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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

도랑도랑 2013. 2. 14. 22:20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 비로전(毘盧殿)


비로전(毘盧殿)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신 사찰의 건물.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모심.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毘盧遮那)는 산스크리트어 vairocana의 음사, 변조(遍照)·광명변조(光明遍照)·변일체처(遍一切處)·일(日)이라 번역.
①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 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대일여래(大日如來)
산스크리트어 mahāvairocana-tathāgata vairocana는 변조(遍照)라고도 번역하고,
비로자나(毘盧遮那)라고 음사함. 우주의 참모습과 진리와 활동을 의인화한 밀교(密敎)의 부처.
모든 부처와 보살은 대일여래의 화신이며, 우주 그 자체가 그의 법문이라고 함.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에서는 지권인(智拳印)을 맺고 있고,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에서는 법계정인(法界定印)을 맺고 있음.

 

 

인근 사람들은 군위의 삼존석굴을 제2석굴암이라고 부르는데,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된 곳으로 경주의 것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문화재이다. 경주의 석굴암이 인공으로 석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를 모셨다면, 이곳은 자연석굴을 그대로

이용해 사원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석굴은 아파트 한 동 크기만한 바위 아래쪽에 만들어져 있는데 그 안에는 2m가 넘는 크기의 본존불이 있고 좌우로 사람 키만한

협시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본존은 손가락으로 땅을 짚고 있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석가여래 전통의 지권인으로

우리나라 불상들에서 발견되는 최초의 모습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이곳은 경주 석굴암과 비교하게 되는데 조각의 수법이나 석굴의 구조를 볼 때 정교함이나 아름다움에서 경주의 것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군위 삼존석굴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로 넘어가는 과정에 만들어진 과도기적 작품으로 바위에다 그대로

새기는 마애불에서 인공석굴을 만들어 부처의 조각상을 앉히는 과정의 중간 형태로 의미를 가진다. 경주와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앞에 마련된 조망대에서만 바라볼 수 있다.

 

삼존석굴 앞마당에는 모전석탑이 있는데, 탑이라고 하기에는 단층의 그 모양이 특이하다.
돌을 쌓아 만든 삼층탑이었으나 한 번 무너진 것을 1949년에 지금의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

석굴 높이는 4.25m, 본존상은 2.18m, 우협시보살상은 1.92m, 좌협시보살상은 1.8m. 국보 제109호.

 

거대한 자연 암벽을 뚫어 석굴을 만들었는데, 입구는 원형에 가깝고 내부 평면은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이며
천장은 궁륭형(穹窿形 : 한 가운데가 제일 높고 주위가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을 이루었다.
독립된 삼존석상을 석굴 내부 벽면에 붙여서 안치하였다.


별석(別石)의 방형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본존상은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높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몸에 비해 큰 얼굴에는 삼국시대 불상에 보이던 친근감 있는 미소가 사라지고 위엄이 서린 모습이다.


체구는 어깨가 딱 벌어져 당당한 모습이며, 통견(通肩)의 법의는 얇아 몸의 굴곡을 드러낸다.
옷주름을 간략하게 표현하여 묵직한 신체의 조형 감각을 강조해 준다.
하체는 법의의 주름으로 덮여 있는데, 법의의 자락은 대좌 아래로 늘어져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도상적(圖像的)으로 보면, 이 본존상은 오른손이 무릎 밑까지 완전히 내려가지 않고 왼손도 결가부좌한
무릎의 중앙에 오지 않는 불완전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불상의 최초의 예로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본존상의 뒤쪽 벽면에는 장식이 없는 두광과 신광을 새겼으며, 그 가장자리를 따라 불꽃무늬를 돌려 거신광(擧身光)으로 삼았다.

좌우의 보살상은 동일한 양식을 보이는데, 삼면보관(三面寶冠)의 형식과 목걸이, 보주형(寶珠形)의 두광에서는 고식(古式)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길쭉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한 쪽 다리에 힘을 뺀 초보적인 삼곡(三曲)자세 그리고 머리 광배의 화려한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 장식 등에는 새로 수용된 당나라 양식의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석굴사원 대부분은 암벽에 마애불을 새기고, 그 위에 목조 전실(前室)을 세운 소규모의 석굴사원을 모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석굴은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안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글 내용: NAVER 지식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촬영일: 2013년 2월 1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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