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이어온 언덕 두들마을
두들마을은 조선 시대 광제원(廣濟院)이 있던 곳으로 ‘언덕(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 이라고 하여 원두들 원리라 부른다.
1640년(인종 18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렵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들어와 학문연구와 후학을 양성하는데 전념하였다.
석계의 아들 중 넷째 숭일(崇逸)이 선업(先業)을 이었고 후손들이 더해져 재령이씨(載寧李氏)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 옆 둔덕에는 석계선생의 서당인 석천서당과 석계고택이 남아 있으며, 마을 앞으로 흐르는 화매천 가에 서있는 암석들에는 석계 선생의 넷째 아들인
항재 이숭일이 새겼다는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의 글씨가 아직도 남아있다. 최근들어 음식디미방체험관, 정부인 장씨 유적비와 예절관, 음식디미방 교육관, 전시관, 광산문학연구소, 북카페 등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갈암 이현일과 밀암 이재 등이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후학에게 널리 전하였고, 근세에는 내산(奈山) 이현규가 의병 대장을
지냈으며, 유림 대표로 파리장서사건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운서 이돈호와 이명호, 이상호 등도 이 마을 출신이다.
또한 항일 시인인 이병각과 이병철, 소설가 이문열을 배출하였으며, 조선시대 양반가의 음식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정부인 장씨의 장녀 교육에
대한 덕행과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인 정사를 가옥에 별채로 세운 보기 드문 예이다.
전체적으로는 건립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지만 내부 공간 중 일부는 현대식으로 변형되었다.
2013년 3월 18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03호로 지정되었다.
영양 석간고택(英陽石澗古宅)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에 있는 19세기 후반의 가옥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03호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좌해 이수영(李秀榮, 1809~1892)이 생활하고 학문을 닦던 가옥으로,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살림집인 정침(正寢), 서재로 사용한 별채인 정사(精舍), 그리고 고방채(庫房-, 광)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정사는 1883년 세웠다고 전해진다.
정침의 경우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정사보다 먼저 세웠을 가능성도 있다.
고택으로 들어서면 마당을 중심으로 왼편에 ‘石澗精舍(석간정사)’라는 편액이 걸린 정사가 있고, 마당 뒤편에 정침과 고방채가 배치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4칸·측면 5칸 규모이다. 홑처마 맞배지붕의 정남향 집이며, 평면 구성은 ‘ㅁ’자 형이다.
중앙의 2칸 규모 대청을 중심으로 왼편에 안방, 오른 편에 건넌방을 두었다. 안방 앞으로는 부엌과 온돌방, 안방 뒤로는 고방이 배치되었다. 오
른편 건넌방 앞으로는 고방, 마루간, 온돌방 등이 있고, 기단은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기둥은 사각기둥으로 세웠다.
정사는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이다. 정침과는 대각선 방향으로 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홑처마 맞배지붕의 정남향 집이며, 평면 구성은 ‘一’자 형이다. 중앙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 온돌방을 두었다.
마루방에는 사분합문을 달았으며, 마루 앞뒤로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기단은 자연석, 기둥은 사각기둥으로 되어 있다.
고방채는 정면 1칸·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침 바로 옆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침, 정사와 마찬가지로 기단은 자연석, 기둥은 사각기둥이다.
夢駒 李秉珏 詩碑 (몽구 이병각 시비)
뉘우침이여
베개를 적신다
달이 밝다.
배짱이 울음에 맞춰
가을밤이 발버둥친다
새로워질 수 없는 내력이거든
낟알아 빨리 늙어라
1918년 안동보통학교 입학, 1924년 서울로 상경하여 중동학교 입학했으나 1929년 광주학생사건에 연루 퇴학당했다.
1930년 일본에 머물렀으나 귀국하여 청년운동, 민중운동을 했다.
이병각은 카프가 해체된 시기인 1935∼36년부터 문단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른 죽음으로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평론, 산문, 시에 이르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하였지만 카프 해소 이후 10여 년으로 그치고 있다.
그는 현실도피적인 성향과 후두결핵으로 문단활동도 활발하게 하지 못하였다.
이병각의 시집은 1940년에 병든 몸으로 직접 한지에다 붓으로 써서 묶은 것이다.
이병각은 아호로 몽구로 불리었고, 인대라는 호적상의 이름은 아버지가 아들의 씀씀이를 걱정하여 이름을 고쳐놓은 것이며 실제 이름은 이병각이다.
카프(KAPF)
‘카프’는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영문 첫 글자를 딴 약칭이다.
계급 의식에 입각한 프로 문학을 조직적으로 추구한 문학예술 단체.
염군사(焰群社)와 파스큘라(PASKYULA) 두 단체의 결합으로 1925년에 조직된 후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나 내부 갈등과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해산하였다.
촬영일 : 2019년 06월 1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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