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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댐

도랑도랑 2019. 8. 20. 18:28

 

 

임하댐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臨河面) 임하리에 있는 다목적 사력댐으로 높이 73m, 길이 515m, 총저수량 5억 9500만㎥이며

1984년 12월 착공하여 1993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높이 73m, 길이 515m, 총저수량 5억 9500만㎥, 유역면적 1,461㎢이다.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하나인 다목적 수자원개발사업에 의해 건설된 다목적 사력댐으로,

1984년 12월 착공하여 1993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낙동강의 제1지류인 반변천의 상류 18km 지점에 있다.


임하댐이 준공되면서 낙동강 유역의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어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줄이고,

수질개선은 물론 낙동강 중·하류 지역의 늘어나는 물 소비량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시설용량은 5만kW(2만5천kW×2대)이며, 연간 9600만kWh의 전력을 낙동강 부근 중소도시들에 공급한다.

4억 9700만㎥의 용수 공급과 8000만t의 홍수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다.


주변에 각종 체육시설과 관광시설이 있고, 물 홍보관에는 댐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이 지역에 사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긴 어디?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水谷里)에 있는 수곡교(水谷橋) 2박 2일 밤낚시 다녀온곳이다.

 

 

 

 

수곡교(水谷橋)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다리.

임하호에 수몰된 무실마을의 한자어 이름을 차용하여 수곡교라고 하였다는데, 수곡교는 길이 450m에 2차선,

다리 폭 6.5m, 높이는 68m의 다리이다. 상부구조는 스틸 박스형이며, 설계하중은 DB-18톤이다.


임하댐 건설로 옛 마을들이 수몰되면서 수몰 지역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1989년 12월 30일에 준공되었다.

1992년 5월에 국도 34호선 측 교대에 균열이 발생하여 일부를 교체하였다.

1994년 9월 15일에는 국도 34호선 측 교대와 교각이 수평으로 이동하고, 가라앉는 등 150m 구간의 피해가 발생하여

안동시에서는 통행을 우선 제한하였다.

 

1995년 5월에는 다리를 폐쇄하였으며, 1999년에는 보강·보수 공사를 마치고 통행을 재개하였다.

수곡교는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를 지나는 국도 34호선과 수곡리 간의 임하호를 횡단하는 시도 노선 21호선에 있는 교량이다.

일일 교통량은 300대 정도. 인근에는 정재 종택과 전주류씨 무실 종택, 기양서당, 아기산 등이 있다.

 

 

 

 

 

 

 

 

 

 

 

 

수애당 (水涯堂)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수애 류진걸(柳震杰)이 지은 사가(私家)로서 1985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수애 류진걸(柳震杰)이 지은 사가(私家)이며 그의 호를 따라 당호를 수애당이라 했으며 현재 후손 류필우가 소유, 관리한다.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침(正寢)은 ‘一’자형 평면 구조로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고방(庫房)은 ‘ㄱ’자형 평면 구조로 정면 10칸 규모이고, 대문은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이다.


1939년에 지은 이 가옥의 목재는 모두 춘양목(春陽木)으로 보존 상태가 좋으며, 조선 말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원래 안동군 임동면 수곡동 612번지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지역으로 편입되자 1987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하였는데,

경사지 위에 있던 것을 평지에 다시 세움으로써 정침이 원래보다 약 2~3m 낮아졌다고 한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전주류씨 무실 종택 (全州柳氏務實宗宅)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전주류씨 무실 종택은 전주류씨 무실파의 대종택이다.
무실의 입향조는 전주류씨 시조 완산백(完山伯) 류습(柳濕)의 6세손 류성(柳城)이다.
류성은 의성김씨 김진의 사위가 되어 영주에서 안동으로 이거해 왔다.
이후 무실의 전주류씨 문중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을 이어받아 학문적 기틀을 마련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7세손 기봉(岐峯) 류복기(柳復起)와 문규(門規)를 제정한 8세손 도헌(陶軒) 류우잠(柳友潛, 1575~1635)이

그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 후 월회당(月會堂) 류원현(柳元鉉)이 문중의 화목과 학문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청송 방면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 20㎞ 정도 가면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오른쪽을 보면 긴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것이 수곡교이다. 수곡교를 건너면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인데 월회당은 수곡리 마을 안에 있다.

