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사(龍潭寺)
용담사(龍潭寺)는 신라(新羅) 문무왕4년(664) 화엄화상(華嚴和尙)이 창건하여
선조7년(1574) 송혜증법사(松惠證法師)가 중건(重建)한 고찰(古刹)로서 오랜 세월로 인해
다른 건물들은 없어지고 지금은 무량전(無量殿)과 요사(寮舍) 및 근래에 건립한
대웅전(大雄殿)이 남아 있다. 무량전(無量殿)은 정면(正面) 4간, 측면(側面) 2간,
맞배지붕 겹처마 익공집으로 극히 검소함을 보 여주는 건물이다.
절 부속으로 서쪽 500m지점에 '극락암(極樂庵)'이 있고,
남쪽 800m 지점 산중턱에 금학산(金鶴山) 금정암(金井庵)이 남아 있다.
용담사 금정암의 대표적 건물 '화엄강당'
화엄강당은 용담사 소속 금정암의 부속건물로 이 암자는 강당 외에 산령각·우상각· 전등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정암중창기에 의하면 금정암은 선조30년(1597) 혜징법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하며 또한 정조24년(1800)에도 중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화엄강당은 금정암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로, 규모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일자형(一字形) 건물이다. 기단은 막돌 허튼층 쌓기로 하였으며, 그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의 기둥은 배흘림으로 다듬었다. 정면 8칸은 건물의 쓰임새로 보아 4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왼쪽으로 2칸은 부엌이며 그 다음 3칸은 법당이다. 그 옆 2칸은 선원(禪院:강당), 제일 우측 1칸은 창고로 짜여 있는 구조이다. 2칸의 부엌을 제외한 나머지 칸에는 전면으로 1칸 넓이의 툇마루를 깔았다. 법당의 내부 바닥은 온돌이며, 천장은 보와 도리가 보이지 않도록 막힌 구조를 하고 있다. 원래는 연등천장인 것을 후에 개조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는데 불단은 뒷벽에 붙여서 장방형의 단을 놓고 그 위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한 석가모니 불을 모시고 있다. 불상 뒤에는 불벽을 조성하여 후불(後佛)탱화와 칠성(七星)탱화를 봉안하고, 우측면 벽에는 신장(神將) 탱화를 봉안 하였다. 강당도 온돌방으로 꾸몄으며 창고는 흙바닥인데, 출입문은 우측면에 판문으로 짜여 있다. 부엌은 전면에 판벽과 살창으로 벽체를 구성하였고 출입문은 좌측면에 여닫이 판문이 분합으로 짜여져 있다. 부뚜막 위 약 150cm 높이에는 조왕단을 설치하고 조왕탱화를 모시고 있다. 용담사(龍潭寺)에 얽힌 전설 용담사(龍潭寺)는 신라때 창건하였으며 본래는 본사와 암자가 있었는데 50여 년 전 1개(학사함)가 불타버리고 또 1개(극락암)는 헐어버려 현재는 본사와 암자 1개(金井庵)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이 절을 세울 때 地師가 말하기를 이 절에 쇠삿갓을 쓰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절이 망하는 줄 알라는 예언이 있어 승려들은 항상 경계해 왔는데 어느 여름날 소나기가 내리는데 여인이 솥뚜껑을 머리에 쓰고 비를 피하며 먹을 것을 구하러 절에 들어 왔다고 한다. 그 뒤 수백 명의 중이 뿔뿔이 흩어지고 절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용마루 양쪽 끝에는 망새(雉尾)기와를 얹었고
판문을 들어서면 2단 정도 낮은 부엌 바닥이 있고, 부뚜막은 법당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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