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화유적유물산책

목은기념관 (牧隱紀念館)

도랑도랑 2016. 1. 5. 00:05

 

 

목은이색(牧隱李穡)선생 유적지(遺蹟地)

 

 西쪽으로는 드넓은 영해평야(寧海平野)가 펼쳐있고, 그 뒷편으로는 낙동정맥(洛東正脈)의 크고 작은 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으며, 東으로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창해(滄海)가 펼쳐 있는 이곳은 고려 말 정치가, 대학자이며 대문호(大文豪)이었던 목은이색(牧隱李穡)선생의 유허(遺墟)이다. 선생의 본관은 한산(韓山), 시호는 문정(文靖), 가정 이곡(稼亭 李穀)선생과 함창김씨를 父母로 하여 1328년 이곳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무가정(無價亭)에서 탄생하였으며, 일찍이 20세에 부친 가정공이 머물던 원(元)나라에 유학을 하였다. 귀국 후 2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숙옹부승(肅雍府丞)을 시작으로 30세에 우간의대부, 40세에는 판개성부사 및 성균관의 대사성을 겸직하였고, 47세에는 왕명(王命)으로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출신인 나옹선사(懶翁禪師)의 비명(碑銘)을 찬(撰)하였다. 58세에 이르러서는 벽상삼중대광검교시중(壁上三重大匡檢校侍中)에 올랐으며, 62세에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제수되었다. 64세에는 벽상공신삼중대광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 영예문춘추관사(領藝文春秋館事)에 올랐다.65세때에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고려가 망(亡)하였으나 고려조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며, 마침내 69세에 여강(驪江 지금의 여주의 남한강) 청심루(淸心樓)아래 연자탄(燕子灘)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은선생께서는 이곳에서 태어나 일찍이 고향을 떠났으나, 종신토록 고향을 잊지 않았다. 특히 영덕과 관련하여서는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와 유사정기(流沙亭記)외 20여수(首)에 이르는 시(詩)가 있어 당시 고향에 대한 선생의 생각과 당시의 풍습과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7,000여수에 이르는 방대한 시문을 남긴 대문호일 뿐만 아니라 성리학(性理學)을 진작시킨 대학자이신 목은선생(牧隱)의 인연(因緣)을 숭앙(崇仰)하고자 선생의 자취가 남은 이곳 유허에 유적지를 조성하였다.(안내문 내용)

 

 

 

 

 

                      牧隱李穡先生像(목은이색선생상)

高麗三隱 (고려삼은) 

 

고려(高麗) 말기(末期) 성리(性理) 학자(學者)이며 충절(忠節)이 높았던,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 야은 길재(吉再) 세 사람을, 호의 같은 글자 '은'

따서 일컫는 말. 야은 대신(代身) 도은 이승인을 넣기도 함.

 

 

 

 

 

목은이색생가지 (牧隱李穡生家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이색의 생가터이다. 고려의 성리학자이며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생가터이다. 조선시대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괴시마을에 있다. 영덕군은 옛 문헌에 묘사된 대로 생가터를 복원시키고, 목은기념관과 동상, 시비(詩碑) 등을 세웠다. 유년 시절까지 이곳에 살았던 이색은 <관어대소부>, <유사정기> 등의 시를 통해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한다. 원래 마을은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렸는데, 이색이 원(元)나라에서 고향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괴시(槐市)라는 곳을 본 후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값을 매기기 어려운 정자 무가정(無價亭)

亭名無價價難期    정자 이름이 무가(無價)라 하니 값을 헤아리기 어렵네.

山水遊觀此最奇    산과 물을 노닐며 보기로는 이곳이 으뜸일세.

正好海天雲破處    바다 하늘에 구름도 걷혀 정말 좋은데

一眉新月掛松枝    눈썹 같은 초승달이 솔가지에 걸렸네.

 

 

                               가정목은양선생유허비(稼亭牧隱兩先生遺墟碑): 목은(牧隱) 이색과 부친 가정(稼亭) 이곡을 기리기 위한 유허비

 

 

 

文集板

 

 

文集板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

관어대는 영해부(寧海府)에 있는데, 동해(동해)를 내려다보고 있어 암석의 낭떠러지 밑에 유영(遊泳)하는 고기들을 셀 수가 있으므로 관어대라 이름한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外家)가 있는 곳이므로 소부(小賦)를 지어서 중원(中原)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영해의 동쪽 언덕 일본의 서쪽 물가엔 큰 파도만 아득할 뿐 그 나머지는 알 수가 없네 물결이 움직이면 산이 무너지는 뜻하고 물결이 잠잠하면 닦아놓은 거울 같도다 바람 귀신이 풀무로 삼는 곳이요 바다 귀신이 집으로 삼은 곳이라 고래들이 떼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들고 사나운 새 외로이 날면 그림자 저녁놀에 잇닿네. 관어대가 굽어보고 있으니 눈에는 땅이 보이지 않도다. 위에는 한 하늘만 있어 아득히 면 그 사이가 천리만리나 되누나. 오직 관어대 밑에는 파도가 일지 않아서 고기들을 내려다보면 서로 같고 다른 놈 있어 느릿한 놈 활발한 놈이 제각기 만족해하누나. 임공의 미기는 과장된 것이라 내가 감히 흉내 낼 바 아니요 태공의 낚싯바늘은 곧았으니 내가 감히 기대할 바 아니로다. 아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내 현제를 잊고 그 즐거움을 즐기며 즐거움을 즐기다 죽어서 내 편안하리. 물아가 한마음이요 고금이 한 이치인데 그 누가 구복 채우기에 급급하여 군자의 버림받기를 달게 여기랴 슬프도다. 문왕은 이미 돌아갔으니 오인을 생각해도 바라기 어렵거니와 부자로 하여 금 떼를 타게 한다면 또한 반드시 여기에 낙이 있었으리라  직 고기가 뛴다는 짧은 글귀는 바로 중용의 가장 큰 뜻이니 종신토록 그 뜻을 깊이 탐구하면 다행이 지사자를 본받을 수 있으리

 

 

목은이색등산로

 

                                                                                                                                                   촬영일: 2016년 01월 03일 (일요일)

 

 

 

 

 

 

 

목은기념관을 돌아내려 오던 우측 연화산홍련암이 궁금하여 잠시 들러본 풍경이었다. 기왓장에 쓰여져 길목 언덕에 줄지어 나란히 늘어서 있던 글귀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