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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청각 (安東 臨淸閣)

도랑도랑 2015. 7. 8. 20:51

 

 

안동 임청각 (安東 臨淸閣) / 보물  제182호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法興洞)에 있는 조선 중기의 별당 건물.

 

이 건물은 조선 세종(世宗:재위 1418∼1450)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1368∼1429)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안동 산수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정착하였는데, 그의 셋째 아들 형조좌랑 이명이 세운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대청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현보(李賢輔)·이항복(李恒福) 등 제현의 시판이 걸려 있으며, 임청각의 현판은 이황(李滉)의 친필이다.

 

평면이 ‘丁’자형의 누각으로 된 팔작지붕의 별당 건물로 대청은 정면 2칸, 측면 2칸이다. 남향으로 세웠고 서쪽에 접속하여 ‘丁’자형으로 온돌방을 부설하였는데,

그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 주위에는 쪽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고, 두 군데의 돌층계를 이용하여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온돌방은 각주(角柱)를 세워서 굴도리를 얹었고, 홑처마이며 대청 기둥은 원주(圓柱)를 사용하고 이익공계(二翼工系)의 공포(栱包)와 화반을 배치하였으며,

대청은 연등천장이다. 대청 주위에는 판문, 온돌방에는 빗살문을 달았고 벽은 회벽이다. 임청각 서쪽에 있는 본채는 전체 50여 칸 규모로 지은 집이다.

 

 

 

임청각은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지낸 바 있는 이명이 1515년(중종 10)에 건립한 주택이며,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의 집이기도 하다. 이 집은

영남산(映南山) 동쪽 기슭에 앉아 낙동강을 바라보는 배산임수한 명당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다.

 

중앙선 철도부설 때 50여간의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규모로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길에서 보면 맞담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모습의 행랑채가

이 집이 소위 말하는 99간집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중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보물로 지정된 군자정은 임청각의 별당으로 조선 중기에 지은 ‘丁’자 평면의 누각형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중심은 남향의 대청이고, 그 서쪽에 이어서 지은 T자형의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다.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으며, 출입은 두 군데에 마련해 놓은 돌층계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고택의 풍수학적 특징도 단연 돋보인다고도 했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임청각은 지기가 왕성한 곳에 위치해 좌향도 정왕향의 길한 방위를 택한 복지이다.

어느 방에서나 오전 오후 햇빛이 들도록 채광효과를 높인 배산임수의 전형적 건물이라는 것.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에 정침(正寢)이 용자(用字)형으로 지어져

비를 맞지 않고도 연결문을 통해 각 동으로 다닐 수 있다. 오른쪽에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군자정(君子亭)이 위치하고 있는데, 별당형식의 정자건물인 군자정은

임청각의 사랑채로서 평면이 정(丁)자를 옆으로 누인 형태다. 이 정자 내부에는 이곳을 찾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운 자연에 취해 지은 시들이 걸려있다고 했다.

 

 

 

 

 

 

 

법흥동고성이씨탑동파종택(法興洞固城李氏塔洞派宗宅)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85호. 고성이씨 탑동파의 종가집으로 1700년대에 초창되었으며, 안채·사랑채·북정 등이 자연환경과 잘 어울려 조성된 양반사대부 주택이다.

 

현 소유자 이찬형(李贊衡)의 11대조인 이준식(李俊植)이 안채를 건립하고 이어 사랑채를 건축하던 중에 죽자, 그의 손자 이원미(李元美)가 완성하였고 대청(大廳:

영모당)도 건축하였다. 대청의 북쪽에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는 북정(北亭)은 소유자의 7대조인 이종주(李宗周)가 1775년(영조 51)에 건립하였다. 1824년

(순조 24년)에 대수리를 하였고, 1991년에는 안채의 정침을 고쳐 지었다.

 

이 집은 조선 중기의 주택으로 주변의 자연환경과 건물을 교묘하게 조화시키면서 사대부저택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구조 및 수법과

전통양식이 보존되어 있는 유구로 전통주택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했다.

 

 

 

 

 

                                                                                                                                                     촬영일: 2015년 07월 05일(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