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慶州南山)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북쪽의 금오산과 남쪽의 고위산(高位山)의 두 봉우리 사이를 잇는 산과 들
계곡 전체를 통칭해서 남산이라고 한다. 금오산의 정상의 높이는 466m이고, 남북의 길이는 약 8㎞, 동서의 너비는 약 4㎞이다.
경주 서남산의 문화유적 탐방 코스이자 산행 코스는 남산의 매력을 짧은 시간에 보여준다. 삼릉에서 시작해 삼릉골(냉골)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골에서 마감하는 이 코스는 3~4시간의 온전한 등산 시간을 요한다.
최근 남산을 찿아 그오봉 정상을 처음 올라보고 약수계곡으로 내려온적이 있다. 그 때도 오후 늦은시간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을 감상하며, 바위 위로 푸른 소나무 가지 사이로 계곡 아래를 내려다 보고
싶었지만 이정표엔 거리 표시가 없었다. 토요일 일요일 연 이틀 예식장을 찾아봐야 할 일이 생겼다.
복장을 따로챙기고 결혼식장 들렀다가 식사끝나고 곧바로 그 궁금하기만 했던 용장골로 들어가보았다.
봄 날씨 바람불고 추위까지 느껴지는건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한동안 쌀쌀하게만 느껴지던 날씨 모처럼 화창한 햇빛이 좋고 새파란 하늘이 보여서 더 좋았다.
추위마져 느껴지게 했던 날씨탓이었나 한동안 봄꽃피는 생각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는듯한 생각이 들었다.
배꽃이 피어났고 계곡입구 논둑에 하얗게 피어있는 조팝나무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도 했다.
지금껏 경주 남산을 한 두번 올라본적은 있었다. 경부고속 도로를 달리면서 경주로 접어들때면 으레히 보이는 경주 남산
돌산으로만 보여지면서 그다지 경치좋은 산같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어느 신문기사의 머릿글이 떠 올랐다.
'경주미치거나 반하거나' 라는 기사의 내용만 보아도 그랬고 용장골을 처음 들어서고 보니 내 어릴적 고향의 그 어느계곡과
다를바가 없을만큼 골이 깊고 물이 맑았다. 울퉁 불퉁 솟아오른 돌을 피해가며 걷는 기분 그저 자연속의 그 풍경이 좋았다.
茸長山洞窈 (용장산동요) : 용장골 골 깊으니
不見有人來 (불견유인래) : 오는 사람 볼수 없네
細雨移溪竹 (세우이계죽) : 가는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 나고
斜風護野梅 (사풍호야매) :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小窓眠共鹿 (소창면공록) : 작은창가엔 사슴함께 잠들었어라
枯椅坐同灰 (고의좌동회) : 낡은 의자엔 먼지만이 재처럼 쌓였는데
不覺茅첨畔 (불각모첨반) : 깰줄을 모르는구나 억새처마 밑에서
庭花落又開 (정화락우개) : 뜨락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신라시대 용장사가 있었다하여 골짜기를 용장골이라 불러 왔다. 용장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 되었으며,
조선초(1465 ~ 1470년)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산실을 짓고 "유금오록(遊金鰲錄)"에 155수의 시를 남겼고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를 지은 곳이며 또 속세를 떠나 산승(山僧)으로 있으면서 단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로 북향화(北香花)를 심었던 곳이다. 이 유서 깊은 용장골에 다리를 놓으매 매월당 김시습을 기려 ( )라 하였다.
김시습(金時習) (1435 ~ 1493년)의 자는 열정(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또는 동봉(東峰), 법호는 설잠(雪岑),
관향은 강릉이다.
촬영일: 2013년 4월 13일
'그룹명 > 풍경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월에 눈 내리던날 (0) | 2013.04.25 |
---|---|
경주남산 풍경 III (0) | 2013.04.16 |
경주 남산 풍경 I (0) | 2013.04.03 |
벚꽃 풍경 (0) | 2013.04.03 |
부산성(富山城)이 궁금했다. (0) | 2013.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