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삼지동 모전석탑(英陽三池洞模塼石塔)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삼지리에 있는 신라시대 석탑.
문화재자료/경북문화재자료 제83호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되었다. 영양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영양읍내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진 삼지리 뒷산 중턱에 있는 모전석탑이다.
절벽을 이룬 산중턱의 커다란 바위를 기단(基壇)으로 하여 그 위에 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았다.
당초 3층탑이었는데, 현재 2층만 남아 있으며, 탑 위에 노반과 복발(覆鉢)·보주(寶珠)가 있어 상륜부(相輪部) 형식을 갖추고 있다.
모전탑이란 흙이나 돌로 벽돌모양을 만들어 쌓은 탑이다. 경주 분황사석탑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깍아 세운 것이고,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은 흙을 구워 벽돌모양을 만들어 쌓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고래로 벽돌로만 쌓은 건축은 없이
단지 궁궐이나 사원에서 장식으로 문양을 넣은 벽돌을 사용하였을 뿐이다. 때문에 "한국의 전탑은 겨우 신라시대, 그것도
안동과 여주에만 한정되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이 탑의 예에서 보듯 경상북도 일대를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전탑이 발견되고 있다.
이 탑의 높이는 3.14m이고, 초층탑신의 폭은 1.41m이다. 초층탑신 전면에는 감실(龕室)이 설치되어 있으나 불상은 없고
구조도 많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감실에서 신라 금동불상 4구가 나왔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1998년 석탑 해체보수시 석제 사리함과 사리 1과가 출토되었는데, 석제 사리함은 국고에 귀속 조치하고, 사리와 신규 제작한
사리함은 재봉안하였다. 석제 사리함은 모전석탑 계열에서 자주 출토되고 있으며, 경주 분황사석탑에서도 출토된 적이 있다.
이 탑은 현재의 연대암 부근에 영혈사가 있었는데, 그 절에 있었던 탑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축조연대도 삼국 통일 이전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사월종택 이정표가 있길래 조금 들어가 보니 사월선생신도비각이 있었다.
월담헌과 사월종택을 찾아보고 오려다가 이 앞에서 네비게이션에 사월종택을 입력 했더니
출발지와 목적지가 같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나타났다. 하루에 모두 돌아보기엔 시간이 부족 할 듯
처음 목록에 추가했던 서석지까지만 돌아보면 시간이 충분할것 같은 순간 서석지로 출발했다.
여기서 월담헌과 사월종택에 관한 자료를 잠시 살펴보면
월담헌은 사월(沙月) 조임(趙任)이 1602년(선조35)에 세운 살림집이다.
조임은 10세때 부친을 여의고, 영해면 원구2리 옷금 안동 권씨 종가에 장가를 든 후 처외가인 인량리 대흥 백씨인
백장단(白長湍)댁의 재산을 천석 넘게 얻었다. 이 재물을 가지고 이름난 승려인 성지(性智)가 터를 잡은 곳에 집을 세웠다.
또한 종택은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 상류의 옥선대를 바라보는 경승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임란 등의 전란에도 병화를 입지 않아
영양에서 제일가는 명지로 꼽힌다. 월담헌이라는 이름은 주자의 「무이구곡가」에서 취하였고, 현판의 글씨는 창석 이준(李埈)의
친필이다.
어떤 사람이 “그대의 헌함 이름은 ‘달이 빈 산에 가득하고, 물이 못에 가득하다’는 뜻인가?”라고 물었다.
내가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주자가 산수에 흥취를 붙인 것인데, 나처럼 용렬한 사람이 어찌 현인의 마음과 자취에
비길 수 있겠는가. 다만 물이 못을 이루어 달빛을 더욱 잘 받아들이고, 헌함이 못 위에 있어 맑은 기운을 서로 비추기 때문에
경치에 따라 이름을 붙였을 뿐이네. 어찌 다른 뜻이 있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촬영일: 2013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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