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義城氷山寺址五層石塔)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신라 말·고려 초의 석탑.
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義城氷山寺址五層石塔)
높이 8.15m. 보물 제327호. 단층기단 위에 모전석탑의 형식을 취하였으며, 규모가 작고 부분
적으로 생략되었으나 의성탑리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 국보 제77호)을 그 모범으로 하였다.
지대석(地臺石)은 16석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상부에는 홈을 파서 중석(中石)을 받게 하였다.
중석은 탱주(撑柱 : 받침기둥)와 면석(面石)을 별석으로 하여 15석으로 구성되었으며, 탱주는
1주로써 넓은 기단의 측면을 구분하였다.
갑석(甲石)은 8석으로 되었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기 위하여 비교적 높은 굄돌을 배치하였다.
초층 옥신(屋身)은 네 귀에 별석(別石)으로 우주(隅柱)를 두었으나, 위가 좁고 아래가 넓어
(상부 40.6m, 하부 43m) 안정감을 나타내려 한 것이 의성탑리오층석탑과 동일한 형식이다.
정면에는 감실(龕室)을 마련하였는데 높이 1.53m, 너비 1.16m, 깊이 0.56m이다.
감실 주변은 4매의 석주로 설주(楔柱 : 문설주)를 나타내었다. 옥개석은 각기 크기가 다른
석재로 각 층을 구성하였으며, 옥개받침은 4단이다. 낙수면(落水面)에도 층단이 있어 특이하며,
각 층 5단으로 구성되었다.상륜부(相輪部)는 갑석형을 지닌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만 남았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이 탑은 의성탑리5층석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각 부의 양식은 더욱 간략화 내지 둔중해지고 있다.
경상북도의 8군데 아름다운 경치 가운데 하나인 보현산 줄기 빙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돌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 쌓은 모전
석탑으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모방한 것이다. 탑의 형태는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16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기단의 가운뎃돌은 기둥과 면을 이루는 석재를 딴 돌로 하여 15개의 돌로 구성하였다. 기단의 맨윗돌은
8개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로 탑신을 받치기 위해 괴임을 높게 얹었다. 탑신부를 보면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딴 돌로 모서리기둥을 세우고
정면에 네모진 공간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 공간은 불상 등을 모셔두는 용도로 쓰였다. 2층 이상부터 몸돌은 그 높이가 1층에 비해 반 이상
줄었으며, 5개의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4단씩이다. 지붕돌의 경사진
면은 각 5단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정상의
머리장식부분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다.
탑의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 사이로 추정된다.
의성탑리오층석탑에 비하여 격이 떨어지나 모전석탑으로서
아름다운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에서 발췌)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하는 빙혈과 풍혈의 이야기
신라 무열왕의 둘째 따님임 요석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薛聰)을 데리고 지아비 원효대사를 찾아 이곳
빙산원(氷山院 빙계계곡의 옛이름)에 이르렀을 때는 유월염천 유두(流頭)가 막 지난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공주일행이 서라벌을 떠나 보현산을 거처 조문국(詔文國 지금의 의성군 금성면)경내에 다다르자, 궁궐터와
임금이 쓰시던 우물인 어정(御井)이 있었다. 동네어귀에서 원효대사의 거쳐를 물었더니 빙산사 빙혈(氷山寺 氷穴)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나오는 풍혈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소.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공주는 좁을 굴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 하였다. 발이 미끄러지는 곳은 얼음판이었다.
얼마를 들어갔을까? 굴이 넓어졌다.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곳이 없다. 공주는 크게 소리쳐 불러 보았다.
"아바아(여보)!"
굴속이 응하고 울렸다. 울리는 소리가 마치 큰 쇠북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스러졌다.
중략 ... ...
-춘원 이광수 작, '원효대사(하) 중에서
춘원선생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먼 옛날 이 계곡은 거대한 동굴이었다고 한다. 대지진으로 동굴이 무너지면서
풍혈, 빙형 구멍이 지금 같이 좁아졌으나 지하는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신비하기만 하다.
2006.12
빙계계곡 역사. 문학 연구보존회
마을 건너편엔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엔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바위들은 1933년 10월 4일 경상북도내 경북팔승의 하나로 뽑혔으며,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 큰 바위 위에 빙계동(氷溪洞)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건 임란 때 이곳에 들른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이야기도 있다. 그 옆에 또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 이라고 새긴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빙계계곡 기억조차 가물 가물한 아련한 옛추억으로 떠 오르는 총각시절 회사 동료들과 한 번 간적이 있었고 몇 해전 가족과
함께 여름에 찾아본 적이 있었다. 다시 한 번 여길 들렀던 것은 최근 문화 유적지 사진에 흥미를 느껴 고향에서 동창회 다녀
오는길에 난생 처음 고운사에 들렀다가 나온 후 국보급 문화재인 관덕동오층석탑을 구경하고 내친김에 탑리오층석탑마져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 빙계계곡에 들르기 전 먼저 탑리오층석탑에 들렀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보수 공사중이라 겉
모습에 그려진 그림만 쳐다보다 오는꼴이 되고 말았다.
촬영일: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오후
'그룹명 > 문화유적유물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헌덕왕릉 (慶州 憲德王陵) (0) | 2013.05.11 |
---|---|
사적 제30호 흥덕왕릉(慶州 興德王陵) (0) | 2013.04.29 |
의성관덕동삼층석탑(義城觀德洞三層石塔) (0) | 2013.04.27 |
고운사석조석가여래좌상(孤雲寺石造釋迦如來坐像) (0) | 2013.04.27 |
고운사삼층석탑 (孤雲寺三層石塔) (0) | 2013.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