 

전주류씨 무실 종택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세기 후반 또는 18세기 전반에 건립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1988년 임하댐 건설로 원래 있던 곳인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691번지에서 현 위치로 옮겨 왔다. 1991년 봄

사랑채에 화재가 발생하여 다시 보수하였다.

 

 

 

본채는 정면 7칸, 측면 6칸의 민도리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부속 건물로 솟을대문, 행랑채와 사당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이지만 전면 좌측의 사랑채가 돌출한 형이다.

중문간(中門間)의 우측에 갓사랑방 1.5칸이 놓여 있고, 이 갓사랑방에서 우측으로 돌출한 부분의 전면에는 사랑 마당 쪽으로 개방된

3칸에 길쭉한 사랑 대청을 설치하였으며,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대청 뒷부분에 2칸을 면하여 2통칸의 큰사랑방을 배치하였는데, 두 짝 여닫이문과 삼분합 들문을 각 칸에 달아 대청으로부터 출입하도록 하였다.

갓사랑은 아들이 거처하고 큰사랑은 아버지가 기거하는 공간으로 삼았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정면 3칸은 대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청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대청의 왼쪽 어간 앞에는 안방으로 들어가기 쉽게 댓돌을 놓았다.

대청의 왼쪽에는 안방이 있는데 크기는 2칸이며 2개의 출입문이 있다. 안방 뒤쪽에 조그만 광창도 나 있다.

안방 아래에는 2칸 크기의 부엌이 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부엌 아래의 방 2개를 터서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외의 부속 건물로 행랑채는 솟을대문과 연결되어 있는데 정면 6칸, 측면 1칸의 크기이다.

사당은 월회당의 오른쪽에 있는데, 대문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작은 문으로 출입한다.

사당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맞배지붕집이다.

 

1984년 5월 21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7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류승우이다.

 

 

 

 

 

 

 

 

 

 

 

 

 

 

기양서당 (岐陽書堂)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臨東面) 수곡리(水谷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당.


1979년 12월 18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유의손(柳義孫)과 유복기(柳復起:1555∼1617)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전주유씨 수곡파의 세덕사(世德舍)이다.

앞쪽으로 임하댐이 보인다. 원래는 안동군 무실 남쪽 산록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현재의 위치에 이건·보수하였다.


처음에는 유복기가 1615년(광해군 7) 서재로 건립하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었으나 1716년(숙종 42)에 후손들이 서당으로 중창하였다.

그후 사당인 추원사(追遠祠)를 세워 1780년(정조 4) 유복기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1806년(순조 6)에 유의손의 위패를 추가로 봉안하였다.

매년 정월 6일에 사당에 참배하며 매년 3월과 9월 첫 정일(丁日)에 향사를 치른다.


추원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당인 역락당(亦樂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 건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2칸의 방이 딸려 있다.

역락이라는 강당명은 《논어》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강당에 딸린 양쪽 방에도 각각 ‘숭덕재’와 ‘광업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유의손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효숙(孝叔), 호는 회헌 또는 농암(聾巖)이며, 세종 때 이조참판과 예조참판을 지냈다.

유복기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성서, 호는 기봉으로, 예빈시정(禮賓寺正)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김해(金垓)·배용길(裵容吉) 등과 함께 예천 등지에서 왜적과 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성을 지켰다.

 

 

 

 

 

 

 

 

 

 

 

 

 

 

 

 

 

 

 

 

 

 

 

기산충의원 루문

 

 

강당

 

 

 

내삼문

 

동재

 

 

 

서재

 

 

 

촬영일 : 2019년 08월 17일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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