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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풍경 산골 이야기

도랑도랑 2013. 1. 10. 06:01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해 겨울 선 뜻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휴일 한번 맘 편히 쉬어 볼 수가 없었던 세월 삶 그 뒤안길에는 짬만나면 어디론가

뚜렸한 목적 없어도 괜찮았다. 방황아닌 방황처럼 산이든 계곡이든 아침일찍 나가서

해가 지도록 돌아다니며 이름 모르던 들꽃 한송이도 햇살에 비치는 새싹들도 렌즈로 들여다 보고

오는것이 금쪽같은 시간이었고 다시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엔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2013년 새해 첫번째 일요일 몇일간의 추위도 약간 누그러진듯 내연산 계곡으로 들어가 볼까

아님 청송얼음골에서는 빙벽등반대회가 열린다는 뉴스도 있었는데 거기라도 한바퀴 돌아올까 하면서

나가 본 계사년의 첫 나들이 좋은길 보다는 꼬불꼬불 아기자기한 산골길을 택하여 길을나섰다.

 

 

 

 

포항에서 청송방면 31번 국도를따라 죽장삼거리에서 69번 지방도를 따라 직진하면 송내교를 건너기 직전 개울건너 언덕아래

하늘 찌를듯 솟아있는 바위가 눈길을 끌며 바로옆에오래된 건물이 입암서원의 부속건물인 입암서원 일제당(立岩書院日?堂)이다.

다리(송내교)건너 좌측엔 입암서원이 있고 우측 개울가엔 노계 공원이 있다.

 

입암서원 일제당(立岩書院日躋堂)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 있는 입암서원의 부속건물.

 

입암서원과 그 부속건물인 일제당(日躋堂), 만활당(萬活堂) 등은‘입암서원 일원’이라는 명칭으로

경상북도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당(日躋堂)은 1600년(선조 33)에 건립된 건물로

기암절벽을 등지고 서 있는데, 그 기암이 바로 입암리와 입암서원이라는 명칭이 유래된 선바위 즉 입암(立岩)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여헌 장현광(張顯光), 수암 정사진(鄭四震), 윤암 손우남(孫宇男) 등이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였으며,

1629년에는 가사문학의 대가인 노계 박인로(朴仁老)가 들러‘입암가(立岩歌)’ 29수와‘입암별곡(立岩別曲)’을 남기기도 하였다.

1907년(순종 1) 산남의진(山南義陣)이라는 의병조직이 일본군 영천수비대를 맞아 입암전투를 벌였는데 일제당은 이때

소실되었다가1914년 복원되었다.

 

절벽에 의지하여 높은 자연석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앉혔다.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가운데 칸은 마루, 양쪽 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마루 뒷벽에 출입문을 세우고 누마루를 꾸며 계자난간을 둘렀다.

 

 

 

 

입암서원(立巖書院)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 있는 서원.

 

1657년(효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장현광(張顯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3년(숙종 29) 정사진(鄭四震)을 추가배양하고. 그 뒤 권극립(權克立)·정사상(鄭四象)·손우남(孫宇男)을 모시게 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3년에

강당이 복원되고 1974년에 묘우가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3칸의 강당과, 부속건물로

1605년에 설립된 일제당(日?堂), 1609년에 설립된 만활당(萬活堂) 등이 있다.

 

묘우에는 장현광을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권극립·정사상·손우남·정사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부속건물은 향사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두는 곳이다.

 

이 서원의 일원에서는 매년 2월 하정(下丁 : 세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장현광의 영정과

마상도(馬上刀)·지팡이·좌장(坐杖) 등이 있다. 이 서원의 일원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내의 향나무는 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되어 있다.

 

 

 

노계박인로시비(蘆溪朴仁老詩碑)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였던 노계 박인로(朴仁老 1561∼1642)를 기리기 위해

2001년 노계시비건립위원회에서 세운 시비(詩碑)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입암서원 앞 도로 건너편, 가사천(川) 옆에 조성한 작은 공원에 있다.

 

시비는 가로 3m, 세로 1.2m, 높이 2.5m 크기로, 오석(烏石)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앞면에 박인로의 시 ‘입암(立巖)’ 중 한 수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글과 연보가 새겨져 있다.

 

시비에 적힌 시구(詩句)는

‘무정(無情)히 서난 바회 유정(有情)하야 보이난다/

최령(最靈)한 오인(吾人)도 직립불의(直立不倚) 어렵거늘/

만고에 곳게 선 저 얼구리 노칠 적이 업나다’이다.

 

박인로는 시비가 새워져 있는 죽장 지역에 살던 여헌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을 찾아왔다가

입암(탁임암)의 절경에 취해 시조 <입암 29곡>과 가사 <입암별곡>을 남겼다고 한다.

 

 

 

 

 

 

 

 

 

 

 

 

 

 

 

 

 

 

 

 

 

 

 

 

 

 

 

 

 

 

                                                                                                                         촬영일: 2013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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