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고려 때 처음 이 성을 쌓았는데 동쪽으로 왜적을 막고 북쪽으로는 여진족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사』,『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현종 2년(1011) 당시에는 흙으로 성을 쌓았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성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둘레가 1440m이며 3개의 성문과 문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작은 성인 옹성,
성벽 바깥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서 만든 치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4개의 우물과 2개의 연못인 음마지(飮馬池)가 있다.
성 안쪽에는 교육기관이었던 장기향교와 관청이었던 동헌 터가 남아 있는데
동헌은 현재 면사무소 안으로 옮겨 보호하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으면서 읍을 다스리는 기능도 갖추고 있는 장기읍성은
읍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이것이 장기 읍성 이었다. 사적 제386호. 지정면적 124,936㎡, 둘레 1.3㎞. 이 읍성은 1011년(고려 현종 2)에 여진족의 해안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조선 1439년(세종 21)에 왜구에 대비하기 위하여 석성(石城)으로 재축되었다. 장기읍성은 산성적 역할을 겸한 읍성으로서 해발 252m인 동악산(東岳山)에서 해안쪽인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지맥 정상(해발 약 100m)의 평탄면에 축성된 동∼서가 긴 마름모꼴 형태의 읍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 기록에 의하면, 읍성의 둘레는 2,980척(약 1,392m), 높이 10척으로, 성내에 우물 4개소, 못 2개소가 있었다고 하나 현존 읍성의 둘레는 약 1.3㎞, 성벽 높이 약 3.7∼4.2m, 성벽 두께는 하부가 약 7∼8m, 상부가 약 5m이고 3개소(동·서·북)의 문지(門址)와 수구(水口) 1개소, 12개소의 치성(雉城), 성내에 5개의 우물과 3개소의 못이 남아 있다. 이 읍성이 산상(山上)에 있게 된 이유로 지리적 특성을 들 수 있는데, 서로는 산령(山嶺)이 가로막고 있고, 남북으로는 인근 고을이 떨어져 있어서 유사시에 오랜 시간 농성하면서 인근의 구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숲속에 가려지고 허물어진채 일부 남아있는 구간이 그래도 예스럽고 한참을 머물며 찬찬히 들여다보는 애틋함이 우러러났다. 촬영일: 2013년 1월 13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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