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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도랑도랑 2012. 2. 16. 23:46

2012년 2월 11일 토요일

오랫만에 깨끗하고 청명한 날씨였다

무엇보다 새파란 하늘이 보기좋은 하루였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있으려니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마땅히 나가볼만한곳 또한 떠오르지 않았다

무조건 차에올라 시동을 걸고 새로난 산업도로를 달려 보면서 구룡포로 향했다.

세일수 없을만큼 다녀 본 구룡포길

낚시 다니던 방파제로 들어가 보았다.

 

 

 

 

 

 

 

 

 

 

 

방파제아래 항구로 들어가면서 언제부터 자리잡고 있었는지 위판장건물이 보였고 잠겨져있지않은 철제문을 열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조금 높은곳에 올라 바라본 구룡포 일원의 풍경은 새파란 하늘 아래 한눈에 펼쳐져 보였다.

계단을 내려 오면서 보이던 수조 안에는 살아있는 오징어들이 물위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 가면서 원통안 수조를 쉴새없이 휘젓고 다녔다.

 

 

항구를 돌아 나오면서 전에없던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아항! 구룡포 뒷길로 들어가면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이 있다는 소문은 오래 전 들어왔고

인터넷에 올라있는 사진들로 구경은 했었다.

마침 한가한 시간 마땅히 갈 곳 찾지 못하고 있던터라 그 골목을 돌아 보기로 하고 들어가 보았는데......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공사중인 구조물들이 보였다.

다시 주변을 둘러봐도 이곳 저곳 비계틀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들이 복원작업중임을 느낄수가 있었다.

우선 바로앞에 올려다 보이는 콘크리이트 계단을 쳐다보니 구룡포공원임을 알수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양쪽으로 늘어선 사각기둥에 한문으로 새겨진 이름들이 보였고 공원조성에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서도 관심없이 지나쳐 버렸던 모습들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다보니 옛 석주에 일본인 기부자의 이름이 있었지만

뒷면에 시멘트 덮칠로 마감하고 앞은 새롭게 재활용한 한국인 명단이란걸 알수가 있었다. (다음엔 자세히 한번 더 살펴 봐야 할 것 같다.)

 

 

 

 

 

 

 

계단을 오르고 정면에 보이는 충혼탑과 좌측 뒤로보이는 충혼각이 눈에 들어왔고 잔듸위에 앉아 햇볕을 쬐고있는 두 노인의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 까지 했다 저 두 노인들이 아마 이곳 구룡포공원의 산 증인이기도 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공원입구 우측에 우뚝솟은 비가 우람하게 보였다

쓰여진 글씨도 없이 콘크리이트로 덮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일본인과 관련있을것으로 생각은 들었지만

어떤 사연의 비인지는 궁금하기만 했는데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임을 알수가 있었다. 


도가와 야사브로 송덕비
수산업으로 명성을 떨치던 구룡포는 도가와야사브로가 구룡포에 정착한지 34년만인 1942년 10월 1일 영일군 창주면에서

구룡포읍으로 승격된다. 이 때 구룡포는 경북에서는 11읍 중 6위 규모가 됐고 영일군에서는 1931년에 읍으로 승격한

포항 다음으로 큰 2위가 됐다. 하지만 1944년 도가와는 6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지역민에게 도가와야사브로의 치적을 알리는 것은 곧 일본의 은혜를 한국인에게 전하는 일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당시 경북도내 실력자이며 구룡포개척 공로자인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일본 고향 마을인 일본 강산현 아도군

산전촌(日本 岡山縣 兒島郡 山田村) 지인들과 하시모토(橋本) 등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돼 공덕비를 세우게 된다.

이름하여 ‘도가와야사브로 송덕비(十河 彌三郞 頌德碑)’가 바로 그것이다.

규화석으로 된 이 비(碑)는 구룡포공원에 올라서면 우측 입구 쪽에서 구룡포 바다를 굽어보면서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또 기단석을 제외하고 높이 7m에 폭 1.5m 되는 제법 큰 규모로 당당하지만 새겨진 비문은 시멘트로 덮여 있다.

이 비는 구룡포의 읍 승격과 구룡포항 축조와 개척에 공로한 도가와의 덕을 기리기 위해 1944년 계단과 같이 세워졌다고 한다.

 

 

 

 

 

구룡포공원에서 내려다 본 구룡포항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적산가옥들이 관광자원화의 미명으로 보수공사가 한창진행되고 있는 중이라서 사진으로 보았던 모습들이나

내가 상상하며 들어섰던 모습들을 제대로 구경할수는 없었지만 첫눈에 일본양식의 건축물들임에는 분명했다.

이 거리의 복원사업이 끝나고 새로 단장된 이후에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구룡포와 ‘구룡포회’

해방 후 일인들은 일본으로 갔고 일제 잔재 청산이 여도의 불길처럼 몰아쳤지만 구룡포는 잠잠했다.

일인들이 살던 집이나 가재도구를 불 지르던 국내사정과는 달리 구룡포에서는 현실적으로 재활용하거나 이용하게 된다.

자연적으로 감정이 약할 수 밖에 없다.

무인도를 개척했다는 심정으로 애착을 가졌던 일인들은 구룡포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곳이 돼 해마다 구룡포를 찾았다.

이유야 어찌됐던 스스로 제2의 고향처럼 일군 구룡포를 두고 떠나가기엔 아무래도 아쉬움과 미련의 연속이 이어졌을지 모른다.

또 당시 구룡포에서 태어난 후손과 주변인 등 2백여 명이 모여 ‘구룡포회‘라는 모임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구룡포를 찾았다는 사실은

얼마나 구룡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들은 어릴 때 살던 구룡포를 둘러보면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다는 집 앞에서 얼마나 가슴 뭉클했을까?

하지만 그들이 하나둘 연로해지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구룡포회는 해체되다시피 해졌고 구룡포 방문행사도 없어졌다.

(Daum 아고라 <앵콜> 日帝가 춤을 추는 ‘구룡포공원‘ 08-06-29 17:34) 에서발췌.

 

적산 가옥(敵産家屋)

자기 나라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敵國) 소유의 집.

또는 1945년 팔일오 광복 이전까지 한국 내에 있던 일제(日帝)나 일본인 소유의 집을 광복 후에 이르는 말.

 

                                                                                                                                                   촬영일: 2012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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