.4m이다.
                       함월산(含月山) 골굴암의 석회암벽에 정남동을 향해 양각으로 새겨졌는데, 12개의 석굴(石窟)이

                       있는 암벽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애불이다.

 

 

 

 

 

 

 

 

 

 

 

 

 

골굴사는 돌로 돔을 쌓고 흙을 덮어 굴처럼 만든 석굴암과는 달리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석굴사원이다.

문화재로서의 귀중함과 석굴사원으로서의 희귀성에 반해 일반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지만 요즈음에는

선무도(禪武道)의 수행도량으로 알려지면서 동양무술에 대해 관심 많은 서양인들과 방학중 학생들의 관심이 고조되고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있다. 선무도는 불가에서 비롯해, 중국 소림사와 신라 화랑도에 이어 태권도 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전통 수행법이라고 한다.

 

 

 

 

성 안내는 그 얼굴 푸근해 보이는 포대화상의 동상은 어느 사찰에 가나 눈길을 머물게 한다. 또 하나 특별한것이 있다.

절에 드나들 때면 일주문을 드나들지만 이곳 골굴사를 찿을 때 마다 주차장까지 올라가고 나오다 보면  내려서 사진 한 장

남겨둔 것이 없는듯 하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 우측 오를 때에는 좌측이지만 주차장 한 쪽엔 포대화상 동상과 함께

진돗개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1990년에 태어나서 강아지 때 부터 새벽 예불에 참석을 했고, 기도객들과 함께 참선과

탑돌이를 따라 했다고 한다. 동아보살은 진돗개의 습성과는 달리 산짐승을 함부로 살생한 적이 없고 20여 차례 강아지

분양으로 많은 돈을 절로 보시 하기도 했다고 한다.  늙어 병들어 거동이 불편했지만 죽는 날 아침까지 새벽 예불에 참석했다는

동아보살상이 포대화상 옆에 조용히 서 있다.

 

 

 

 

천막 한 동에 달마도자기란 안내글이 적혀 있어서 잠깐 들여다 보았다.

 

 

 

골굴사를 돌아보고 내려 오던길 하얗게 피어 드리워진 고광나무꽃이 눈길을 끌고 발목을 잡았다.

                             

                             사진 촬영일: 2013년 5월 17일 금요일 불기2557년 사월초팔일에...

 

 

 

 (박성일의 역사탐방 글 참고)

일부 학자(一部 學者)들의 말에 의(依)하면 이 사찰(寺刹)은 조선(朝鮮) 중(中), 후기(後期)에 화재(火災)로 인(因)해 소실(燒失)된

후(後), 사람이 살지 않는 상태(狀態)로 방치(放置)되어 오다가 약(略) 70년 전(年 前)에 박씨 일가(朴氏 一家)가 상주(常住)하면서 태고종(太古宗)에 등록(登錄)된 사설사암(私設寺庵)으로 전(傳)해왔으나, 1989년(年) 개인(個人)에게 매매(賣買)된 것을

당시(當時) 기림사 주지(祇林寺 住持)를 역임(歷任)한 설적운 스님이 다시 매입(買入)하여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11교구(第十一敎區) 골굴사(骨窟寺)로 등록(登錄)하여 등기 이전(登記 移轉)함으로써 현재(現在)는 불국사(佛國寺)의

말사(末寺)로 소속(所屬)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 남아 있는 동굴(洞窟)들은 한 사람도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작은 것부터 서른 명(名)도 너끈히 들어갈 만한 법당굴(法堂窟)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多樣)한데, 이런 동굴(洞窟)이 애초에는 모두 22개(個)였으나 절벽(絶壁)의 암질(巖質)이 풍화(風化)와

침식(浸蝕)에 약(弱)한 석회암(石灰巖)인 탓에 오랜 세월(歲月)의 풍우(風雨)에 씻기고 인적(人跡)에 무너져 내려 지금은 12개(個)만 남아 있다. 주불(主佛)인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은 동해안(東海岸)의 문무대왕 수중릉(文武大王 水中陵)을 바라보는

방향(方向)으로 조성(造成)되었고, 그 외(外) 관음굴(觀音窟), 지장굴(地藏窟), 약사굴(藥師窟), 나한굴(羅漢窟), 신중단(神衆壇),

칠성단(七星壇),산신당(山神堂) 등의 굴법당(窟法堂)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찰(寺刹)의 특징(特徵) 가운데 하나는 예로부터 밀교(密敎)로 전(傳)해져 오던 스님들의 무술(武術)인 ‘선무도(禪武道)’가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천 년(數千 年) 전(前)부터 전래(傳來)된 남근(男根) 바위와

여궁(女宮)의 음양 조화(陰陽 調和)로 득남(得男)을 기원(祈願)하는 민간신앙(民間信仰)이 간직된 설화(說話)가 유명(有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